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보다 너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넌 그게 아닌가봐
지난 이야기 : 생애 첫 팬미팅 참가, 그리고 서울에 대한 간접경험은 새로운 덕질, 그리고 나의 견문을 넓히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시골에만 살았던 나에겐 정말 더할 나위없던 그런 놀라운 견문을 넓힌 선택이었다.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다는 것, 그리고 관심이 생길때 흥분은 가라앉을 수 없기 마련이다. 그런 흥분감을 낮추는 것도 좋은 방법이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그런 리미터를 잠굴 이유도, 여유도, 능력도 없었다. 이러한 한계점은 서서히 인간관계뿐만이 아니라 다양한 곳에서 나에게 경고를 주었었다. 팬미팅에서도 그랬고, 학교를 다닐때도 그랬다. 하지만 난 그러지 못하였다. 결국 이 모든 것은 쌓이고 쌓여 나에겐 엄청난 스노우볼이 되었다.
이번 4편에서는 나의 첫 흑역사, 그리고 덕질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어두웠던 이야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누군가에게는 별종이라, 누군가에게는 미친놈이라 불리었던 그런 덕질의 첫 위기가 이렇게 닥쳐올줄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다 관두려고 했던 때에 일어났던 기적같다고도 못할 그런 기적, 여러가지 일들이 많았던 그 당시의 기억을 잊지 못한다. 그러한 모습들을 솔직하게 꾸밈없이 그려가길 약속드리며 시작해보고자 한다.
- 그것은 잘못 달려가는 오렌지로드 같다고
2학기의 시작, 새로운 마음을 가득 담고 나름 행복(?)한 휴식기를 가졌기에 기대가 컸었다. 새로운 수업들의 등장과 공강의 짦은 여유는 나름대로 생각의 정리와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유용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좋은 이야기만 놓기에는 나의 상황 자체는 매우 좋지 못하게 변하고만 있었다. 서서히 좁아져가는 나의 입지와 위치, 친한 친구의 갑작스러운 휴학은 버틸 수 있는 한도를 더더욱 넘어서고 있었고, 수업은 적응하기 더 어려워져만 갔다. 그렇다고 학교를 갑작스럽게 관둘 수도 없을 노릇에 여러 과제와 관계 실패의 여파는 가중되는 스트레스를 감당할 처지도 되지 못했다. 거기다 부모님의 가게는 문을 닫으며 미래 조차 보이지 않는 현실. 다행히 수업의 한두개는 나름 적응은 했지만 그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워크숍이라는 (라 읽고 또다른 술자리) 행사가 과에 생겼고, 술자리에 너무나도 참가하고 싶은 마음에 없는 돈까지 부모님께 부탁하여 술자리의 값을 냈었다. 어딘가 불안한 내 마음은 결국 틀리지 않았다.
생각치도 못한 일은 갑자기 다가온다고 하더니 정말 그랬었다. 가는 길 내내 불안하고 어딘가 초조했던 내 마음과 불안감, 밤에 워크샵 장소였던 어느 지역에 도착하여 열린 술자리, 같이 방을 배정 받은 형에게 야구중계를 부탁하며 즐거운 마음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찾아가게 된 술자리에서의 첫 분위기는 좋았었다. 나에게 계속되는 질문세례, 짝사랑하던 누나에 대한 이야기나 나의 덕질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대놓고 덕밍아웃을 시전하던 그 당시의 나였기에 감당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이런 짓을 그냥 안하고 말거다.
좋았을것만 같은 시간은 갈수록 나를 내보내려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하지만 나는 눈치가 전혀 없던 때의 어리숙한 시기였고 그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 줄 알았었다. 정말 그런 줄만 알았는데 갈수록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질문의 강도를 넘어서 어느 선배는 나에게 딴지를 걸기 시작하고, 결국 한명이 총대를 매듯이 나를 누군가 부른다며 문 밖으로 내보냈고, 그 결과는 문을 걸어 잠그기 였다.
정말 나를 찾는 줄만 알았던 선배는 나를 잠시 마주치더니 그냥 지나가버렸고, 이제서야 내가 속았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잠궈진 문을 두들기고 문고리를 당겨봐도 열리지 않는 문을 두고 여러 생각이 들었다. 다 때려부실까, 차라리 도게자를 박을까? 하는 그런 생각들... 시간이 흘러 문이 열렸지만 자기들끼리 입을 맞췄는지 다같이 나가버리고 그 자리는 나 혼자였다.
자기 객관화가 되지 않는 현장에서 결국은 모든 것이 무너저벼렸음을 깨달았지만 이미 시간은 흘러간지 오래였다. 방에 돌아가 잘 마셨냐는 형을 뒤로 한체 그저 울기만 했었다.
아무런 사정을 모르던 형은 이야기를 듣고 차라리 내려보내질 말았어야 했다며 한탄했다. 나 때문에 이게 무슨일이야, 결국 모든 것이 무너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꿈이었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분명한 현실이었다. 이게 그냥 이세계물 이라면 다 지나가기만 하는데...
