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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소여 Apr 10. 2024

우산 쓰고 가셔도 됩니다

출근을 하려고 집을 나섰다. 아파트를 벗어나자마자 빗방울이 톡톡 정수리에 떨어졌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건 아니지만 오래 내릴 것 같아 귀찮음을 무릅쓰고 다시 우산을 가지러 집에 올라갔다 왔다.


회사에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지하철에서 버스로 환승하는 것이고, 나머지는 지하철에서 지하철로 환승하는 것. 후자가 빠르지만 선호하는 건 전자다. 땅 속 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버스를 타기 위해 지상으로 올라가면 기분이 상쾌해지기도 하고, 버스 창 밖으로 한강과 거리 풍경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내가 타는 버스는 배차 간격이 길고 불규칙한 편이라 매일 아침 운을 시험하는 기분으로 버스 예상 도착 시간을 살핀다.


비가 옅게 내리던 그날은 타이밍이 좋았다. 몇 분 뒤면 도착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정류장 벤치에 자리가 빈 것이 보였다. 이왕이면 앉아서 기다리자 싶어 엉덩이를 들이밀었는데, 마치 온탕에 들어간 듯 몸이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온열의자였다. 속으로 '서울시 최고'를 외치며 따뜻함을 즐기는데 정류장 벽면에 붙은 종이가 눈에 들어왔다.



"우산 쓰고 가셔도 됩니다"

담백한 말 한마디 그리고 몇 개의 우산들.


비는 오는데 우산이 없어 울상이 될 뻔한 이들을 위한 배려였다. 누가 두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남동 버스정류장에 설치된 온열의자만큼이나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날 툭 세워진 우산에 잠시동안 시선이 머문 이는 나뿐만은 아닐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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