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집에서 갑이 되고 싶은가?

지시하는 부모, 말 잘 듣는 아이

by 라슈에뜨 La Chouette

부모가 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나 부모는 처음이다. 원래부터 부모로 태어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게다가 아이는 각각 다르기 때문에 어떤 공식으로 끼워 맞추는 것도 쉽지 않다. 교육전문가들이 하는 말들도 각자 다르기 때문에 부모는 어느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


가장 무서운 것은, 혹시라도 내가 잘못해서 아이를 망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잘한다고 했는데, 그게 나쁜 결과를 가져오면 안 되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다 너 잘 되라고 그러는 거야'라는 말도 하게 되고, 아이의 미래를 위해서 때로는 무섭게 야단을 치기도 한다.


나도 자식을 키웠으니까 안다, 때로는 무섭게 야단을 치는 순간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런데 과연 야단을 치는 게 그렇게 효과가 좋을까? 그렇다면 계속 야단맞는 아이는 하나도 없어야 정상이다. 야단을 쳐도 쳐도 개선이 되지 않는다면 문제가 다른 데에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솔직히 교육이야기는 되도록 안 쓰려고 하는 편이다. 쓰기 시작하면 쓸 말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며칠 전, 인스타그램의 릴스 하나가 우연히 내 눈에 들어왔다. 짧은 영상을 무심코 봤는데, 보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보아하니 유아교육전문가라고 나와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것은 무슨 집안의 강아지 훈련 시키는 것도 아니고, 과연 저런 마인드로 교육이 될까 싶었다. 정말 가슴속이 부글부글 했다.


그 사람의 영상 멘트를 그대로 가져왔다.


이 닦자 하면 애가 "싫어."
"그러면 너는 어떻게 하고 싶어?"
"네가 정해와"
이럴 때 권위가 없어져요.
설득하는 사람이 을이거든요.

설명은 한두 번 해주면 돼요
"왜 내가 이를 닦아야 돼?"
"왜 학교에 꼭 가야 돼?"
이걸 궁금해하면
두 번 정도까지는
질문을 받아줄 수 있어요.

근데 그걸 또 물어보는 건
궁금한 게 아닌 거죠
하기 싫은데 그걸 어떻게 면해볼까
뭐 이런 거기 때문에
일상은 그냥 다 지시입니다

"지금 가방 메고 나가"라든지
"빨리 와서 밥 먹어"라든지
그냥 간단하게 네가 할 일을
얘기해서 하라고 하는 거죠

너무 어이없어서 덧글을 봤더니, 많은 부모들이 이 의견을 반기고 있었다.


"그래, 내가 잘하고 있었네."

"정답!"


정말 이것이 정답일까? 어떻게 보면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잘 보면 시작부터 잘못된 점이 많다.


언제까지 아이에게 이를 닦으라고 말할 것인가? 영원히 그렇게 지시하고, 아이들은 지시를 따르며 사는 게 맞는 것일까? 그러면 우리는 모두 엄마가 닦으라고 해서 이를 닦나? 아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우리는 알아서 닦는다. 그러면 아이들도 알아서 닦을 수는 없을까? 엄마한테 야단맞을까 봐, 잔소리 듣기 싫어서 이를 닦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그리고 그다음 문제로 넘어가서, 부모는 자식에게 권위가 있어야 할까?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갑을로 나눠지는 것은 건강한 관계일까?


이 사람은 결국 부모더러 갑질을 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저 사람의 방법이 성공한다면, 아이는 부모의 권위에 복종하면서 권위의 힘을 배울 것이다. 시키면 닥치고 하라는 그 갑의 위력을 배우고, 나가서도 그 규칙에 맞게 살 것이다.


나보다 약한 사람에게 갑질을 하고,

나보다 강한 사람에게는 굽신거릴 것이다


그걸 과연 가정에서부터 가르쳐야 할까? 밖에 나가서도 갑이 되도록 노력하고, 그리고 남을 설득하고 이해시키는 대신 지시하고 명령하는 사람이 되고 싶도록 만드는 것이 이 교육의 방식이다. 이 교육법에서 존중은 없다. 따라서 아이들도 존중받을 수 있다는 것을 배우지 못하고, 남을 존중하는 것 역시 배우지 못한다.


