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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중과 관종 사이

by LAD

정신없던 6월 초가 지나갔습니다. Apple의 WWDC, Google I/O, 여러 E3(Electronic Entertainment Expo; 게임 엑스포) 이벤트들이 연속으로 있다 보니 팔로업하고 정리하는 데에만 꽤나 많은 시간이 소요되더군요.


여러 뉴스에서 접하셨을 부분입니다만, 작년부터 이런 미디어 이벤트들은 실시간이 아닌 사전에 촬영 및 편집된 영상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저 약속된 시간에 중계되는 편집된 예능과 별반 다를 게 없죠.


기존의 무대라는 제약을 벗어나 미디어 이벤트 주최자들은 다양한 시도를 선보였습니다. Apple의 경우 본사인 Apple Park의 외부, 내부, Steve Jobs 씨어터, 지하 기밀 랩 사이를 요리조리 다니는 전환 효과는 이목을 집중시켰죠. Apple뿐만 아니라 Google, E3 이벤트들에서도 훨씬 더 시네마틱 한 홍보영상들과 금세 '복붙'될 법한 그래픽들의 향연이 펼쳐졌습니다.


분명 인상적인 퍼포먼스들이라는 점은 거부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관중의 반응이 부재된 허전함은 점점 더 커지는 듯 싶습니다. 지나치게 완벽한 타임라인, 동선, 그리고 여러 번의 테이크 중에서 고른듯한 농담까지. 물론 이전 시대 미디어 이벤트들도 짜인 각본입니다. 그러나 관중과 함께 호흡하는 사회자들의 모습, 그리고 예상치 못한 리액션들은 어떻게 보면 발표되는 내용물만큼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요.



관중과의 호흡


19년 Xbox 미디어 브리핑 이벤트에서 매트릭스의 주연배우로 잘 알려진 키아누 리브스의 'Cyberpunk 2077' 무대를 예시를 들고 싶네요. 게임의 캐릭터로 등장하는 예고편만으로도 열광한 상태에서, 유명 할리우드 배우가 실물로 무대에 발을 올리자 관중들은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숨 막히는 도시 풍경' 대목에서, 관중 속 어떤 남성이 소리칩니다. "You're breathtaking(당신이야 말로 숨 막힐듯 멋져요.)" 이어 키아누 리브스가 웃으면서 바로 받아치죠. "You're breathtaking!".


Xbox의 미디어 브리핑이 끝나기도 전에 이 순간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에 밈짤과 클립으로 도배됩니다. 'Cyberpunk 2077'는 비록 미완성작이라는 평판을 안게 되지만, 이 단순한 교환은 E3 게임 엑스포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손꼽히죠. Microsoft는 연예인 카드를 쓴 보람이 분명 컸을 겁니다.

"You're breathtaking!" - 키아누 리브스


Xbox 외에도 여러 E3 주최사들의 미디어 브리핑과 금일 새벽에 진행된 Nintendo Direct는 '사회자 > 예고편 > 사회자 > 예고편'을 반복하는 포맷입니다. 2020년 이전에도 비슷한 구성이었지만 예고편 하나가 끝날 무렵 관중들의 리액션은 인기도를 미리 예측해볼 수 있는 리트머스 테스트였을 뿐만 아니라 현장감 선사라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관중과 그들의 반응이 부재된 상태에서는 어느 지점에서 숨을 골라야 할지 모르고, 어느 순간이 임팩트 있었는지에 대한 확인이 불가능하더군요. 시청이 아닌 모니터링에 가까운 경험은 결국 딴짓으로 이어집니다.

21년 Xbox 미디어 브리핑에서 필 스펜서 Xbox 대표 (출처: xbox)
19년 Xbox 미디어 브리핑에서 필 스펜서 Xbox 대표 (출처: xbox)


관중과 관종 사이


시청자는 콘텐츠 본연의 집중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으로 자신의 반응에 대해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또는 본인이 좋아하는 것에 대한 다른 반응도 궁금한 것이죠. YouTube에는 이런 현상을 해소해줄 수 있는 리액션 중심의 채널들이 많습니다. 이들은 영화, 드라마 외에도 이런 미디어 이벤트와 같이 다양한 콘텐츠들을 보면서 매 순간의 반응을 시청자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하단 또는 상단에 페이스캠을 띄웁니다.


원본을 시청한 뒤, 저는 이런 채널들을 방문하여 제가 생각하는 하이라이트 리스트들을 하나씩 대조합니다. 오히려 제가 놓친 중요한 포인트들을 캐치하기도 하죠.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서 말과 글로 표현하기도, 카테고리화 시킬 수도 없는 공감 포인트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재미에 빠지기도 합니다.

게임 Battlefield 2042 티저 트레일러에서 Rendezook 장면에 리액션하는 유튜버들 (출처: Reaction Mashup)

저는 이번 이야기에서 관중과 그 반응이 부재된 현상이 주는 허전함에 대해 거친 캐리커쳐를 하고 싶었습니다. 개인의 성향과 취향에 따라서는 이 허전함을 부정할 수도, '나는 평생 혼자 있어도 괜찮아'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확인받고,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심리는 어쩔 수 없는 게 아닌가.'로 맺어지는 듯합니다.


미디어 이벤트들에 익숙하지 않으시다면 아래와 같은 경우를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홈씨어터에 이어 점점 더 보급화되는 고음질, 고화질 기술이 있음에도 우리는 영화관을 찾고, 멀찌감치 앉아 보이지도 않았을 가수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음에도 우리는 어렵게 티켓을 구합니다. 물론, 영화의 경우 스펙터클함을, 공연의 경우 performer의 실물이라는 이유도 있지만, 저는 '리액션이 포함된 현장감'이라는 프리미엄을 지불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