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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니스홍 Sep 27. 2019

방법 만능의 시대

방법을 버려야

과학과 기술이 발전한 세상에 살아서 그런지, 뭐만 했다 하면 방법을 찾아다니는 경우를 많이 본다. 취업하는 방법, 퇴직하는 방법, 입학하는 방법, 책 읽는 방법, 연구하는 방법, 기타치는 방법, 피아노 치는 방법, 수영하는 방법, 돈 버는 방법, 애인 꼬시는 방법, 열심히 사는 방법, 방법, 방법, 방법, 그런 무수한 방법들. 좋은 방법은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비싼 가격에 거래된다. 방법을 판매하는 학원이 성행하고, 방법을 구매하는 학생이 넘쳐난다.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듯 지식과 경험을 사고 팔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말과 글로 기술되는 방법이란 뭔가의 일부를 포착하여 적어놓은 것이지, 방법을 따라한다고 그 뭔가가 될 수는 없다. 요리 장인의 레시피를 적어서 그대로 한다고 훌륭한 요리가 나오지 않고, 훌륭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그대로 따라친다고 해서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나오지 않는다. 뭔가를 잘 하려고 하면서 방법에 기대는데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방법에는 변화가 거세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적이다.


세상은 변하고 나도 변한다. 일분 일초마다 끊임없이 변한다. 내 손가락 길이와 남의 손가락 길이는 다르다. 내 호흡 길이와 남의 호흡 길이는 다르다. 내 입맛과 남의 입맛은 다르다. 모든 것이 크건 작건 전부 다르고, 모든 것이 적건 많건 전부 변한다. 지금 내 생각과 몇 분 뒤의 내 생각도 다르다. 모든 것이 변한다. 자연에는 멈춘다는 개념이 없다. 그런데 방법은 멈춰있다. 방법을 포착한 그 시점의 상황이 그 이후에 똑같이 재현되는 경우는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방법을 배워서 다음에 적용하는데는 한계가 있다. 방법은 정적이고, 세상은 동적이다. 동적인 것을 정적으로 완전히 해석할 수는 없다. 그러므로 도를 도라고 말하면 그것은 도가 아니다 (道可道非常道). 이 말은 동적인 도를 '도'라고 말하는 순간 정적이 되어 도가 아니게 된다는 뜻이다. 말로 기술할 수 없는 생기를 말로 표현하면 그 즉시 생기를 잃는다. 생기는 산 것이고, 방법은 죽은 것이다. 죽은 것을 가지고 산 것을 해석할 수는 없다.


산 것을 살아있는채로 다루는 것은 내가 지금 당장의 이 순간을 얼마나 진심으로 대하는지에 달려 있다. 사람의 혼이 담기는 것이라고 해야 할지, 진심을 여는 것이라 해야 할지, 주의를 기울인다고 해야 할지, 표현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끊임없이 반응하고, 끊임없이 어울린다. 어떤 정적인 개념에도 기대거나 의지하지 않는다. 변하는 전체를 그대로 인식하면서, 변하는 나 자신과 조화를 맞춘다. 그것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나와 그것이 같이 변하면서 나와 그것의 경계가 사라진다. 내가 사는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므로, 나 역시 끊임없이 변하면서 맞춰가며 산다. 내가 어떤 방법에 기대어서 변하기를 멈추면, 나는 그 즉시 세상의 변화에서 이탈해 죽어버린다. 회색의 무기력한 인간이 되는 길이란, 방법에 기대는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이 세상에 똑같은 상황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전에 만든 방법을 나중에 그대로 적용하면 어딘가 아귀가 어긋나게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기술을 제대로 구사하는 사람은 방법에 기대지 않는다. 그때그때 매 순간마다 새로운 방법을 만들어서 사용한다. 모든 경험은 개별 체험이다. 방법이나 이론을 만들고 규격화하면 그 즉시 개별성이 사라진다. 


