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DC 21 기조연설이 끝났습니다. 직전까지 많은 기대와 추측들이 오고 갔고, 그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주제는 iPadOS 15이었습니다. 'iPad가 드디어 태블릿이라는 플랫폼 제약을 벗어나 데스크톱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라는 메시지 하나로 테크 미디어/테크 튜버들이 단결했죠. 특히, 신형 iPad Pro가 M1 프로세서와 1/2TB 고급형의 경우 16GB의 RAM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더욱더 증폭되었습니다. 현 iPad OS 14에서는 앱당 5GB의 RAM을 할당(신형 아이패드 기준)하지만, iPad OS 15에서는 제한을 걸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죠. LAD(글쓴이)도 루머로만 돌던 파이널 컷 프로(영상편집 툴)와 X Code(개발 툴)을 iPad에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소원과 염원을 담아 한 시간 전부터 생중계창을 띄워 놓았습니다.
iPad OS 15 요약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그 기대는 산산조각 났습니다.
(일반적인 이야기들을 스킵하고 싶으시면, 바로 "'애플 생태계' : 단순 기능을 넘어 자체 프로덕트로" 파트로 건너뛰시면 됩니다.)
iPad OS 15 공개와 그 반응
대표적인 기능들 몇 가지만 짚고 넘어가 봅니다.
가장 대두되는 '유니버설 컨트롤'은 Mac의 커서를 iPad로 이동시켜 디바이스 간 파일 공유를 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물론, 혁신적이고 스마트하죠. AirDrop(애플 디바이스 간 파일 공유 기능)이 진화한 버전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GIF)
애플 펜슬을 가장자리에서 가운데로 그으면 나타나는 '퀵 노트'. 매번 노트 앱을 꺼내느라 고생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멀티태스킹'은 수정 버전에 가까운 형태입니다.
'위젯'은 작년에 iOS 하고 함께 출시할 수 있었던 기능입니다.
기조연설 종료 이후, 미디어와 테크 튜버들의 분노와 실망 릴레이가 시작되었습니다. 필요하지도 않은 1TB 용량을 16GB RAM 때문에 구입하였다는 일부 사람들은 환불 의사를 밝혔고, '미래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약속/기대'로 제품을 구입하면 안 된다는 정석이 더 굳혀지게 되었죠.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애플의 최근 행보는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을 조금씩 쥐어주는 형태였는데, 다시 역행하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 iPad Pro는 이름만 프로인 럭셔리일 뿐일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아무도 모릅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애플조차도 정의해놓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시장이 빠르게 변화하는 만큼 애플의 입장도 매 분기마다 달라지고, 그때그때마다 미디어는 시선을 끄는 문구로 대중을 심심하지 않게 하니까요. 하지만, 지난 과거와 이번 OS 업데이트를 통해 향후 iPad의 포지션에 대한 유추를 해볼 수는 있겠죠.
iPad의 지난 이야기들
2010년 첫 출시 이후 11년이 지난 이 시점 애플이 제시하는 iPad의 근본은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그 근본은 인터넷 서핑, 이메일, 사진, 비디오, 음악, 게임, eBook입니다. iPhone과 Mac사이에서 디스플레이가 전부인 슬랩 형태의 디바이스는 이 코어 영역에서 날이 갈수록 다른 제품(심지어는 Mac을 포함)들과의 간격을 기하급수적으로 넓히고 있죠. 하지만 iPad Pro가 출시하고 업데이트되면서 대중은 혼란에 빠집니다. 성능 높은 디스플레이와 펜슬, 그리고 가장 저렴한 iPad보다 비싼 트랙패드 키보드를 얹으면 '생산성'을 높이고 누구나 '프로'가 되는가? 더 혼란스러운 점은 애플의 메세징과 미디어의 해석이었습니다. 악명 높은 "What's a computer? (컴퓨터가 뭐예요?)" 광고와 그에 상반된 의견인 "It's just an iPad.(그저 아이패드일 뿐이다)"라고 하는 미디어.
