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가에서 인정으로
일곱 살 딸이 그림을 들고 왔습니다.
"아빠, 이거 봐!"
솔직히 무엇을 그린 건지 알 수 없었습니다. 파란색과 빨간색이 뒤엉켜 있고,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무언가가 가운데 있었습니다. 순간 고민했습니다. 뭐라고 말해야 할까?
"와, 잘 그렸네!"
아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습니다. 실망인지, 의심인지 알 수 없는 표정.
"아빠는 이게 뭔지도 모르면서..."
그 말에 뜨끔했습니다. 아이는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제 칭찬이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말 그대로 영혼 없는 감탄사였다는 것을.
그날 밤, 아이에게 다시 물었습니다.
"아까 그림, 다시 보여줄래? 아빠가 제대로 못 봤던 것 같아."
딸이 그림을 가져왔습니다.
"이 파란색은 뭐야?"
"바다야. 우리 저번에 갔던 바다."
"아, 정말? 그럼 이 빨간색은?"
"노을이야. 아빠가 예쁘다고 했잖아."
그제야 보였습니다. 아이가 무엇을 그리려 했는지, 무엇을 기억하고 싶었는지.
"네가 그때 이쁜 바다를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구나. 색깔이 정말 짱인데? 특히 이 부분, 파도랑 노을이 섞여 있는 것이 너무 예쁜데?"
딸이 환하게 웃었습니다. 그 미소가 "잘 그렸네"라는 칭찬받을 때보다 백 배는 더 밝았습니다.
"똑똑하시네요."
"능력이 대단하세요."
"역시 최고예요."
이런 칭찬을 받을 때, 왜 조금은 불편할까요?
첫째, 평가받는 기분이 들기 때문입니다. 칭찬도 결국 평가의 한 종류입니다. '잘했다'는 것은 '못할 수도 있었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래서 칭찬받을 때마다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다음에도 이 기준을 충족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낍니다.
둘째, 진정성이 의심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구체적이지 않은 칭찬은 의례적으로 들립니다. "잘했어요"라는 말이 무엇을 잘했다는 건지,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알 수 없을 때, 칭찬은 오히려 거리감을 만듭니다.
셋째, 나를 제대로 보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내가 정말 노력한 부분은 못 보고 겉으로 드러난 결과만 칭찬할 때, 우리는 오히려 서운함을 느낍니다.
심리학자 캐럴 드웩의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같은 문제를 풀게 했습니다. 한 그룹에는 "정말 똑똑하구나"라고 칭찬했고, 다른 그룹에는 "정말 열심히 노력했구나"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다음 더 어려운 문제를 선택할 기회를 주었을 때,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습니다. '똑똑하다'는 칭찬을 받은 아이들의 35%만이 어려운 문제를 선택한 반면, '노력했다'는 칭찬을 받은 아이들은 90%가 도전했습니다.
왜일까요?
'똑똑하다'는 칭찬은 정체성에 대한 평가입니다. 실패하면 '똑똑하지 않은 사람'이 될까 봐 두려워집니다. 반면 '노력했다'는 칭찬은 과정에 대한 인정입니다. 실패해도 다시 노력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평가와 인정의 차이입니다.
대학 시절, 한 교수님이 계셨습니다. 발표 수업이 끝나면 항상 이런 식으로 말씀하셨습니다.
"00 학생은 자료 조사를 정말 꼼꼼히 했네요. 각주까지 세심하게 달았네요. 아주 좋습니다."
"00 학생은 논리 전개가 흥미롭네요. 특히 반대 의견을 먼저 제시하고 반박하는 구조가 인상적입니다."
"00 학생은 발표할 때 청중과 아이컨택을 자주 했어요. 듣는 사람과 소통하는 노력이 좋습니다."
그 교수님의 수업이 끝날 때쯤, 우리 모두는 깨달았습니다. 교수님은 우리 각자를 정말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성적이나 순위가 아니라, 각자의 노력과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을.
졸업한 지 20년도 넘었지만, 아직도 그 교수님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자네는 질문하는 방식이 참 독특해. 남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더군."
그것은 칭찬이라기보다는 '인정'이었습니다. '나는 너를 보고 있다. 네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위해 노력하는지 알고 있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우리 딸은 정말 예뻐."
"넌 천재야."
"완벽해."
부모의 사랑에서 나온 칭찬이지만, 때로는 아이에게 짐이 됩니다.
한 상담 센터에서 만난 20대 여성의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부터 '예쁘다'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예쁘지 않으면 사랑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죠. 조금만 살이 쪄도 불안하고, 화장을 안 하면 밖에 나가기가 무서웠어요."
과도한 칭찬은 오히려 감옥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칭찬의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압박, 그 이미지를 유지해야 한다는 부담.
특히 결과만을 칭찬할 때 이런 부작용이 생깁니다. "1등 했구나!"라는 칭찬을 받은 아이는 2등이 되는 것을 실패로 느낍니다. "잘생겼어"라는 칭찬을 받은 아이는 외모에 과도하게 집착합니다.
모든 인정이 말로 표현되는 것은 아닙니다.
할머니는 칭찬을 잘 못하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글쓰기 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 조용히 그 대회의 글 모음집을 사서 책장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셨습니다.
할머니 친구들이 집에 올 때마다 그 책을 보여주십니다. 상장을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액자로 만들어 걸어 두셨습니다. 내가 이런저런 상을 받고 뭔가 했다 하면 스크랩해서 모아 두시는 할머니.
그것이 할머니의 인정 방식이었습니다. "잘했다"는 말 대신, 관심과 자부심으로 표현하는 인정.
때로는 이런 침묵의 인정이 더 깊이 마음에 닿습니다. 지켜봐 주는 것, 기억해 주는 것, 소중히 여기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인정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인정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오늘도 최선을 다했어."
"완벽하지 않았지만, 배운 게 있어."
"실패했지만, 도전한 용기가 대단해."
우리는 타인의 인정을 갈망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백 번 잘해도 한 번 못한 것만 기억하고, 아홉 개의 성공보다 하나의 실패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자기 인정이 없으면, 타인의 인정도 빈 껍데기가 됩니다. 내가 나를 믿지 않는데, 남이 믿어준들 무슨 소용일까요?
매일 밤, 하루를 마무리하며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오늘 내가 잘한 것은 무엇일까?"
"오늘 내가 노력한 것은 무엇일까?"
"오늘 내가 성장한 부분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답을 스스로에게 들려주세요. 그것이 내일을 살아갈 힘이 됩니다.
진정한 칭찬은 평가가 아니라 인정입니다.
"넌 최고야"가 아니라 "네가 한 이 부분이 정말 의미 있어."
"완벽해"가 아니라 "이런 노력을 했구나."
"천재네"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니 흥미로워."
인정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입니다. 그의 노력, 과정, 의도, 성장을 알아차리고 언어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오늘, 누군가를 만나면 그 사람만의 특별함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그것을 말해주세요.
그 작은 인정이 누군가에게는 자신을 다시 보는 거울이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