교육이란, 아이들도 어른과 똑같은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동등한 사람이고, 동등한 욕구가 있으며, 건강한 욕구를 가지고 그걸 건강한 방식으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당장 이를 닦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


아이가 자기 자신을 존중할 수 있고, 왜 이를 닦아야 하는지 알게 된다면, 스스로 알아서 이를 닦을 수 있다. 그것을 왜 해야 하는지 알고 나면 당장 하기 싫은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런 교육은 어려서부터 할수록 더 효과적이다. 아이도 가족의 한 일원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동등하게 존중받는다고 생각할 때 남을 존중하는 것을 배우고, 부모에게도 예의를 갖춘 행동을 할 수 있다. 부모가 갑이라서 말을 듣는 게 아니라, 부모를 존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부모의 행동을 통해서 배우는 아이가 되는 것이다.


질문을 두 번 정도는 받아줄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역시 갑을 관계에서 내가 그 정도는 참아준다는 개념이다. 여기에는 소통이 없다. 아이는 어렸을 때부터 소통을 차단당하고, 당연히 커서 소통을 할 줄 모르는 아이가 된다.


집안일 역시, 엄마가 하는 것이라는 개념이 아니다. 모든 일은 가족이 함께 한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 좋다. 공동체 사회이고, 우리가 함께 사는 집을 우리가 함께 깨끗하고 안전한 곳으로 만들어간다는 개념을 가져야 한다. 엄마가 스티커를 주니까, 또는 칭찬을 해주니까, 그걸 통해서 뭔가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먹고, 같이 치우고, 같이 즐기는 공간인 것이다.


저 위의 방법대로 하면 말을 잘 듣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아이들은 나중에 엄마가 시키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가 될 수도 있다. 실예로 내 친구들 아이들 중에 저런 아이들이 많이 있다.


부모 말 잘 듣고, 얌전하고 착하게 자랐던 아이가 중학교 가면서부터 반항을 시작하더니, 학교 간다고 나가서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니고 담배 피우고 외박하고 엇나가기 시작했다. 걷잡을 수가 없었다. 쭉 모범생이었던 아이가 그렇게 변하니 내 친구는 정말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극으로 가지 않아도 그저 모든 것에 흥미를 잃기도 한다. 어느 순간 자신이 왜 그것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내 친척언니가 그런 케이스였다. 늘 일등을 휩쓸고, 못하는 것이 없다가 고등학교 가서 회의가 왔다. 결국도 대학입시도 실패했다. 부모에게 자랑스러운 자식이었는데 부끄러운 자식이 되었다는 자괴감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정도까지 나빠지지 않아도 여전히 문제는 따라다닌다. 미국에서 대학원 다니는 딸아이가 친구들을 보면서 의아해하는 것이 그것이다. 논문 학기 전에 스스로 지도교수를 선택해서 요청을 하여야 하는데 데드라인이 될 때까지 그저 어쩔 줄 모르고 있는 아이들이 천지라는 것이다. 어떻게 골라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아무도 누구를 고르라고 가르쳐주지 않으니까.




아이들을 오냐오냐 키우라는 말이 아니다. 아이들 데리고 씨름하다 보면 부득이 시켜야 할 때도 있다. 해라, 하지 말아라 말해야 할 순간도 생길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이런 마인드로 하는 것은 진짜로 위험하다. 아이들이 왜 해야 하는지 알게 되도록 부모가 도와줘야 한다.


시어머니가 우리 집에 놀러 와서 선반을 손가락으로 훑으면서 지저분하다고 닦으라고 하면 좋을까? 무서운 시어머니라면 말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분고분 말 잘 듣는 착한 며느리가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깨끗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 방식은 맞지 않다고 여겨질 것이고 여러분은 억울할 것이다. 사실 집 관리는 우리가 스스로 집안 청결을 위해서 청소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맞다. 시어머니의 갑질에 맞춰서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부모가 잘 이끌어줘야 한다.


부모들이 잘못된 교육법을 사용하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느 정도는 납득이 간다. 그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이유이기도 하고, 부모도 사람이니 스스로의 조절이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교육전문가는 보다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표지사진 : Monstera Production https://www.pexels.com/ko-kr/photo/71142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