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프랑스 교육으로 딸을 키운다면

1. 영어 유치원

by 안젤라


남편과 나는 7년 동안 프랑스에서 공부를 했다.

낯선 언어로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만으로도 힘들었기 때문에 프랑스 교육이 특별했는지 좋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긴 교육과정이 끝나고 일을 잠시 하다가 아무 미련 없이 한국으로 들어왔다.


프랑스 교육에 대한 환상도 동경도 없었고, 한국 교육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자녀에게 프랑스 교육을 시켜야지 하는 생각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1. 영어 유치원


오랜 프랑스 생활로 한국에 친구도 지인도 많이 없었다.

자녀 교육 문제로 조언을 들을 일도 없었고, 특별히 구체적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다. 남편과 딸 이렇게 셋이서 우리만의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걱정도 고민도 없이 지냈다.


처음으로 교육이라는 단어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된 건 딸이 유치원에 들어가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였다.

딸과 같은 나이의 아들을 키우는 여동생이 강남의 어느 영어 유치원을 선택했고, 나는 별생각 없이 따라갔다가 유치원 원장의 이야기에 바로 등록을 하고, 유치원 교복을 사들고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남편은 나름대로 교육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음악과 체육 그리고 인성. 도덕 교육 외에는 지금 시기에는 다른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남편은 영어 유치원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미 영어유치원에 사로잡힌 나는 당신이 한국 교육 상황을 잘 모르는 거라고, 원장님을 통해 들었던 말을 내 생각인 것처럼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다음 날 결국 원복을 반납하고 원비를 환불받고 돌아왔다.


이 날 이후로 한국에서의 교육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내가 어린 시절 받아온 교육 환경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학원을 10개씩 다니는 일은 놀라운 것도 아니었다. 정보 수집력도 중요하고 좋은 학군지로의 이사도 중요하고 해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정말 많았다.

그리고 돈이 아주 많은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사진작가다. 그냥 남들이 흔히 말하고 다니는 그런 작가가 아닌 정말 진심으로 사진을 사랑하는 순수 예술가다. 사진을 향한 열정과 사랑은 존경스럽지만, 이 열정이 돈을 버는 능력까지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나 역시 플로리스트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