촛불을 켜고 기원하는 마음

by 라슈에뜨 La Chouette

어머니가 다치셨다. 지병이 있으셔서 힘드셨지만, 꾸준히 기치료 및 운동을 하신 덕분에 최근에는 그래도 거동이 좋아지시고, 굽었던 허리도 많이 펴져서 온 식구들이 기뻐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집안에서 낙상하여 대퇴골이 부러지신 것이다.


집안이 초비상이 났다. 나는 여기 캐나다에 살고, 남동생은 미국에 사는지라, 어머니는 오로지 막내 여동생이 보살피고 있었는데, 이런 뜻밖의 사고를 당하고 나니 우리는 정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사실 대퇴부 골절상은 노인들에게 아주 흔히 발생하는 사고다. 집안에서 살짝 넘어지셨기에 괜찮으시리라 생각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통증도 없다고 하시니 처음에는 그냥 놀라서 그런 줄 알고 기다렸는데, 시간이 지나도 회복이 되지 않아 결국은 구급대를 불러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큰 병원에는 응급실 침대가 없어서, 동네의 작은 종합병원으로 들어가신 어머니는 대퇴골이 부러져 바스러졌으며, 심을 박는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으니 세상이 달라 보였다. 평생 모르고 살던 정보들이 쏟아졌다.


제일 걱정은, 이런 수술을 병약한 어머니가 버텨내실지 모르겠다는 것이었고, 과연 젊은 사람들도 힘든 회복과정을 이겨내실까도 의문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얹어서 돈 걱정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몸을 전혀 움직이지 못하시기 때문에 24시간 간병인이 필요한데, 간병인 가격이 엄청 비싸다는 것이었다. 인건비로 치자면 비싸다고 하지 말아야겠지만, 목돈을 내야 하는 보호자 입장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보통 1일에 15~17만 원 하며, 일요일은 일을 하지 않지만, 일요일치까지 계산해서 일주일씩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일을 하지 않아도 계산에 넣는다는 것은 나로서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게다가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환자를 하루동안은 관리 안 한다는 사실도 놀라웠다.


남편은, 병원에 있으면 간호사가 관리를 해야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고 하는데, 캐나다와는 의료시스템이 다르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한국도 요새는 간호 돌봄 병동이 있는 병원들도 있다지만, 이미 입원해서 각종 검사를 마친 상황에서 병원을 옮기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고, 실제 간호 돌봄 시스템이 있다는 곳에서도 막상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아 결국은 간병인을 써야 한다는 소식을 들어야 했다.


어머니는 현재 요양등급을 받아 집으로 요양사가 매일 몇 시간씩 와서 관리를 해드리는 상황이었는데, 이렇게 사고가 나서 입원을 하면, 요양사는 병원 방문이 금지된다. 몸을 전혀 쓰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었다. 아픈 사람이 더 아파지면 요양사를 받을 수 없다는 방침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장애등급을 받으면 된다고 주변에서 알려줬지만, 사고에는 장애등급이 없으며, 수술 후 3개월이 지난 후에도 회복이 되지 않으면 그때 심사를 신청해서 새로이 등급을 받아야 한다고 했기에 그 부분은 포기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고가 발생하면, 외국에 있는 자식들도 얼른 달려가야 하는 것이 맞는 도리겠지만, 이렇게 돈 생각을 해야 하니 가슴속이 서늘했다. 내가 가서 할 수 있는 것이 뭐 얼마나 되겠는가. 비용을 아껴서 간병비를 대는 것이 현실에 맞는 방법이리라. 가진 전재산이라면 작년에 전세 옮기며 남은 차액이 있으니 우선 그것을 사용하기로 하고, 미국에 있는 남동생과 비용 분담을 하기로 했다.


어머니는 의외로 통증이 없다고 하셨지만, 뼈의 상태는 상당히 좋지 않았기에, 다른 유명한 병원으로 옮기는 것도 고려하였으나, 그런 곳은 대기가 길거나 아주 멀었다. 이런 수술은 하루라도 빨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입원하신 곳은 전혀 유명한 곳은 아니었지만, 노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보니, 홍보가 되지는 않았어도 20년 넘게 비슷한 수술을 많이 하는 병원이고, 관리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아서 결국 빨리 수술이 되는 이곳으로 결정을 하였다.


수술하는 날은, 어머니도 긴장이 되셨는지 전날 한숨도 못 주무시더니 섬망이 오셨다. 그리고 전신마취가 불가능하며, 하반신 마취를 해야 한다는데, 만일 마취가 잘 안 되면 수술을 못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모든 것이 아슬아슬한 느낌이었다. 피도 부족하여 수혈을 받으며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고 마당에서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있었는데, 작은 화분들을 담은 상자가 찢어지면서 엎어졌다.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일들을 중단하는 것이 차라리 나았다. 설마 불길한 징조는 아니겠지 하며 몸을 부르르 떠니, 남편이 안아주고는 정리를 해줬다.


수술실 앞에 앉아있는 막내동생이 계속 카톡으로 상황을 알려주었고, 드디어 마취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며 가족들은 함께 마음을 졸였다.


조만간 우리 집을 방문하기로 한 노바스코샤의 시누이가 전화를 했다가 이 소식을 듣고는, 집안에 촛불을 켜고 기원하겠다는 말을 했다. 남편도 촛불을 켰다. 아마 이것은 캐나다 식인 것 같았다. 종교가 없는 나는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고, 많은 친구와 지인들도 기도의 마음을 전달해 주었다.


수술이 무사히 끝났다는 소식에 눈물이 나왔다.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지만, 일단 한 고비를 넘김에 감사하였다. 그러나 워낙 지쳐계시던 어머니의 섬망은 계속 이어졌고, 내가 왜 여기에 있느냐, 나한테 뭘 하는 것이냐며 화를 내시니 막내는 진땀을 뺄 수밖에 없었다.


섬망이 계속 이어지면 시끄러워서 다인실에서 쫓겨나는 것은 아닐까 동생이 걱정했지만, 다행히 하루 지나고 다음날 전화를 드려보니 음성이 맑아지셨고, 일단 정신을 회복하신 것 같았다. 정말 시시각각 신경을 곤두세우고 소식을 기다리다 보니 기진맥진이 되었는데, 그래도 어머니의 음성을 듣고 나니 기분이 나아졌다.


내가 이렇게 지쳤는데 막내동생은 어떻겠는가. 재택근무로 일도 해야 하는데, 밤새서 일하고 병원 쫓아다니고, 그저 미안하고 고맙고, 마음이 복잡하다.


지난번에 "일이 재미있어지겠구나"라는 글을 썼지만, 사람의 생사가 달리게 되면, 그런 생각은 불가하다. 그냥 내가 고생할 일에 할 수 있는 말이지, 가족의 병이나 사고에는 도저히 그런 생각은 할 수 없다. 하나도 재미있지 않은, 그저 안타깝고 마음 졸이는 시간이다.


그래도 착한 동생이 어머니 곁에 있고, 간병인도 잘 만났고, 도와주려는 사람들도 사방에서 연락을 해오니 너무나 고맙고 감사하다. 어머니는 사실상 이제 시작이다. 회복과 재활이 관건이니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지만, 긍정의 힘을 모아 가슴에 희망을 얹고, 어머니의 회복을 기원한다.



사진은 오늘의 촛불입니다. 수술 당시에는 사진 찍을 정신도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