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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oresta Nov 17. 2021

숨을 쉬어도 숨이 막힐 땐

"춤을 출 땐 마음으로 숨을 쉬는 것 같아"


이십 대가 된 이후로 꾸준히 춤을 춰왔다. 나는 감성이 예민한 사람이었고, 덕분에 마음 안에서 감정이 주체할 수 없이 흘러넘치곤 했다. 밝은 감정은 밖으로 표현하면 그만이었지만 어두운 감정은 어디에도 표현하지 못하고 마음에 쌓여만 갔다. 누군가에게 내 어두운 감정을 털어놓으면 상대가 부담을 느껴 떠나갈 것만 같았다. 사람들은 내 밝은 감정만 좋아할 거라고 혼자서 섣불리 오해하곤 했다. 그렇게 서툴러 밖으로 나가지 못한 감정은 쌓이고 쌓여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감정의 풍선이 가득 차오르면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숨을 쉬고 있는데도 숨이 막혔다.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쏟아낼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래서였다. 스무 살이 되자마자 연극부에 들어가고 인디 음악에 빠져 홍대를 우리 집처럼 들락날락했던 것은. 두 가지는 내게 잠시나마 위안을 줬지만, 그렇다고 숨을 쉬는 게 편해지진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춤을 만났다. 휴학을 하고 철학 공부를 하겠다고 간 수업에서 졸며 앉아있던 날이었다. 그곳에서 함께 공부하던 분이 쿠바인 선생님에게 살사를 배우러 다닌다고 했다. 쿠바와 살사라니, 듣기만 해도 매력적인 조합이었다. 그곳에 따라가 살사를 배우며 처음 춤이란 걸 추기 시작했다. 내가 다른 사람을 보느라 정신이 없을 때면 선생님은 말했다.


다른 사람을 따라 추려하지 말고,
네가 세상에서 춤을 제일 잘 춘다고 생각하며 춰.


살이 쪄 보기 싫던 거울 속의 내 모습을 춤을 추며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했다. 스텝을 외우는 데에 정신이 팔려 발만 쳐다보며 춤을 추다가도 중간중간 선생님이 던지는 한마디에 다시 나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내게 집중해 춤을 추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잊었다. 정확하게는 나를 속박하던 무언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순간의 나는 에너지이자 감정 그 자체였다. 춤을 추며 처음으로 안에서 부풀어 오른 감정을 조금씩 밖으로 내보낼 수 있었다. 춤을 추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깨달았다. 내가 살기 위해 필요했던 건 춤이라는 것을. 

  

살사 수업을 듣기 시작한 후 수업 장소 맞은편에 있던 이탈리아 식당에서 알바까지 시작했다. 주말이면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식당에서 서빙을 하고, 저녁 7시부터 밤까지도 춤을 췄다. 돌아보면 무슨 에너지로 그렇게 했나 싶지만, 아무리 피곤해도 춤을 추면 어디선가 에너지가 생겨났다. 힘든데 힘들지 않았고, 피곤한데 피곤하지 않았다. 마음속에 꽉 찬 감정이 새어나간 틈으로 새로운 에너지가 생겨났다. 살사를 추면서 나는 내 모습을, 더 나아가 나를 조금씩 좋아하게 되었다. 1년 여를 주말마다 알바를 하고 살사를 췄다. 그러다 첫 연애를 시작하며 자연스럽게 춤과 멀어졌다. 


연애를 하는 한동안은 춤을 추지 않아도 숨이 잘 쉬어졌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어두운 감정을 누군가에게 말로 표현하는 데엔 서툴렀다. 내 감정을 솔직히 털어놓아도 상대가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없었다. 그렇게 습관처럼 마음속으로 참고 삭이다가 첫 연애가 끝이 났다. 이제 전보다 더 깊은 외로움과 함께 마음속의 감정이 더 크게 부풀어 올랐다. 다시 숨이 막혀왔다. 본능적으로 나는 다시 춤을 찾아갔다. 두 번째 춤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현대무용 워크숍에서 시작됐다. 그곳에서 춤을 추기 시작할 때 나는 자주 울었다. 춤을 추며 내 안으로 깊이 들어가면 그곳에는 슬픔과 외로움이 있었다. 그때의 내 춤은 아마 눈물이었던 것 같다. 나는 춤을 추며 몸으로 울고 화내고 악을 썼다. 그렇게 춤을 통해 감정을 비우고 나면 조금 숨이 편하게 쉬어졌다. 


입으로 숨을 쉬어도 숨이 안 쉬어질 때,
춤을 추면 마음으로 숨을 쉬는 것 같아요.
 

어느 날 한 워크숍 중에 별명을 '날숨'으로 지으며 이야기했다. 춤은 내가 마음으로 숨 쉬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모든 감정을 솔직히 꺼내놓고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는 통로였다. 아무에게도 온전히 이해받는다고 느끼지 못하던 시절 다른 이들과 함께 추는 춤을 통해 위로하고 위로받았다. 나를 온전히 꺼내 보일 수 있는 사람을 만나며 춤을 추지 않게 된 것은 그래서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몰랐다. 내 모든 강함과 약함, 밝음과 어두움을 기꺼이 마주하는 사람을 만나, 조금씩 춤이 아닌 말로 내 감정을 전하는 법을 배워갔다. 그와 일상을 함께하며 모든 감정을 공유하게 된 후로는 춤을 추지 않을 때에도 숨이 잘 쉬어졌다. 가끔 신이 나면 그와 마주 보고 장난스럽게 추는 춤 말고는 더 이상 춤을 추지 않았다. 가끔씩 춤추던 순간들이 그리웠지만, 이젠 춤을 추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Cover. Henri Matisse <Dance>,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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