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이 아니라 하루가 무거웠던 시절
나는 늘 잠을 늦게 잤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도,
잠이 오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그냥
눈을 감으면
내일이 올 것 같아서.
눈을 뜨면
아무 일도 달라지지 않은 채
또 하루가 시작될 것 같아서.
그래서 오늘을 조금 더 붙잡고 싶었다.
내일로 넘어가지 않기 위해
억지로 밤을 늘였다.
그러다 부산으로 여행을 갔다.
이박 삼일.
길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그곳에서는 이상하게도
아침이 나를 깨웠다.
알람이 없어도
눈이 먼저 떠졌다.
운동을 가는 일도,
하루를 시작하는 일도
전혀 무겁지 않았다.
아무것에도 쫓기지 않고
내가 정한 리듬으로 사는 하루.
원하면 걷고,
지치면 쉬고,
배가 고프면 먹고.
무엇보다 좋았던 건
이 하루가
내일도 가능하다는 확신이었다.
그래서 하루가 빨리 지나갔고
그래서 내일이 기다려졌다.
회사로 돌아온 뒤
나는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왜 나는
회사에 다닐 때만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앞으로도
아마 회사를 다닐 것이다.
하지만 매일을
기다려지지 않는 하루로 살아가기엔
내 인생은 생각보다 짧고
꽤 소중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나를 속여보기로 했다.
나는 지금
잠시 지구에 여행 온 사람이라고.
우연히 착륙했고,
아직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몰라
이것저것 체험해 보는 중이라고.
그래서
9시부터 6시까지
완벽한 회사 사람으로만 살지 않기로 했다.
아침에 집중해서 일을 끝내고
하루에 한 시간,
회사 안이지만
분명히 나만의 시간을 만들었다.
글을 쓰고,
기록을 하고,
조금 숨을 고르며
나를 다시 붙잡았다.
그렇게 하루에
아주 작은 틈을 만들었을 뿐인데
내일이
조금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피곤함 대신
아주 미세한 설렘이 생겼다.
그래서 인스타 계정을 하나 만들었다.
서른.
어쩌면 늦은 나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직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른다.
그래서
지구에 막 도착한 사람처럼
살아보려 한다.
좋아하는 걸 기록하고,
잘하는 걸 발견하고,
모르겠으면 그냥 해보면서.
이 기록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겠다.
누군가에게
작은 울림이 될지도 모른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다.
나는 더 이상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잠들지 않겠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