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의 계획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고 하루하루를 커피 2잔으로 버티며 '한 달 7만 원의 학년부장수당에 부끄럽지 않은 월급쟁이로서 진짜 밥값은 했다'라고 나 스스로를 쓰담쓰담하며...올해까진 이 자리를 버텨보자라는 생각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이 되니... 몸이 녹초가 되었다. 중입배정, 졸업준비, 12월에 개관하는 체육관 관련 업무까지 겹쳐서 안 그래도 예민한 내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며 일찍 잠자리에 들어도 꿈속은 왜 그렇게 전쟁터인지. 학교에서 업무와 관련하여 나에게 한 마디씩 건네는 의견들에는 날을 세워 대답하고 '도와줄 거 아니면 참견하지 마!'라는 뉘앙스가 나도 모르게 푹~ 늘 경계해 왔던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사회생활하자!'라는 나의 모토는 이미 물 건너갔고, 어느새 나의 밑바닥을 들켜버린 것 같아 나 스스로 더 화가 나는 이 사이클이 반복되었다. 본인의 일이 아니면 대단히 쉬워 보이듯 아무렇지 않게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불평러들의 가벼움이 가소로웠고, 6학년을 처음 맡아보는 동학년 4명의 저경력교사들에게 스텝 바이 스텝으로 업무를 안내하고 지시하다가 그냥 내가 해버리면 편할듯하여 맡게 된 잡다한 업무가 하나하나 쌓이며, 나는 한없이 예민한 선배교사가 된 모양새가 되었다.
어찌 보면 동료들과의 '소통'과 '협력'이라는 정석보다 업무의 '효율성'을 택한 나의 자만이 불러온 자멸의 길이었을지 모른다. 조금 빨리 가려고 선택한 지름길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나 혼자만 빨리 가고 있었던 거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멀리 가기 위해서는 함께 가야 하는 공동체성을 나는 가끔 너무 가볍게 생각한다. 남들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는 강박증인 것인지 아니면 남들보다 뛰어나고 싶은 욕망이 커서 인지 아무튼 이 부분은 나 스스로 충분히 되돌아봐야 할 문제인듯싶다. 나의 목적지가 멀리에 있고 오래가야 하는 곳이라면 말이다.
연구회에서도 커리어 쌓기의 분명한 목적을 가진 팀장들 사이에서 나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웠다. 다들 젊은 나이에 대학원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엘리트부터 뭐 하나라도 자기만의 콘텐츠를 연구하고 나중을 위해 끝까지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사람들 속에서 마치 나는 속 빈 강정마냥 그들의 춤사위에 놀아나고 있는 허수아비의 느낌. 내가 모르는 걸 배우는 게 좋아 시작한 연구회였는데 점점 실적을 쌓듯 자기 커리어를 만들에게 드러내야 하는 경쟁구도의 운영 방식이 조금 숨 막히기도 했고, 내가 따라잡을 수 있는 속도일까를 고민하며.. 결론적으로 완주를 하긴 했지만 나 스스로 열정 없는 열등생으로서 마무리 한 찜찜함이 남았다.
결혼으로 인한 새로운 시작과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기였다고 하더라도 점점 작아지는 교직사회에서 난 어떤 마인드와 능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하는 시점이라 생각했다. 학업적인 면에서의 자기 계발, 직장동료들의 관계, 경제적인 부분에서의 장기적인 자기 관리..
나이 마흔이 넘어서도 끊이지 않는 고민들... 남들에게 그리고 나에게 무해한 인간으로 살아남기가 여간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