큰 데미지와 나에 대한 회의감은 결국 장소를 나와 돌아가는 길에 터지고 말았다. 긴 시간을 지나 집으로 돌아간 후에 결국 나는 '휴학' 을 결심했다. 부모님과의 상의는 둘째치고 내가 이러다간 정말 끝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집에서만 있던 짦다면 짦을 10일간의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던, 그저 그렇게 시간은 여지없이 흘러가지만, 나 혼자만의 세기말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혼자만의 세기말, 울려고 해서 나는 울었어
집에 쳐박힌지 4일째, 결국 본인의 엄마가 직접 나섰다. 말로는 잠시 수업이 없는 때라고 둘러댔지만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결국 알아버리고 말았다. 사실 집에 돌아오던 때의 저녁에 내 표정을 보고 '무언가가 있구나' 라며 눈치를 챘지만 말을 걸진 않았다는데 불러나오면서 결국 모든 일을 말했다.
처음에는 괜찮다고 했다만 전혀 그렇게 보이지가 않았다. 집에만 있는 나를 보며 많은 트집과 험한 말들이 오갔다. 너가 버텼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거라며라는 말도 들었다. 그런 말들이 진심이 아님은 알지만 그래도 너무나도 가슴에 상처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를 찾아갔다. 교수와의 면담, 조교와의 면담에서도 결국 해결은 못보고 내려오는 찰나에 동기들을 마주쳤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있었던 애는 날 보고 무언가 뒷담을 하는가 싶었고 그 모습을 봤던 나는 그저 착잡하기만 했다. 정말 이렇게까지 내 취급이 안좋구나 하면서.
집으로 돌아와서 결국 모든 것이 끝났음을 확신하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보다못했는지 결국 싸우기도 했다, 나는 내가 알아서 한다면 이랑 너가 해서 뭐가 되냐며 확실히 말하라는 그런 흔한 싸움 끝에 모든 것을 그만두기로 하며 문을 걸어 잠궜다. 본격 세기말적 감성의 시작, 에반게리온에서만 봤던 암울함을 겪고야 말았다.
소통없는 그런 몇일간의 기억은 매우 끔찍하다. 만화고 뭐고 다 그만보고 다 너네들 때문이라며 가진 여러 굿즈나 스티커들을 정리하고, 모든 곳에서의 흔적을 지우기로 했다. 더이상 볼 면목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다 망해버린 인생, 너네를 보고 내가 이렇게 된거라며 핑계아닌 핑계를 두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였다.
점점 더 좌절과 우울에 빠져버리며 결국은 '자살' 을 생각하고 말았다. 그것 말고는 전혀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내가 없어져봤자 누가 찾겠냐는 생각에 사로잡혔으니까. 아무도 깨어있지 않은 새벽의 어느 시간, 부엌에 있는 칼을 가져다 댔다. 하지만 될거라 생각했지만 이상하게도 두렵고 무서운 감정만을 느끼고 말았다. 이렇게 첫 시도는 끝났다.
두번째는 커텐의 줄을 손을 잡았다. 그냥 고통없이 빨리 가고싶다는 생각만 들던 찰나, 다시 줄을 놓고 말았다. 난 아직 죽기 이르다는 내가 나에게 보내는 메세지였을까. 아니면 차라리 더 고통받고 살라며 한가지 용기를 준 신의 메세지였을까. 두번의 실패 이후 부질없다며 그저 잠자리에 들었다.
10일의 운둔에서 마지막에 가까웠던 날부터 우울한 감정만을 가지며 입에 잘 대지않던 술을 대기 시작했다. 억지로 친해지려고 들어간 술자리 말고는 마시지도 않던 캔맥주를 들이키며 나의 후회되는 인생을 한탄하기만 했었다. 아무도 내편이 아니라는 생각, 그리고 맥주는 참 맛없다는 생각만이 교차하던 순간,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 그리움 찾아서 꿈을 찾아서, 다시 시작해보는 것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전화는 숙취로 고생하는 날 놀라게 했다. 몇번의 말싸움때도 가만히 듣고만 있던 그였기에 의문은 엄청나기만 했다. 설마 날 때리진 않겠지 라는 생각도 들었다.
같이 차에 타서 간 곳은 '춘천' 이었다. 새롭게 이사를 가는 곳이라며 한번 같이 보러 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나름 바람도 좀 쐬고 가자는 취지가 아니었나 싶다. 뭐 어찌되었든간에 같이 따라 나서며 여러 곳을 구경했었다.
새롭게 이사하는 곳은 도심에서 조금은 외진 곳이였다. 시장과는 가까운데 장점은 그게 다였다, 너무 외진 곳이라 잘 찾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는데 다행히 이사할 곳은 나중에 알고보니 다른 곳이였다.
