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 쓰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어렵다고 느끼는 이유는 결국 나의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에세이 같은 나의 글 생김새는 소설처럼 지어낼 수 없는 부분이 있기에 내 이야기를 얼마나 진심으로 담느냐가 글의 정체성으로 이어진다. 또 진심을 담아 써야만 시간을 내 나의 글을 읽어주는 상대에게도 예의가 아닐까 해서이다.
살면서 참 많이 듣는 말. "사람 사는 거 다 비슷해." 그러고 보면 나도 누군가에게 자주 하게 되는 말인 거 같다. 가족, 친구, 가까운 이웃의 살아가는 모습들만 보아도 이 말은 정말 어느 정도 맞는 거 같다. 그런데 모두가 같은 김밥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어도 속재료가 다르고 재료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는 것처럼 삶이라는 둘레 속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다를지인데 자신의 속이야기, 진심을 꺼내어 이야기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가족이라 해도 깊은 이야기는 서로 못하고 사는 사람들도 많다. 또 모든 걸 솔직하게 다 이야기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눌 때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은 반이 된다지만 어떤 기쁨은 나 혼자 다 만끽하고 싶기도 하고 어떤 슬픔은 소중한 사람들은 모르는 채 나 혼자만 감당하면 될 일이라는 마음이 들기도 하니까. 나를 통과하는 수많은 감정들은 내 안에서만 솔직하고 이기적일 뿐 세상에 나오는 순간 어느 정도 포장되고 미화된다고 생각하는 내가 모두가 보는 이곳에 진짜 나의 글을 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이런 생각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정말로 이곳에 진심을 이야기할까.'
누구나 상대방의 진심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느끼고 싶어 한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지도 모르겠다. 말 한마디, 찰나의 표정, 작은 행동 하나에서도 봄의 새순이 단단한 나무껍질을 뚫고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듯 진심이라는 것은 드러난다. 형태도 없고 오직 느낄 수만 있는 이 단어가 가진 힘은 그런 것이다. 그것이 단 한 줄의 글이라 해도 예외일 수는 없다. 되짚어보면 내가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 속에서 그러했고 읽었던 수천 자의 글들에서 그러했다.
나는 진심을 느꼈을 때 마음에 환희가 차듯 기뻤고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절망하듯 슬픔에 빠져들었다. 그러기에 진심을 잘 전달하는 것도, 전달받는 이의 마음가짐도 중요하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나의 의문은 처음부터 잘못되었다. 사람들이 이곳에 진심을 털어놓을까. 를 의심할 것이 아니라 먼저 글 쓰는 이로서의 나를 더 자세히 그리고 객관적으로 바라보았어야 했다.
'나의 글이 나의 진심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그 시작은 나여야만 한다. 결국 나의 이야기는 나의 글로 쓰여질 때 오롯한 진심이 담기기에.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아직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수 있는 작가로 신청도 하지 않은 때이다. 여전히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중인 나는 선뜻 작가 신청에 손이 나서지 않는다. 나의 글이, 나의 진심이 세상에 나올 수 있을까.
p.s 미래에서 온 인사
훗날 이 원고를 발행하게 된다면 저는 마침내 질문을 끝내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그리하여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만났네요. 부끄러운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만 같지만 저는 그저 담담히 저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보려 해요. 그곳에 있을 진심이 당신께도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