여기에 덤으로 "애플은 제품 간(Mac, iPad) 경쟁을 유도한다"라는 추궁까지 돌았죠. 실제로, 소프트웨어 관점에서 Mac는 더 포괄적이고, 친절하고, 쉽게 변모하였고 (iPad 스럽게), iPad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도록 복잡성을 조금씩 높여갔습니다 (Mac 스럽게). iPad의 논란은 최근 iOS와 iPad OS 분리, M1 프로세서 탑재, 16GB RAM, 그리고 iPad OS 15까지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2010년 첫 iPad 출시 이벤트에서 iPad의 포지션을 설명하는 스티브 잡스
'애플 생태계' : 단순 기능을 넘어 자체 프로덕트로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애플의 상당한 태블릿 시장 점유율(2020년 기준 약 30%)과 매 분기마다 증가하는 매출액(2019년 대비 11% 증가)입니다. iPad 키보드, 펜슬과 같은 액세서리를 고려하면 사실상 판매대수보다 정가가 높아진 것이 아니냐라는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하단의 표와 같이 애플은 iPad와 iPad의 액세서리를 구분합니다. 이것은 iPad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거듭할수록 대중의 혼란스러움과는 반대로 더욱더 성공적인 시장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Mac 또한 iPad 못지않게 뛰어난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을 하단 대조표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요. 저는 문득 애플은 Mac과 iPad 간 경쟁을 유도하는 것이 아니라 Mac - iPad 패키지 판매에 무게중심을 두는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
2020년 연간 실적 발표 공시에서 발췌한 '제품과 서비스 실적'
그 이유들을 나열해보도록 하겠습니다.
1. iPad OS 15의 넘버원 하이라이트는 '유니버설 컨트롤'(Mac의 커서를 iPad로 이동시켜 디바이스 간 파일 공유)입니다. 좋든 실든 신기해하든 진부하게 여기든 '혁신'에 가장 가까운 피쳐입니다.
2. '유니버설 컨트롤'이 있기 전, 우리는 Mac과 iPad의 상호 호환성을 '사이드카'(iPad를 Mac의 세컨드 디스플레이로 활용)라는 피쳐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3. 'iPad의 지난 이야기'에서 언급드린 것처럼 Mac은 점점 iOS 또는 iPad 스러운 디자인을, iPad는 점점 Mac과 같은 복잡성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4. 애플의 가장 대표적인 키워드는 '생태계(Ecosystem)'입니다. 독립적인 디바이스를 쓰더라도, 애플 생태계를 통해 사용자들의 '이음새 없는(seemless)'듯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애플의 철학은 날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은 1) iPad 없이 Mac만 사용할 때, 2) Mac 없이 iPad만 사용할 때 부각됩니다. 물론 사용자의 취향을 탑니다. 저의 경우만 해도 iPad보다는 Mac이 꼭 필요한 상황(프로그래밍, 영상편집 등)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iPad OS와 앱들이 가지고 있는 간결함, 터치의 즐거움에 대한 유혹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PC에서 사용하나 태블릿에서 사용하나 비슷한 UI경험을 유도하는 반면 애플은 각 환경마다 개발 및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엄격히 준수하도록 요구하기에 Mac과 iPad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앱들도 매우 다른 '느낌'을 선사하죠. 이제는 iOS 앱을 Mac에서도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만, 터치 디자인에 최적화된 UI는 트랙패드 또는 마우스로는 한계가 많습니다.
저도 테크 튜버(테크 리뷰를 전문적으로 하는 유튜버)들이 자주 하는 오직 iPad 또는 Mac으로만 한 달 살아보기를 시도해본 경험으로는, 두 제품을 동시에 쓰기엔 버겁긴 해도 한쪽이 없으면 아쉬운 입장이었습니다. 따라서, 애플이 지속적으로 두 제품의 '상호 호환성'을 높여가면서도, 각각의 매력들을 끊임없이 어필한다면 독립적이었던 Mac과 iPad 시장을 묶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더 많은 자사 제품을 구매하도록 정당화시키는 상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상술은 '애플 생태계', 또는 '애플의 마법'이라 불리기도 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번 빠지면 나오기 어려우니까요.
WWDC21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생각과 의견을 댓글로 공유해주세요. LAD에게 새로운 인사이트와 영감이 됩니다.
이미지 출처: apple.com; sec.g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