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고양이같이 달려가도 나는 그저 고양이인걸
지난 이야기 : 정든 고향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하게 되어버린 나. 여러 시행착오와 적응은 이미 따라왔음을 알았지만, 매우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정신적인 고통과 불안감이 다 해소가 되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그런 이사는 나에겐 적응을 떠나 너무나도 힘들었다.
다행히나마 적응을 위해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어느정도 다닐 길들이 눈에 트이고, 새로운 만화들을 찾아보면서 어느정도 해소가 되는데는 성공하였다. 또한 언젠가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되어줄, 그리고 좋아하게 될 한 장르를 찾아낸 것도 나름대로 하나의 수확이었음은 분명했다.
이번 6편에서는 드디어 터져버린 나의 불안증, 그리고 가게되었던 여러 곳들의 이야기, 한 팬미팅과 만화를 찾게 되었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참고 참았지만 결국 생겨버린 마음의 병, 그리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가지의 재활같은 활동은 지금도 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심각했던 일련의 사건들과 고통은 이루어 말하기가 어려웠던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고백같은 이런 글쓰기가 나에겐, 그리고 봐주실 여러분들에게 용기있는 고백이자 덤덤한 하나의 인생사처럼 생각해주셨음 좋겠다.
- 미소같은 하루가 없어진다면
참고 참았던 것들이 결국 터져버리고 말았다. 그래도 우울증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나아질줄만 알았던 시간, 하지만 이건 보통 병이 아니었다.
흔히 '패션 우울증' 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정말 우울하지도 않은데 분위기나 여러 요소에 휩쓸려 '난 우울해' ,'난 외로워' 같은 말을 달고산다는 그런 병. 나도 사실은 그런 줄 알고 있었다. 감정 기복이 매우 심하기도 하고 그 당시의 일과는 상관없이 우울하다는 말을 말버릇처럼 했으니까. 하지만 이건 패션이 아니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 혼자만의 시간을 자주 가지게 되었다. 아버지는 직장의 일로 같이 따라오지 않으셨고, 엄마는 가게를 처분한 이후로 자신의 경력을 살리기 위해 다른 식당에 취직을 했다. 이런 부모님의 숨겨진 그런 고통 역시 나에겐 너무나도 우울증의 한 요소를 담당하게 만들었다. 그저 한 식당의 주인으로만 있던 엄마가 남의 가게에서 일을 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말은 자주 하지 않더라도 의지가 되었던 아버지의 부재는 너무나도 크고 힘든 자리였다.
결국 마음을 먹고 병원에 가기로 결정했다. 다만 병원이 아닌 '상담센터' 라는 곳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좀 특이한 곳이라 생각했지만 그래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증상이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 마음을 먹고 갔었다. 누군가와 상담하고 말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하지만 병원이나 센터라는 이름이 붙는다면 여러모로 가기가 껄끄러워 지는 것이 사실이었기에 아무한테도 말을 하지 않으려했다. 다만 그래도 엄마에겐 말은 해야겠다며 귀뜸은 했었지만.
미리 전화를 줬던 센터에서 여러 이야기와 검사를 받기로 했다. 그나마 다행히 첫 방문이라 무료로 해주겠다며 여러 뇌파라던가 체크하는 검사지 테스트를 했었는데, 여러모로 좀 시간이 오래걸리는 편이었다. 그냥 말만 주고받고 구체적인 치료나 그런 것을 하는 건줄만 알았는데 예상외로 과학이 들어가니까 좀 오묘했다.
검시 이후 받은 결론은 다름아닌 'ADHD' 라는 결과가 나왔다. 뇌파 검사때 그렇게 나왔다면서 담당자가 뭐라 이야기를 하는데 나는 그 소릴 듣자마자 모든게 무너지는 그런 것을 겪었다. 더군다나 나의 증세가 장기적으로 봐야할 불안증세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담당자가 하는 이야기는 하나도 안들리고 아예 뛰쳐나가서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만... 나중에 한번 와서 다른 검사를 하면 좋겠다며 치료를 받아보자고 했었던 것 같은데 사실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냥 ADHD 이 단어 하나에 모든 정신이 흔들려서 뛰쳐나오듯 나가고 말았다.
