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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oon Feb 21. 2023

인생을 숙제로 살지 않기 위해

 미친 듯이 바쁜 학기 중에는 수업과 업무, 학생들과의 상담, 각종 계획서들 때문에 부끄럽지만 한 달에 책 한 권을 읽지 못하고 지나가는 날들이 부지기수다. 이런 걸 핑계로 치면 다들 수긍하듯 끄덕이겠지만 솔직히 최근에는 그 좋아하던 걷기 운동조차도 안 하고 독서하며 나름 소소하게 몇 글자씩 적어오던 습작의 습관도 희미해진 지 오래된 걸 보면 내 일상에 게을러지고 소홀해진 게 분명하다.


 예전부터 나는 걷는 시간을 단순히 운동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재작년까지 살던 집 앞에는 제법 큰 공원이 있었고 2km 정도의 공원 한 바퀴를 나름 나만의 루틴으로 하루에 3~4바퀴씩 돌고 집에 돌아가 씻고 침대에 누워 유튜브의 재미있는 영상을 몇 개 보다 잠드는 그 일상을 소소하게 즐기기도 했다.

 "걷기"는 하루의 일과를 돌아보고, 나의 고민과 염려를 덜어내고, 또 다른 계획들을 세우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특별히 사계절의 다양한 풍경을 보기 위해 여기저기를 다닐 필요 없이 새벽 아침 공원을 걸으며 봄날의 벚꽃을 혼자 충분히 만끽할 수 있고, 푸르른 연녹색의 잎들과 가을의 화려한 단풍놀이도 아주 가까이, 그것도 무료로 손쉽게 감상할 수 있는 좋은 나만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그래서 1시간 거리의 이곳으로 이사하고 난 후 가장 아쉬운 점도 집 근처에 널찍한 호수공원이 없다는 것이다.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에서 tv를 보며 기계적으로 마냥 움직이는 걸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나에게 '기왕이면 걷고 오자!'라고 나름의 동기부여가 되었던  공원이 그리운 요즘이다.

 100km 정도의 출퇴근 운전이 버거워서 인지 퇴근 후에는 전처럼 밖에 나가 1시간씩 걷고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다시피 하면서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없어진 것만큼이나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소설을 읽어보지 못한 것도 벌써 오래전이다. 이번 겨울방학 때는 책꽂이에 꽂혀있던 읽다만 책들을 몇 권 골라 완독 했다는 그 정도로만 만족했다. 책을 읽으며 작가에게 받았던 좋은 기운과 에너지, 또 다른 세계로의 생각거리를 많이 만들어주며 책을 통해 위로받고 나를 긍정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았다면 두 달여간의 내 머릿속 뿌연 안개가 조금이나마 걷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난 한 달 동안 집안에 틀어박혀 되도록 좋은 몸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답시고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게 오히려 탈이 난듯하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우울과 걱정과 염려의 부정적인 감정들이 내 마음의 살을 찌웠다. 평소대로, 생각대로, 내 뜻대로만 계획되지 않는 일들에 대해 더 예민해지며 이런 감정들에 휩싸여 1~2월을 보내다 생각의 깊이가 만들어낸 우울의 연못이 깊어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어찌 됐건 곧 새 학기 시작, 새로운 학교, 새로운 사람들, 그리고 또 새로운 가족을 맞이하기 위해 지나친 상념을 없애고 다시 기운을 차리고 일어나 보기로 스스로를 채근했다. 반드시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 일에 대해서 일부러 자기 불안을 강요할 필요 없지 않나 싶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원하는 것 이룰 때가 마땅히 올 거라고..."

                                                  디에이드,  '알았더라면' 중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과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자.

생각 없이 남의 일상을 염탐하는 일 따위로 시간을 버리지 말고 조금 더 나와 다른 이에게 살갑고 온기 있는 내가 되길... 그 불안의 자리는 자연스레 비워질 것이다.

내 마음이 향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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