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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oresta Nov 19. 2021

나도 아직 어떻게 살지 몰라


십 년도 넘은 어느 11월, 수능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답을 맞췄다. 망했다. 진짜 망한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목표한 대학에 갈 수 없는 점수니까 망한 거라고 생각했다. 수능이 끝난 다음 날부터 다시 독서실에 갔다. 재수를 할 생각이었다. 그런 내게 언니는 말했다. "너는 재수할 성격이 아니야" 맞다. 나는 그렇게 독하지도 못했다. 수능은 망하고 재수도 아니라면 난 뭘 해야 하지. 난 뭘 하고 싶었지. 뭘 좋아했지. 놀랍도록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얬다. 수능을 망한 거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다니. 아니 없어졌다니. 분명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셀 수 없이 많았는데. 그 순간 '죽고 싶다'라고 생각했다. 


돌이켜 보면 정확하게 죽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데에 대한 막막함과 수능을 망친데 대한 슬픔과 그 끝의 허무함, 모든 게 내 탓인 것 같은 분노가 한데 섞여서, 그 감정을 나도 다 알 수 없어서 떠오른 집약적인 표현이었다. 잠도 오지 않아 밤새도록 방에 혼자 앉아서 머릿속에서 출구가 없는 길을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럼 어떡하지 이제, 나는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지금까지 학교에서 수능만을 위해 살아왔는데, 아무런 경험 없이 앉아서 생각한다고 경험이 생길 리도, 길이 보일 리도 만무했다.


며칠을 방안에 처박혀 있다가 결론을 내렸다. '지금까지 어른들이 살라는 대로 살아온 삶의 결론이 죽고 싶다라니. 이젠 절대 누가 시키는 대로 살지 말아야지. 누가 뭐라고 하든 하고 싶은 거 다 할 거야.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살 거야' 돌아보면 합리적인 결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건 상관없었다. 이게 내가 그 순간 살기 위해 내린 최선의 결론이었다. 그렇게 결심을 한 후, 집 밖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걸 탐탁지 않아하는 부모님과 열심히 싸웠다. 내가 좋아하는 게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 관심이 생기는 건 다 해봤다. 꿈이 없으니 꿈을 찾으러 이리저리 방황했다. 그래서 꿈을 찾았냐면 그러지는 못했다. 그래도 더 이상 죽고 싶지는 않았다.


외국에 살면서 오후 두 시에 집에 돌아가는 십 대들을 마주칠 때면, 자주 한국에서 그 시절의 나를 생각했다. 그 나이의 내가 저들처럼 자랐다면 어땠을지 상상해보면 아직도 아쉬웠다. 그리고 아직 그 시간을 지나고 있을 누군가를 생각했다. 누구인지 알지는 못하지만, 알지 못하는 이의 삶이라도 안타까울 만큼, 그 시절을 지나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알지 않을까. 한국에서 학생의 삶이란 얼마나 고단한지. 보이지 않는 미래를 위해 얼마나 많은 현재를 포기해야 하는지. 그런데 그 고단한 삶의 끝에 내가 바란 것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 끝에 답이 있을 줄 알고 매일을 버텼는데, 이제부터 답은 네가 찾으라는 말에 배신감과 막막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만약 그런 이가 내 곁에 있다면, 삼십 대가 된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는 한 가지. "나도 아직 어떻게 살지 몰라." 나도 아직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른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을 둘러봐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고 살아가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누군가 그랬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알게 되는 건, 내가 모르는 게 세상에 이렇게 많다'는 거라고. 삶도 비슷한 느낌이다. 경험이 늘고, 나이가 들수록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고 그래서 내가 아는 게 이렇게 없다는 걸 깨닫는다. 이쯤 되면 최소한 진로에 대한 고민은 그만해야 할 것 같은데, 사람 관계도 어느 정도는 통달했어야 할 것 같은데. 인생은 끝없이 늘 더 고난이도의 숙제를 내고, 경험이 쌓일수록 사람 관계에서 말 한마디 한마디 내뱉기가 더 조심스럽기만 하다.


이젠 어렴풋이 느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죽을 때까지도 계속될 수도 있다는 걸. 내가 무엇을 이룬다고 그다음부터 사라질 고민이 아니라는 걸. 아마 매일 같은 질문에 답을 하며 살다 끝이 날 즈음에야 '그게 인생이었구나'하고 깨달을 수도 있다는 걸. 그러니까, 과거의 나처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막막한 누군가가 있다면 이것만 기억해줬으면 좋겠다. 그로부터 십 년을 넘게 지나온 나도 아직 그걸 모른다고. 아마 앞으로 십 년이 더 지나도 모를 수도 있다고. 엄마, 아빠, 선생님, 앞집, 옆집, 길 가다 지나친 사람들도 모르고 살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열심히 노력해서 일찍 알게 된다면 좋겠지만, 모른 채 살아가도 괜찮다고. 그 질문을 자신에게 계속하며 살아가는 한, 길을 잃더라도 아주 잃지는 않을 테니까. 


그러니까 우리, 어떻게 살지 모르겠다고 지레 때려치우지는 말자고. 

맘껏 살아보기도 전에 그만두는 건 너무 억울한 일이니까.



Cover. Jackson Pollock <Numbe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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