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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서 C Aug 23. 2021

나는 까칠하게 살 수 있을까


-OO씨 조금 더 친절하세요

-사람들에게 저자세로 굴지 마세요


관리자급의 선배에게서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연이어 그런 말을 들었다. 나는 한껏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도통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의문이었기 때문이다.


친절에도 총량이 있을까.

만약 있다면, 나는 아마 이 직업을 하면서 평생의 친절함과 배려를 소진하고 있는 것 같다.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예의가 1이라고 한다면 나는 직업적 고정관념 때문에라도 1.5의 친절로 회사생활에 임했다고 자부한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기분이 태도가 되기도 했다. 어느 날은 0.9의 친절을, 그리고 어떤 날은 무례한 이들에게 0.1의 극단치를 보여주며 성질을 내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회사  사람들은 양극단으로 치우쳤던 모습만을 기억했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납득할  없는 그들만의 기준으로 내가 가늠할  정도의 친절과 때로는 그마만큼의 건조함을 요구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다양한 인간군상을 마주한다. 첫 통화부터 반말을 하는 의뢰인이나, 비서에게 농담 따먹기를 하고 싶어 별 필요도 재미도 없는 수다를 늘어놓는 어느 대학의 교수나, 본인 회사에서나 과장이지 나에게까지 과장인 듯 구는 상대방 대리인 사무실 직원과, 같은 회사 스텝이면서 단 한 번도 나를 직함으로 부르지 않고 OO씨라 부르며 지시를 하듯 업무 요청을 하는 몇 년은 뒤늦게 입사한 후배나, 참 상식적이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반대로 전문가 대하기보다 직원을 더 대하기 어려워하며 예의를 차리는 변호사와, 큰아버지처럼 따스한 전문가, 생불이라고도 불리는 협업부서의 직원까지. 하루에도 몇 번씩 이렇게 다양한 특색을 가진 사람들을 마주하다 보니 한없이 친절한 사람을 칭찬하며 본받자 하다가도 나도 한 번쯤 저 사람처럼 막돼먹게 굴어보고 싶다. (이미 해봤으면서도)저렇게 까칠하게 굴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한계에 달했다. 친절을 강요받고, 같은 직원끼리마저 항상 고마워하는 태도를, 의뢰인이나 다른 전문가 앞에서 나에게 윽박을 지르며 갱년기 어머니들보다 더 예민하게 구는 변호사에게는 그가 내가 쩔쩔매는 것을 봐야만 한동안 잠잠해지기 때문에 그것을 한껏 느끼게끔 더 전문적인 빌빌 거림을 보여주고 ‘옜다 오늘은 이 정도면 만족하냐?’라는 듯 행동하면서 마음이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누군가는 갑자기 친절함을 배제한 내 행동에 희생양이 되기도 했고, 내 그런 행동은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와 타격을 안기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그 무례함에 사정없는 분노를 퍼부었던 이는 모두가 감수해 왔다는 불친절한 동료 직원이었고, 한동안 주변의 동료들은 무거운 분위기로 일을 해야 했고, 그에 그치지 않고 나는 모두 한 의존도 높은 전문가에게 그런 업무는 회사에서도 우리 업무가 아니라고 하니 시키지 말아 달라라고 나서서 말을 했다. 그리고 얼마 안가 그의 담당이 다른 비서로 교체되었다. 완급조절을 하지 못해 불쾌했던 것일까. 팀장은 그 일이 원인이 되지는 않았다고 했지만, 개인적인 일을 요청할 때 들어주면 후임 비서나 주변의 비서들이 또 그 일을 당연하게 하게 되니 아닌 건 아니라며 거부하고 선을 지키라던 그녀의 조언은 결국 담당 교체라는 결과가 되어 돌아왔던 것이다.


모난 돌이 정 맞는 것일까,

못난 돌이라 정을 맞은 것일까


당시 많은 생각을 했지만 결과는 이렇다. 지금은 자정에 연락을 해 당장 화상회의를 잡아달라는 전문가의 요청에 응하고, 점심시간에 본인은 내가 예약해 준 식사를 하러 가면서 당연한 듯 급한 일이라고 문서 편집을 시키는 사람들에게 네네 하면서 일을 하고 있다.


나는 내가 까칠하고, 까칠 까지도 못 갈 정도로 내 의사를 표현한 결과가 아주 이상한 고민이 되어 돌아오거나, 쌓아두었던 화가 한 번에 표출돼 한껏 퍼붓고는 스스로를 자책하는 결과로 이어져 이제 싫다는 말이나 거부의 어떤 의사 표현도 하기를 꺼려하는 소심한 사람이 되었다.


취업 전 호기로운 성격에 술을 먹다 종종 기골이 장대한 체대 언니들과 시비가 붙고, 길가다 어깨를 치고 가는 사람에게는 눈 똑바로 뜨고 다니라고 경고를 했던 나였지만, 거의 한 세대를 습관적 친절로 살았던 탓인지 스스로도 이렇게 변한 내가 가끔 낯설기도 하다.


울적한 날에는 친구들이나 가족들에게 털어놓는다. 물론 한번 누군가와 언성을 높인 날은 내가 잘못하지 않았다는 인정을 받고 싶어 더 많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자주 그런 말을 한다. ‘너는 왜 잘못한 것 없는데, 그렇게 당당하게 질러놓고 네가 잘못한 마냥 죄책감을 갖느냐. 너답지 않다.’는 것이다.


나다움이 무엇일까. 타고난 기질 같은 것이 있다면 갈팡질팡 휘둘리는 것일까. 가족이나 친구들은 말을 독하게 하는 나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내가 화를 낸다면 누군가를 정말 가만두지 않는 것을 봐왔고 때문에 조금이라도 상대를 걱정하곤 했었는데, 이제는 호락호락하지 않은 몰티즈처럼 컹컹 짖을 뿐, 단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은, 기가 약해 더 큰 소리를 지르는 예민한 존재를 어르고 달래는 것처럼 나를 위로하고 이야기한다.


내가 누군가와 갈등을 빚으면 마음에 남는 부분은 그것이다. 물론 상식적이지 못하고 무례한 일이라도, 내가 그 정도로 남에게 화를 내비쳤다는 것이 꼭 해서는 안 되는 일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화의 정도는 커져가고 있고, 이러다 자기혐오로 가득 차 아무것도 시도할 수 없고 아무것도 거부할 수 없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릴 것 같다.


간만에 들어온 브런치 통계에서 내 글을 찾는 사람들이 어떤 키워드로 검색을 했었는지를 확인했다. 참 꾸준하게도 '로펌비서 이직', '로펌비서 퇴직'이라는 검색어가 높은 순위를 점유하고 있다. 그중엔 나와 같이 점점 가면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퇴사할 순간을 재고 있는 사람들이 태반일 것이다. 더위가 꺾이고 부서지듯 내리는 비에 그들과 나의 묵혀둔 화가 씻겨져 내리길 바라며, 간만의 푸념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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