매우 충격적인 결과에 버스를 타면서 살짝 눈물을 흘렸다. 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되버린걸까. 내가 저질렀던 모든 눈치없는 일들, 아니면 그때 일어났던 일도 다 그런 것 때문일까. 아니면 만화를 좋아하는 것도 다 그것 때문일까? 라는 생각에 자괴감과 패배감이 절로 들고 말았다. 엄마가 이걸 알아버리면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가야할까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러모로 우울했던 그 시간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누구라도 잊혀지겠냐만...
말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어떻게든 해결은 봐야하고, 이대로 있다간 정말 내가 죽을 것같아서 엄마에게 사실을 털어놓았다. 겉으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다음날 일어나보니 문자 하나가 들어와 있었는데, 엄마의 문자였다. 그 문자의 한 문장을 이야기 한다면...
너는 절대로 약한 애가 아니야, 그게 뭐가 되었던간에 이겨내면 돼
라는 문자를 보냈었다. 눈물이 내 눈에서 흘러내렸다. 떨어지는 꽃잎같이 흘러내리던 그 눈물을, 그리고 슲므을 어덯게 이겨내야 할까, 어떻게 해야할까.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과 여러 갈등이 교차하여 마음을 먹고 결국 다른 지역의 센터를 가기로 했다. 경기도 안양에 있는 곳이라는데 시간이 꽤나 걸려서 여러모로 지루했던 교통길, 막 도착한 곳은 여러 검사를 하는 곳이 많았었다. 알코올 중독이나 여러 문제를 검사하는 곳이었다.
여러 검사를 마치고 담당 원장을 찾아뵈었다, 나에게는 문제가 없다며 천천히 고쳐나가면 된다고 위로를 해주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조금 나에게 하자가 있었다며 받아보는게 어떻냐고 했단다. 어찌되었든간에 다음에 다시 온다고 말하며 돌아갔지만 다시 가진 않았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엄마는 내가 이를 혼자서 이겨내길 바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본다면 차라리 그런 힘이 아닌, 내 자신이 천천히 고쳐나가는 것을 선택한게 차라리 옳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물론 마음의 불안감이나 여러 단점들이 다 고쳐진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진다는 것, 그리고 혼자 이를 생각하며 찾아내는 것은 좋은 효과가 있었다. 눈치없이 행동하는 것을 남의 말에 도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내가 찾아내서 방법을 생각하고 고쳐나가는 그런 묘미가 있었기도 했었다. 그라도 보니 불안한 것도 조금은 줄어들기도 했었구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문장 중 하나였던 '미소만을 보고싶어', 이 시기에 봤던 '마멀레이드 보이' 라는 애니의 주제가 이름이다. 언제나 활기차고 즐거운 하루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생사가 그러니까, 미소만을 보고싶은 나의 그 당시 마음은 욕심이었을지, 아니면 갈구하고 원하던 희망이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남들에게 관심받으려고, 친해지려고 했었던 여러 행동이나 방법들은 너무나도 어설펐고, 힘들어 보였을 것이다. 그런 결과를 얻었으니 당연히 우울증은 더 쌓여갈 수 밖에. 가식과 거짓의 미소가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짓고 싶은 그런 미소가 되었음 어땠을까 하는 생각의 하루가 진정 내가 바라던 소원이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 설레는 말괄량이의 하루가 소녀같이 이어지며
일련의 사건들, 그리고 여러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첫 방법은 바로 '다양한 곳을 찾아가기' 였었다. 서울에서 열리는 여러 행사, 아니라면 이사간 곳의 도심걷기와 같은 사실 생각해보면 매우 단순한 것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나에겐 하나의 도전과 같은 것들이었기에, 해내야한다는 생각이 가득했기에 여러 시도를 해보게 된다.
그렇게 시작한 여러 방법은 나름대로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분위기를 바꾸고 좋은 생각만을 하게 해주었던 여러 영화 감상 (보헤미안 랩소디가 그 예), 다짜고짜 신청을 넣어서 하게 된 축구 정모.. 등등 많았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바로 '팬미팅'이다. 내심 바라고 바랐던 팬미팅들이 한동안 열지지 않음에 조금은 불안하기도 했던 나에게 하나의 팬미팅 소식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셋쇼마루와 여러 캐릭터로 유명한 김승준 성우의 팬미팅이었다.
