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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 foresta Jan 28. 2022

16. 불행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행운




다비데와 함께 걸은 지 일주일째 되던 날, 새벽부터 계속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방수 바지와 두꺼운 옷을 껴입고 우비까지 걸치고는 길을 나섰지만 세차게 내리는 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신발에 양말까지 모두 젖었다. 비가 그치기를 마냥 기다릴 수는 없어서 물이 찰랑이는 신발을 신고 점심이 될 때까지 흙길을 걸었다. 걷다 보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두 젖었고, 물을 한껏 머금은 양말은 걸을 때마다 스펀지처럼 물을 내뱉었다. 혼자였다면 버티기 힘든 날이었겠지만, 그날의 나는 불평하는 대신 종일 노래를 불렀고 다비데는 평소보다 더 많이 장난을 쳤다. '내'가 힘을 내려고 보다 '너'가 힘이 났으면 해서 우리 모두 궂은 날씨에도 최선을 다해 힘을 냈다. 너를 위해서 힘을 내니 자연스럽게 나를 위한 힘도 생겨났다. '함께'라는 것은 그래서 참 대단하고 신기한 것이었다.    


책 <아침의 피아노>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나를 위해 쓰려고 하면 나 자신은 너무 보잘것없는 존재지만, 남을 위해 쓰려고 할 때 나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된다' 나만을 위할 땐 작은 시련에도 쉽게 무너지던 마음이 너를 위해서는 나도 지 못할 만큼 강해졌다. 산티아고 순례길 일정 중 가장 날씨가 안 좋았던 날, 우리는 길 위에서 가장 많이 웃고 떠들고 노래를 불렀다. 어느새 그의 옷들이 내 옷이 되었고, 내 등산스틱 중 하나는 그의 것이 되었다. 내가 지치면  웃으며 농담을 건넸고, 그러다 가 지쳐 보이면 내가 노래를 부르며 앞서 걸었다. 누군가 힘들어할 때 자연스럽게 다른 한 명이 지지해주며 균형을 맞춰가는 것이 우리 사이에선 아무 말 없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그와 함께 걸은 이후로 힘든 상황이 와도 전처럼 버겁지 않았다.


숙소에서 출발한 지 두 시간쯤 되었을까. 우중충한 날씨에 비를 맞으며 젖은 상태로 계속 걸으니 체온이 점점 떨어졌다. 서로가 있어 힘을 냈지만 그럼에도 추위는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다비데가 발걸음을 멈췄다. 비를 피해서 길가의 대피소로 들어가더니 가방에서 부스럭 부스럭 뭔가를 꺼냈다. 그가 꺼내 든 것은 '체온 유지용 은박 담요'였다. (티비에서 긴급 구조 시 종종 보이는 재난용품 중 하나로, 선물 포장지 같은 재질의 은박지이다...!) 나는 은박 담요 (이하, 은박지)를 그때 생전 처음 보았고, 그런 물건이 세상에 있다는 걸 알지도 못했다. 다시 한번 판다에몽의 준비성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그걸 비장의 무기처럼 내게 건네더니 몸에 두르고 걸으라고 했다. 나는 그때 이미 예상치도 못한 은박지를 보고는 웃음이 터졌는데 실제로 몸에 두르고 나니 할로윈 유령 분장 또는 투명망토를 두른 해리포터 같아서 한참을 웃었다.



(왼쪽) 체온유지 은박담요    (오른쪽) 해리포터의 투명망토....


은박지를 두르고 대피소에서 나가는 길에 다비데가 벽에 머리를 엄청 쎄게 박아 우리는 또 한참을 배를 잡고 웃었다. 밖에 나오니 비와 함께 바람도 세차게 불어와 은박지를 뒤로 두르고 걷는 게 게 쉽지 않았다. 나중에는 은박지를 그냥 앞으로 두르고 다녔는데, 얼굴 위로 덮어도 앞이 웬만큼 보여 비도 막을 겸 그냥 얼굴 위로도 덮고 다녔다. 멀리서 보면 우리는  이상한 양철 로봇 같아 보였다. 길에서 우리를 마주친 사람들 모두 웃으며 지나갔고 우리는 또 그게 웃기고 뿌듯해서 웃었다. 그렇게 무사히 하루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했을 땐 둘 다 쫄딱 젖어있었다. 걷는 내내 농담을 건네고 노래 부르며 힘을 내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6시간 여를 빗 속에서 걷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방을 내려놓고 나니 몸은 지칠 대로 지쳐있었고 추위에 오랜 시간 움츠리고 걸은 탓인지 체기가 느껴졌다.


다비데는 이럴 땐 술을 마셔야 한다며 와인을 마시러 가자고 했지만, 그럴 기운이 나질 않았다. 보통 약해질 때의 나는 혼자만의 공간에서 아무 에너지도 쓰지 않기를 선택했다. 남에게 기대지 않고, 약한 모습 보이지 않고, 괜찮아질 때까지 혼자 있는 것. 그게 내게 익숙한 회복 방법이었다. 나는 다비데에게 혼자 숙소에 남아 쉬고 싶다고 했다. 다비데는 다른 이탈리안 친구들과 나가고, 나는 약을 사 먹고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숙소는 스산했고 이불을 덮고 누워도 한기가 가시지 않았다. 한숨 자고 일어나서도 속이 나아지지 않았다. 당연히 죽은 찾을 수 없었고, 따뜻한 국물이 간절했지만 라면도 구할 수 없어서 그냥 저녁을 굶기로 했다. 다비데의 걱정스러운 눈빛엔 그저 괜찮다 말했다. 그치지 않는 비에 하룻밤 사이에 옷과 신발이 마를 것 같지 않아 세탁실 건조기에 말렸는데, 신발 건조가 끝나고 건조기를 열어보니 등산화 고무 밑창이 떨어져 있었다. 그 순간 나는 또다시 주저앉아 울고 싶어졌다.


그 전 같았으면 이 상황이 속상해서 울고 싶었겠지만, 이번엔 달랐다. 다비데와 함께 걸으며 나는 내가 길 위에서 겪는 고생의 많은 부분이 내가 이곳에 준비 없이 왔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은 물론 남까지 챙기는 다비데를 보며 나는 내가 아직 나 하나도 제대로 책임지지 못하는 미숙한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여기까지 올 수 있었지만, 그 사실에 감사하면서도 나 혼자서는 그럴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 지금 생각하면 종일 비에 젖은 등산화를 건조기에 돌렸으니 고무 밑창이 떨어진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고, 등산화를 처음 신었기에 했던 실수일 뿐이었다. 하지만 매일 길 위에서 나의 부족함을 실감하던 나는 그게 '등산화 하나도 제대로 준비해 오지 못한 준비성 없는 내 탓'이라고 느껴졌다. 늘 마음만 앞서 무모한 내가 한심했고, 미웠고, 그리고 매번 그로 인해 고생하는 스스로에게 미안해서 울고 싶었다. 그날 나는 간절하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 기분을 눈치챈 다비데는 나를 웃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래도 내가 별 반응이 없자 그저 조용히 내 옆에 있어주었다. 혼자였다면 침대에 누워 우울해 있었을 테지만, 다비데가 있어 그의 곁에 앉아 와인을 몇 모금을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틈에서 시간을 보내며 울적한 마음을 달랬다. 그날은 순례길을 걸으며 가장 힘들었던 날 중 하나였지만, 함께였기에 최악의 날은 아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더 이상 불행도 불행이 아니었다.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이 행운이 아니라, 힘든 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 또한 행운이라는 걸 나는 그때 배웠다. 내가 알지 못하던 모습의 행운이 어느새 내 곁에 함께 걷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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