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Yoon May 08. 2023

돌고 돌아 제자리에 설 때

누구나 각자의 계절과 다른 속도로 살고 있다고 하지만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이들과 인생의 키높이를 재며 때로는 스스로를 위안 삼고, 어쩔 땐 호기롭게 자만하기도 했던 나를 안다. 반면에 남보다 한 참을 뒤쳐진 상태에서 인생의 과제(?)를 하나 해결하면, 미친 듯이 손을 번쩍 들어 올리고 "저 여기요! 저 통과했어요!!"라고 자랑스럽게 누군가에게 외쳐보고 싶은 마음도 사실인 것처럼.

이번엔 후자였다. 내 나이 앞에 " 高"라는 등급이 매겨지고,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여러 위험수당에 해당되는 적지 않은 비용이 지급되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좁아진 가능성을 뚫고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의 절박함은 그 배가 된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할 수밖에 없는 이들 중에 나도 한 명이 되었다.

 

생각보다 좋은 결과가 일찍 찾아왔다. 여기저기 떠도는 각종 블로그의 글들을 보며 이 정도면 나도 꽤 빨리 이곳을 졸업하겠구나 긍정하며 그 이후의 여러 번의 p/f단계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던 나는 짧은 단꿈즐겼다. 가족들이 기뻐할 생각에 조금은 이르게 소식을 알렸고, 조심스럽지 못한 내 소식은 1년 넘게 보지 못한 친척들의 귀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느꼈던 그 불길한 기운이 시작이었을까?

스스로 결과를 알게 된 이후 3번의 검사가 이루어지는 매주마다 "불안"의 가시방석이 자꾸자꾸 나를 힘들게 했다.  내 신체적 변화에 대한 확신이 서질 않았다. 내 몸은 그대로인데 오로지 수치로만 확인받아야 하는 그 찰나의 순간, 심장은 두근거리고 지금은 내 앞에 절대자 같은 존재의 대답이 긍정적이길 손 모아 기도했다. 어쩌면 내 불안은 스스로 알게 결과의 메타포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 달간의 짧은 시간이 그렇게 지나갔다. 의사는 무미건조한 말투로 'missed abortion'이라도 적힌 진료 확인서를 건네주었다. 나의 임신 종료를 공식화하는 순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내 마음 한 구석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였다. 

 

열심히 빌드업해서 쌓아놓은 성을 다시 내 손으로 무너뜨리고 처음부터 똑같은 일을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얼마 후면 어두워질 시간을 앞두고 목적지라 생각하던 산꼭대기의 어느 중간쯤을 다시 내려와 새로운 길을 찾아 올라가야 한다는 그 암담함이,

그리고 결과를 알 수 없는 그 성공의 가능성을 위해 또 기도하며 보내야 할 수많은 시간을,


'나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 걸까?'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가 겁이 난다.

어떤 긍정의 에너지도 쉽게 엄두가 나지 않는다.


휑하니 싸늘한 집 안에서 나 혼자 불어 들어오는 바람을 막기 위해 고군분투하거나, 누군가를 피해 여기저기로 도망치고 있는 내 요란한 꿈을 꾸다 깨는 걸 보면 요 며칠 내 마음의 동요를 나  역시  느끼고 있는 것이다.


'왜 하느님은 한 번에 축복을 내려주시지 않는 걸까? 시간이 부족한 나를 왜 더 조급하게 만드실까? '

아무도 없을 때, 어떤 일을 하다가  불쑥 내 입에서 계속 똑같은 숫자를 반복하고 있다. 원망이 아니라 아쉬움인지 아니면 자괴감인지, 이번 기회에 다시 생각해 보라는 하늘의 뜻을 알아채라는 것인지...



똑같은 낙제점을 반복해서 받고 있는 이 기분.

동전을 머리 위로 던지며 부디 성공을  바라는  

기약 없는 희망.

확실치 않은 결과를  위해 남은 재물을 몰빵 하는

무모함 같은 도전. 


이런 내 안의 마음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가라앉을 수 있을 것 같다.

함부로 긍정할 수 없다.





작가의 이전글 벚꽃이 지더라도 우리에겐 더 많은 날이 남아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