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ri

Apple의 꼼수

by LAD

Apple의 개인정보보호 캠페인은 자사 제품과 서비스 못지않은 퀄리티에 도다르고 있습니다. 지난 5월에 유튜브에 공개된 영상은 커피 한잔을 주문하고, 택시에 탑승하고, 은행업무를 보는 단순한 일상 속에서 앱을 통해 개인정보들이 수집되는 모습을 비유합니다. 'Choose who tracks your information. And who doesn't. (당신의 개인정보를 추적해도 되거나 되지 않는 대상, 직접 선택하세요.)'의 카피라이트는 Apple 디바이스에서 앱을 처음 실행할 때 뜨는 '개인정보 활용 동의/비동의' 선택지를 의미하죠.

'Privacy on iPhone | Tracked | Apple' 개인정보보호 캠페인 광고

유럽연합의 GDPR (개인정보 보호 규정) 시행 이후, 신원을 추적할 수 있는 데이터 수집 및 이용에 많은 제한이 걸렸지만, '프라이버시(사생활 또는 개인정보를 지칭)'가 상업화된 현상을 돌리기엔 뒤늦은 감이 있습니다. 직접적인 예시로는 유료 VPN이 있죠. 간접적인 예시의 범위는 훨씬 넓습니다. 우리는 telegram이 안전하다는 이유로 쓰고 있고, 일부의 경우 iPhone이 Android보다 안전하다고 설득되었죠. 반대로, TikTok이 faceprint(신원 인식을 위한 안면정보), voiceprint(음성정보)를 수집한다는 점에서 유쾌할 사람은 없습니다.


나의 iPhone으로 이사 온 Siri


Apple 이야기로 돌아와 이번 iOS 15에서 업데이트된 Siri의 이야기를 시작해보겠습니다. 간단히 요약드리자면, Siri는 'on-device speech recognition (장치 내 음성인식)' 기술로 더 이상 사용자의 음성 데이터가 Apple 서버를 거치지 않고 명령어를 수행합니다. 'Audio never leaves device (음성은 디바이스를 벗어나지 않는다)'라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앞세워 Apple은 1) 원치 않는 음성 녹음 방지, 2) 프라이버시, 3) 일부 기능의 경우 오프라인에서도 사용 가능, 그리고 4) 빠른 명령어 인식을 강조했습니다. 데모 영상과 개발자 베타 버전을 설치한 유튜버들의 영상을 보아도, 이전에는 멍 때리는 시간이 길었던 Siri가 재깍재깍 명령어를 수행하더군요. 대중도 미디어도 저도 설득되었고, Apple이 빅 테크 리그(Facebook, Google, Amazon, Microsoft 등; Apple도 속함)에 선전포고를 날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Siri는 음성비서 형제자매 중 가장 멍청하기로 알려져 있습니다. iPhone 4s, 5, 6, 6s, X, Xs Max, 11 pro를 써온 입장이지만, 저도 동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How can I help you?(무엇을 도와드릴까요?)"하고, "오늘 미세먼지 어때?"라는 질문에 단 한 번도 똑바른 답변을 한 적이 없습니다. 아무리 Apple이 한국에 특화되어있지 않다 해도, 성의가 부족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놀랍게도 Bixby는 마트 영업시간/휴무일도 알려준다고 하죠? 더불어, 스마트 스피커 시장에서 HomePod은 실패작입니다. 기술적 관점으로 봐도 맥락 파악, 지식 체계, 인식률 등 타 음성비서 형제자매들과 견주었을 때 뭐 하나 특출 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 없습니다. 적어도 여태까지는요.


'장치 내 음성인식' 기술에 힘입어 프라이버시와 오프라인 기반 빠른 명령어 인식을 장점으로 앞세운 것이죠. 하지만, Apple이 시연한 데모는 단순 조작 명령에 그칩니다. "사진 열어, 캘린더 열어, 비행기 모드 켜, 타이머 20분으로 맞춰, 야간 모드로 전환해, 아침 7시에 깨워줘." 어떻게 보면, 2년 전 Apple이 이전 공개했던 Mac OS의 'Voice Control (음성 컨트롤)'에 가깝습니다. 마우스, 키보드와 같은 일반적인 입력장치를 사용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음성으로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 조작을 가능케 해주었죠. Apple은 '지원 페이지 가장 하단 더 알아보기'에서 이 기능에 대해 다음 그림과 같이 언급하였습니다.

빨간 밑줄 : "모든 Voice Control을 위한 음성처리는 디바이스 안에서 일어납니다."


"2년 전 발표한 피쳐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것을 iOS 환경에 맞추어 다듬고, 새롭게 포장하여 혁신적인 업데이트로 소개를 하는 것은... 매우 Apple 답네."라고 넘겨짚으면 안 됩니다. 나열된 Q&A는 기술적 관점에서 곱씹어 볼 점들입니다.

어느 정도의 질문 난이도에서 '장치 내 음성인식'에서 '서버'로 전환되어 처리되는가? (답: 모름. 현재로써는 정확히 알 수 없음)

Alexa, Google Assistant, Bixby와 같은 다른 음성비서들은 어떻게 처리하는가? (답: 오프라인에서는 사용 불가. 따라서, 단순 명령어 조차도 처리 불가.)

'장치 내 음성인식' 기술이 iPhone과 같은 모바일에서 돌아가는 것이 혁신적인가? (답: 기술 자체는 구글과 같은 타 기관에서도 지속적으로 연구되는 중. Apple이 발 빠르게 상용화를 했다는 점. 따라 잡힐 가능성은 높음)



꼼수


그러나 Apple은 절대 바보가 아니죠. 그들은 사용자들이 Siri를 찾는 주 이유와 의도를 분명 알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사용자들은 인공지능 음성비서에게 '스마트'보다 '단순작업'을 훨씬 많이 요청하고 있었던 것이죠. 멍청하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들은 '할 수 있는 것만 똑바로 하자'라는 결단을 내린 겁니다. 그렇다면 이미 웬만한 PC의 성능을 앞지르는 프로세서를 장착한 iPhone에서 '단순 작업' 정도야 식은 죽 먹기겠죠. 서버를 거치지 않으니 '오프라인'은 물론, 프로세서만 따라준다면 빠른 단순 명령어 처리는 누워서 떡먹기입니다. 마지막으로, Siri의 10주년 케이크에 가장 핫한 토픽 '프라이버시'라는 체리를 얹으면... "Voilà! (짜잔)" Siri의 '혁신적인' 업데이트가 완성됩니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Apple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프라이버시'를 피쳐로써 상업화한 대표적인 예시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Siri의 업데이트는 적절한 때와 장소에 활용한 '꼼수'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것도 영리한 방법으로요.


많은 사람들이 '편의성'보다는 '프라이버시'를 선택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도 Apple의 캠페인 광고처럼 제 개인정보를 공유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고 싶진 않습니다. 하지만 꼭 양자택일이어야만 하나요?


마지막으로 일러스트를 해보고 싶었지만 잘 그려지지 않아 글로나마 음성비서 형제자매를 소개합니다.


아는 것도 많고, 똑똑하고, 사회성 좋은 Google Assistant

쇼핑해라, 물 끓여라, 빵 구워라. 할 줄 아는 거 많고, 적당히 유머러스한 Alexa

한쿡말 잘해요 Bixby

할 수 없는 거 빼고 조용히 다 하는 Si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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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ap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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