마음가짐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공학자의 마음가짐, 피아니스트의 마음가짐, 수학자의 마음가짐, 요리사의 마음가짐. 내가 그 업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런 마음가짐이 있을 때에 내가 그것과 하나가 된다. 돈이나 결실에 혹해서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수 없다. 방법이 죽은 것이듯, 돈이나 결실도 죽은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기예에 진심을 여는 것, 어떤 사람에게 진심을 여는 것과 같다. 애인을 사귀는데 수많은 방법과 조언이 있지만, 결국에 가장 제대로 된 것이라면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것 뿐이다. 진심으로 대하는 상대를 두고서는, 그가 부자이든 거지이든, 팔다리가 있든 없든, 병이 있든 없든, 잘생기든 못생기든,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사람과 사람의 진심이 통한다면, 현란한 말주변이나 애인 꼬시는 방법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다. 


상대의 지위나 돈을 보고 결혼한다고 하자. 마음에는 없지만 겉으로 온갖 방법을 동원해 일단 결혼해서 돈을 얻으면, 그 다음에는 파국으로 향하는 길만 남는다. 아래 그림을 보자. 뒤로는 몽둥이를 숨기고 눈으로는 돈을 보면서 겉으로는 사랑한다 말한다. 여기에는 진심이 없다. 계산과 절차와 방법 뿐이다. 속으로 싫은데 겉으로 좋은 척하기에 얼마나 답답할까.


아래 그림을 보자. 수학공부를 한다고 하자. 성적을 잘 받아야 하므로 마음에는 없지만 공부를 한다. 한 손에는 칼을 들고 눈으로는 성적을 보면서 겉으로는 수학공부를 한다 말한다. 여기에도 진심이 없다. 계산과 절차와 방법 뿐이다. 그래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일단 성적을 잘 받으면, 그 다음에는 파국으로 향하는 길만 남는다. 학교를 졸업하면 공부를 접는 것이다. 속으로는 싫은데 겉으로 좋은 척하느라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당장에 허접하더라도 진심으로 대하는 편이 낫다. 성적이 안 나오더라도 진심으로 대하는 편이 낫다. 그러면 적어도 헤어질 일은 없을 것이고, 그러면 평생을 같이 살면서 결국에는 훨씬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된다. 평생에 걸쳐 얻을 결실을 따진다면 그쪽이 더 이득 아닌가.


기술을 습득하는데는 구체적인 방법이 필요하지 않다. 오직 그것에 대한 진심만이 마음을 열게 한다. 일단 마음을 열면, 그 다음에는 어디로든 흐른다. 진심을 열었는데 하필 그 사람이 대화를 좋아하면 나는 대화 기술이 발달할 것이고, 진심을 열었는데 하필 그 사람이 섹스를 좋아하면 나는 섹스 기술이 발달할 것이고, 진심을 열었는데 하필 그 사람이 여행을 좋아하면 나는 여행다니는 기술이 발달할 것이다. 진심이 먼저고, 기술은 나중이며, 방법은 부산물이다. 


이 사람을 사랑하는 인생은 저 사람을 사랑하는 인생과 다를 수 밖에 없다. 수학공부도 그와 같다. 같은 수식을 다룬다고 해도 내가 다루는 수학과 다른 사람이 다루는 수학은 다를 수 밖에 없다. 만약 내가 하는 수학과 남이 하는 수학이 같다면 그것은 내가 수학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나는 남과 다른 사람이다. 절대로 같아질 수 없다. 모든 것이 개별 체험이고 서로 다 다른 생이다. 거기에는 어떤 정형화된 방법도 레시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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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무렵 아와는 거의 백발백중을 자랑하는 궁술의 달인이었으나, 이때까지만 해도 명중을 매우 중요시하는 여느 궁사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다 1912년 경 아와는 궁술에 관한 오래된 책 한 권을 손에 넣었다. 이 책의 저자는 활쏘기의 기술들을 총 망라한 다음 "그 무엇도 필요하지 않음을 나는 안다"라고 말했는데, 아와는 이 문장에 큰 공감을 했다고 한다."

                                                                                                                        - 마음을 쏘다 활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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