내심 기대했던 미팅이 잡힌 것에 상당히 좋은 기분을 느꼈었다. 내가 바라고 바라던 서울가기, 그리고 좋아하는 작품들을 잘 찾아봤다는 나름대로의 자랑거리가 생겼으니까. 아니라면 그저 다시 가고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도 든다.
바라고 있던 미팅의 이전에 나디아를 이어 리리카 SOS라는 작품을 자주 찾아봤었다. 간호천사로서 사람들을 지키고 다크 조커라는 악에 맞서 싸우는 리리카의 이야기, 사람을 구하고 치유하는 그런 마법소녀라는 작품이 이색적으로 다가왔었다. 마법소녀에 빠지던 때에 중심적으로 본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다.
시간이 흘러 2019년, 새해가 되었다. 팬미팅이 딱 그 시기에 있던터라 여러 준비를 갖추고 서울로 떠났었다. 나름 활기차게 가겠다 마음먹고 갔던 서울은 여전한 매력, 여전한 시간에 머물러서 기다리고 있었다.
찾아간 곳에서 밥을 먹고 카페에서 시간을 기다리다 장소로 향했을 때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었다. 역시 유명한 성우는 언제나 와도 많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렇게 새해 첫 참가하게 된 팬미팅. 성우분의 여러 이야기와 작품에 대한 열정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서 여러 질문 시간이 있었는데, 내가 리리카를 언급하여 나름대로 주목아닌 주목을 받은 기억이 있다. 성우분은 아쉽게도(?) 리리카 SOS라는 작품을 기억하시진 못하셨다. (훗날 참가하게 되는 정미숙 성우의 팬미팅에서 기억을 하셨다. 물론 김승준 성우는 아니다) 그래도 인상깊은 질문을 골라달라는 말에 내 질문을 선택해주셔서 선물도 받고, 이런 작품을 좋아한다는 사람으로 인상깊게나마 남은 것 같아서 좋았던 하루였다. 내 덕력이 나름 좋긴 하구나 싶기도 했고.
우울하던 시기에 찾아간 팬미팅의 효과는 좋았다, 인정받고, 그리고 차분히 준비했던 그런 질문이 나름대로 서서히 내가 달라져 가는구나 싶었던 그런 변화를 체감하던 하루였기 때문이디. 때로는 말괄량이 같이 막무가내여도 좋지만, 때로는 요조숙녀같이, 점잖은 사람같이 조용히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좋다는 느낌도 들었으니까. 그 전의 팬미팅에서는 흥분에 흥분을 거듭하던 내가 아니라, 이젠 차분히 다가가며 인상깊게 남는 그런 팬으로 바뀌고 싶어했던 내 희망이 잘 보여준 것 같아서 기뻤다. 그리고 조금은 달라진 나를 볼 수있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정말로 좋았다. 정말로...
- 거북이는 의와로 빨리 헤엄치듯이 소통해보고 싶어
언젠가 자주 활동하던 커뮤니티에서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 게시판의 관리자가 개인사정으로 잠시 못하게 되자 임시직을 뽑다는 것이였다.
사실 '게시판 관리자' 라는 명칭 자체가 딱딱해보이고, 여러 부담을 껴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처음 활동하던 시기부터 원래 관리자를 보며 정말 힘들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었다 규모가 엄청난 사이트는 아니었고 중쇼 정도의 규모였지만 그래도 상주하는 사람 자체가 큰 머릿수가 되는 게시판이라 많은 부담이 있지 않았나 생각도 들었다.
내심 한번쯤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다른 개념이겠지만 고등학교에 다니던 때에 다양한 직책을 해보고 싶었지만 다 좌절되고 막혀버린 기억도 한 몫을 하게 되었다. 대학교때도 마찬가지였기에 이번 기회가 나에겐 새로운 시도이자 해보고 싶은 것의 마지막 기회라 생각했기에 과감히 지원하게 되었다.