여러곳을 둘러 본 이후 돌아가는 길에 아버지는 나에게 왜 휴학을 하고싶냐며 물었다. 저 사람의 입에서 나올 질문이 아니었던지라 매우 놀랐었다. 처음에는 말을 아끼고 있다가 생각나면 말하라길래 조금 뜸을 들였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한 감정, 하고 싶은 이유를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다고 구체적으로 말은 하지 않았다. 이미 그 일을 해결하려고 학교까지 찾아갔던 사람에게 더 말해봤자 화만 더 부추길 일이었으니까, 이를 듣던 아버진 잠시 생각을 하더니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잠시 엿들었을 때의 분위기는 매우 좋지 않았었다. 하지만 내가 하려고 하는 이유를 대신 설명하고 이해하자는 말을 들었을때 감정은 매우 의외였었다. 평소에는 이런 일이 생기면 화만 내던 사람이 천천히 이유를 듣고 이해하자고 하니까 적응이 안되었다. 그래도 내심 고마운 감정을 가지며 넘어가게 되었다.
집으로 돌아간 직후, 많은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생을 마감할 수는 없다며 여러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찾은 결론. 그것은 '내가 가진 능력으로 다시 생각하고 만들어보자' 였다.
그렇게 찾아 나선 새로운 리프레쉬는 바로 '포스터 제작' 이었다. 학과 수업에서 비슷한 것을 배웠었는데 나름 한번쯤은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기도 했었고 집에서 할만한 것들이 바로 이런 거였었다. 시간도 때우고, 내 포토샵 실력을 조금 더 늘려보고 싶다는 생각에 시작한 단순하다면 단순할 작업들은 서서히 작업물들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피드백을 받기 위해 연락을 주고받던 학과의 교수님들에게도 문자를 보내기도 했었다. 1학기에 만나뵈었던 교수님이었는데 그 분과는 이야기가 나름 잘 맞기도 했기에 한번 보내봤는데 피드백을 상당히 많이 해주셨기에 아직도 감사드릴 뿐이다. 어찌되었든 이러한 작업을 이사 가기 직전까지 지속적으로 하며 10개 정도는 만든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굳어가고 멈춰진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마음을 다잡고 했던 터라 조금씩 감각이, 그리고 아픈 시간들이 아물어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 포기할바에는 차라리 다시 시작해보자는 생각이 더 맞았기도 했으니까. 덕질이 멈추려던 시간을 다시 되돌려 나의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어 나가며 천천히 가는 것은 많은 묘미가 있기도 했다.
그와중에 더 다양한 만화나 애니메이션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동안은 멈추었지만 다시끔 찾아가는 그런 과정은 예전의 모습을 복구시켜주는데 큰 역할을 해냈다. 그렇게 찾아나선 만화들은 새로운 시작이자 다른 곳에서 열릴 나의 덕질 인생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게 된다.
5편에서 이어!
- 글을 마치며
어려웠던 시간을 다시 써보려니까 마음이 조금은 착잡하지만 시원섭섭하기도 합니다. 그 당시에 제가 겪었던 그런 사건들이 어렵기도 하고 받아들이는데 시간이 걸리기도 했지만 지금으로서는 저를 더 성장하게 해주었던 비료같은 그런 시간같기도 합니다.
사실 술자리에서의 그 사건은 무조건적으로 제 잘못이 없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부러 버텨나갔다는 것이 얼마나 그런 화를 자초했는지, 그리고 눈치없이 있다는 것이 사람들이 얼마나 싫어하는지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물론 그때의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전부터 저를 비꼬는 모습은 여러 감정이 교차하지만, 제가 잘못한 것도 바로 잡아보고 싶었습니다. 인정하는게 저에겐 차라리 더 낫기도 하구요.
그 이후의 집에서의 은둔 생활은 지금 생각하기에도 많이 아찔하고 어려운 선택이었습니다. 제 인생에서 거의 최초로 잠시동안의 그런 생활이자 히키코모리가 되었던 적이 아니었나 싶은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굉장히 피곤하고 어려웠던 때의 휴식을 원했던 저에겐 그게 차라리 당연한 선택이었을 거라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보기만 하던 사람들에겐 어찌나 힘들게 보였을진 지금 생각하면 많이 아찔하네요. 저 역시 그렇구요.
사실 본문에는 넣으려고 했다 없앴지만, 아버지와의 짦은 드라이브 이후에 중국집에 들려 밥을 먹은 기억이 있습니다. 저에게 볶음밥을 무더기로 주며 어깨를 두드리던 것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욕먹으면 어쩌지, 정말 화내면 어떡하지 하던 때에 밥을 먹으며 다시끔 용기를 내기로 했던게 바로 그런 계기였거든요. 안되는 것을 돌려서 차라리 되는 것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이 그 시점에 다행히 들어오면서 새로운 툴들도 만져보고 다시 덕질을 시작하게 되었던 포인트가 되었기에 잊혀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음 5편에서는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 그리고 저에게는 소중한 '마법소녀' 와의 만남을 다루어보고자 합니다. 읽어주셔서, 봐주셔서, 살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