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현실과 타협하는 지혜
이런 뉴스 본 적이 있을 거야. 내부고발자 이야기. 회사 비리를 폭로했다가 오히려 해고당한 사람. 댓글들이 “정의로운 사람이 왜 피해를 봐야 하냐”며 분노했지. 아빠도 답답했어. 그런데 더 씁쓸한 건, 이런 일이 생각보다 너무 흔하다는 거야. 심지어 드라마 같은 곳에서 그런 상황들을 재연할 때, 내부 고발자가 그 안에서 고통받는 모습들도 보여주지.
"너만 잘났느냐, 너만 깨끗하고 청렴하냐."
"함께 해 온 사람들끼리 얼굴 붉히지 말자.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 줘라."
이런 말들을 하지. 그런 모습들도 분노의 지점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좋아하는 영화들 있잖아. 주인공이 악당과 싸워서 결국 이기는. 우리는 그런 결말을 보면서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왜 그럴까? 현실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으니까. 영화에서라도 정의가 승리하는 걸 보고 싶은 거야.
아빠와 친한 친구도 그런 경우가 있었어. 윗사람의 횡령을 신고했다가 ‘조직 부적응자’로 낙인찍힌 사람. 정의를 지켰지만 대가는 혹독했어. 좌천, 따돌림, 결국 퇴사. 그리고 그 상사는? 솜방망이 처벌받고 여전히 높은 자리에 있어. 그 상사는 나중에 다른 회사 대표로 갔더라고.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이었지만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지.
세월호 유가족들 기억나지? 10년이 거의 다 되도록 싸웠어. 진실을 밝히려고, 책임자를 처벌하려고. 그런데 제대로 처벌받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유가족들이 ‘시체장사한다’는 비난을 받았어. 정의를 요구하는 사람이 더 상처받는 세상. 어떻게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시체장사를 한다는 표현을 할까. 설령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거야.
역사책 보면 더 그래. 이순신 장군도 전쟁 중에 모함받아 고문당했잖아. 나라를 구한 영웅인데도. 인도의 간디도 여러 번 실패했고, 마틴 루터 킹도 암살당했어. 정의를 추구한 사람들의 삶이 순탄했던 적이 별로 없어. 영화에서처럼 주인공이 끝까지 살아남는 세계관에서는 정말 이해불가지. 영화로 치면 망할 수밖에 없는 전개야.
그럼 정의를 포기해야 할까? 아빠도 젊을 때는 “불의를 보면 참지 않겠다”라고 다짐했어. 그런데 가족이 생기고, 책임져야 할 것들이 늘어나니까 계산하게 되더라. 이걸 신고하면 내 가족은 어떻게 되지? 이게 비겁한 걸까, 현실적인 걸까?
친구 아버지가 노동운동 하셨어. 평생 노동자 권익을 위해 싸우셨는데, 정년 후에 뭐라고 하셨는지 알아? “작은 승리는 있었지만 큰 전쟁은 진 것 같다”라고. 그래도 후회는 안 하신대. 적어도 시도는 했으니까.
일본 기업 내부고발자 이야기 들어봤어? 회사 비리 폭로하고 15년 동안 창고에서 혼자 일했대. 법적으로는 이겼지만 실질적으로는 진 거지. 회사는 그를 해고할 수 없었지만 ‘합법적으로’ 괴롭혔어.
그런데 있잖아, 가끔은 정의가 이기기도 해. 미투 운동 기억나? 수십 년 동안 묻혀있던 진실들이 드러났잖아. 물론 모든 가해자가 처벌받은 건 아니지만, 적어도 세상이 조금은 바뀌었어.
엄마가 자주 하는 말 있잖아. “못 본 척하는 것도 살아가는 지혜”라고. 처음엔 그게 비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이해가 돼. 모든 불의와 싸울 수는 없어. 그럼 살 수가 없거든.
그래서 아빠가 찾은 타협점이 뭔지 아니? ‘선택적 정의’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내 가족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선에서 목소리를 내는 거. 비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현실이야.
네가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친구를 보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서서 막으면 네가 타깃이 될 수도 있어. 모른 척하면 양심이 아프고. 아빠라면… 일단 선생님께 익명으로 제보할 것 같아. 직접 나서지는 못해도 최소한의 양심은 지키는 방법.
회사 부정 신고센터 있잖아. 익명 보장한다고 하는데, 다들 알아. 결국 누가 신고했는지. 그래서 대부분 침묵해. 이게 옳은 걸까? 아니지. 그런데 이해는 돼. 먹고살아야 하니까.
한 가지 희망적인 건, 세상이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다는 거야. 예전엔 아예 말도 못 꺼냈던 것들을 이제는 이야기할 수 있잖아. SNS 덕분에 개인의 목소리도 커졌고.
그렇다고 정의를 포기하라는 건 아니야. 다만 현명해져야 해. 무작정 정의를 외치다가 깨지는 것보다, 살아남아서 조금씩 바꿔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너도 나중에 부조리한 상황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어. 그때 아빠는 네가 용기 있되 현명했으면 좋겠어. 모든 전투에서 이길 필요는 없어. 중요한 전투를 골라서 싸우는 것도 전략이야.
삼국지에 나오는 말이 있어.
“굽힐 줄 아는 나무가 폭풍에도 살아남는다.”
정의를 지키되 유연해야 해. 부러지지 않고 버티려면.
네가 “세상이 너무 불공평해요”라고 했지. 맞아, 불공평해. 정의가 항상 이기지도 않아.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적어도 우리 자신은 정의롭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야. 설사 세상이 그걸 알아주지 않더라도.
때로는 침묵이 생존이고, 때로는 타협이 지혜일 수 있어. 그게 비겁한 게 아니라 현실적인 거야. 다만 그 과정에서 네 양심의 목소리를 완전히 죽이지는 마. 작게라도 들리게 해. 언젠가 그 목소리를 크게 낼 수 있는 날이 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