예상외의 참가자가 1명, 그 1명이 바로 나였다. 그렇게 자연스레 되어버린 '임시' 관리자라는 직책. 정말 생각도 못하게 빨리 들어가서 많이 놀랐었다. 아무렴 어때, 내가 있을 게시판의 관리자가 되었다는 것이 내심 기쁘기도 했지만, 원래 관리자에게, 그리고 나를 믿고 넣어준 사람들에게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여러 방법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이렇게 얼떨결에 시작되어버린 애니메이션 게시판의 관리자, 임시라지만 여러 무게가 나를 찾아 올라탄 것만 같아 조금은 무서웠다. 내 손안에 이게 다 들어오다니... 라는 생각도 들어버린 터라 되돌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곳에서 많은 것을 해볼 수가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하여 더 많이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해택, 행복이었는지 가늠하긴 어려울 것이다.
여럼모로 외로웠던 시기에 다양한 사람들에게 의견을 받거나 주고, 이를 수렴한다는 것이 정말 해보고 싶던 일이었다. 그래서 첫 시작을 질문을 받고 답해주는 식을 많이 했었다. 이렇게라도 한번식은 좋고 싫음이나 여러 취향차이, 나에게 드는 생각을 잘 알아가기에 용이했다고 생각을 했었다. 나름 효과는 있었는지 조금은 들어오는 사람들이 생기고, 이벤트도 여는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는 시련의 시작, 올라가던 사람들의 숫자가 서서히 줄어들고, 결국 사이트에서 터져버린 '통폐합' 의 위기는 게시판을 찾아오게 되어버린다. 어떻게 해야할까, 차라리 손을 놔버릴까? 아니면 이를 각오하는 것이 나을까?
7편에서 이어!
- 글을 마치며
저의 이사 이후의 첫 이야기, 사실 병원같은 곳을 들낙을 했었던 것이 조금은 부끄럽기도 합니다. 좋은 이야기가 될 수는 없을 저의 아픈 사정이나 그런게 노골적으로 나오다 보니까 이미 썼어도 살짝은 얼굴이 붉어지는 것만 같네요.
사실 이 외에도 여러 병원들을 찾아다니고, 상담을 받기도 했었습니다. 아예 시간이 좀 지나서는 정신과에서 약도 타서 먹었기도 했구요, 처음에는 이게 정말 부끄럽기도 했고 기록에 남을까 걱정을 많이 했었습니다. 다행히 기록에 남진 않았고 여러모로 호전이 되면서 자연스레 받아들여지게 되었는데, 이게 사실 좋은건지 아직까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3번째 가는 팬미팅, 그곳에서 많은 에너지를 받았고 저의 만화에 대한 태도나 여러 지식이 많이 바뀌었던 때가 아니었나 생각이 듭니다. 그전만 하더라도 거진 수박 겉핥기 같이 알았다면 이 팬미팅 이후로는 서서히 속을 알아가는 그런 성향으로 많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더 많이 아시는 사람들이 많았기도 했고, 이를 많이 보면서 저 역시 달라지지 않는다면 이대로 있게 되는구나 라는 조금의 두려움이 변화를 찾아주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마침 그 당시에 유튜브나 다양한 곳에서 찾아보게 된 것도 영향이 있을거구요. 어찌돠었든 저에게는 하나의 터닝 포인트이가 되었기에 가게 된것에 대한 감사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시판의 관리자, 그리고 이런 직책을 맡게 되었던 때의 선택을 잊지 못합니다. 사실 많은 해택이 들어오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조금 있었다만 이건 그저 저의 욕심이었구요... 그래도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리고 방향성을 가지게 되고 생각하게 되면서 나름대로의 책임감이 생긴 덕분에 조금 더 적극적으로 만화에 대한 느낌이 달라진 것만 같은 기분을 받았습니다. 저를 선택한 이유가 '만화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셔서' 라 하셨던 어느 분의 댓글이 기억에 남는데, 저 역시 남 부끄럽지 않게 좋아했었기에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다음 7편에서는 게시판의 관리자로서 찾아오는 첫 위기, 그리고 이를 겪어내는 이야기로 찾아오도록 하겠습니다. 봐주셔서, 읽어주셔서,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