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은 한마디로 해고였다.
그 이유는 바로 엄청난 경제적 사건 때문이다.
나는 80년대생 엄마다. 그것도 따악 80년 2월생. 나때는 2월생까지 입학시켜줬기 때문에 79년생들이랑 같이 학교를 다녔다. 인천 촌구석 공부 못하는 동네에서 깜냥껏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 사대문 안 대학생도 되었다. 대학 다니면서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 시기에 갑자기 일본 바람이 들어서 일본 어학연수를 결심하고는 졸업 직후 도일. 히라가나도 못 외운채 시작한 도쿄 생활이었는데 일본어능력시험 1급에 합격하고 10개월만에 돌아온다.
졸업하려면 토익점수가 800점 넘어야 하는 시대였기에 읽고 해석하는 영어도 되고 일본어도 조금 할 줄 아는 덕분으로 남들보다 좀 편한 방식을 거쳐 로펌에 취직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정규 첫 직장에 단 하나 있는 자리를 맡아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럭저럭 중간쯤 되는 노력으로 편히 지냈던게 문제일까
몇 년 잘 다니고 있었는데 출근 하다가 어이없는 큰 교통사고를 당한다.
갈비뼈 골절 / 천장관절 탈구 / 치골뼈 완전골절 / 제5중족골 골절 / 정강이뼈 골절 골이식
전치 12주로 시작은 했지만 치료 완료 기간은 알 수 없음. 정형외과 방사선과 단골 손님에 산부인과 정신의학과까지 골고루.
어쩔 수 없이 병가를 내고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는데 문제는 이 시기에 회사 또한 어려워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리만 브러더스 사태.
하필 회사의 주 고객이 리만브러더스였고 함께 자금난을 겪다가 M&A로 결정이 났다.
동종 회사끼리의 인수합병.
직원들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지고 내가 11개월 만에 복직을 한 직후 1차 정리해고 명단이 나왔다. 회사 동료들은 뒤숭숭한 상태이고 난 사회생활에 대한 감을 잃어버려서 어버버 하고 있을 시기.
안 짤려서 다행이야.
그렇게 정리해고 물결이 다 지나갔는 줄 알았는데. 예감이 좋지 않은...
12월 마지막주에 변호사님 방으로 불려갔다.
"00씨, 아쉽지만 12월 31일자로 퇴사하셔야겠습니다."
이 말을 해주시는 변호사님이 평소에 참으로 젠틀하신 분이었고 단어를 건네시는 목소리만으로도 너무 미안해하는 마음이 전해져서 듣자마자 눈물이 줄줄 쏟아졌다. 엉엉 소리내면서 울었던 거 같다. 나이 서른이나 먹어가지고 눈물 콧물 줄줄이라니.
내가 그동안 일을 너무 대충 했나. 자책도 들고 교통사고만 아니었다면 있던 자리에서 열심히 일해서 평가가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10개월 동안 자리를 비워서 그런가 싶고.
하지만 내가 뒤집을 수 있는 건 무엇 하나 없다는 걸 아니까 조용히 한 박스의 짐을 싸서 나의 첫 직장에서 걸어나왔다.
2009년 12월 31일이었다.
리먼브러더스가 망한 게 내 개인사에 이렇게 큰 타격을 주나.
사실 IMF 역시도 내 인생에 중요 사건이었다.
신입생 입학년도에 경기가 더욱 나빠지면서 고달픈 대학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으니까. 미리 좀 알았더라면 달라졌을텐데.
그래서 오늘도 이 시대의 흐름이 어떤지 귀를 쫑긋 눈을 반짝 관심을 두게 된다.
시대를 알아야 위험도 피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