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심을 가지되 냉소적이지 않기
딸아, 네가 지난달에 단짝 친구한테 배신당했다고 울면서 들어왔을 때, 아빠는 네게 뭐라고 위로해야 할지 몰랐어. 조별 과제를 해야 하는데 널 따돌렸다면서. 힘든 부분만 너에게 떠넘겼다면서. 그것도 네가 제일 믿었던 친구가. 아빠도 그날 밤 잠이 안 왔어. 내 딸이 받은 상처가 얼마나 클까 싶어서.
사실 아빠도 몇 년 전에 비슷한 일을 겪었어. 20년 지기 친구한테 내 인맥과 좋은 사람들을 연결시켜 주고 일자리도 연결해 줬거든, 근데 그 사람들과 나 사이를 이간질해서 관계를 깨뜨리게 만들었어.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거짓말로 이간질한 거지. 아빠가 “나에겐 가족 같은 친구“라고 했던. 그 배신이 낯선 사람의 사기보다 더 아프더라.
엄마한테도 말 못 했어. 창피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내가 사람을 그렇게 못 보나” 싶어서 자존심이 상했어. 그런데 네가 친구한테 배신당하고 우는 걸 보니까, 아빠도 같이 울고 싶었어.
배신이 왜 가까운 사람에게서 올까? 간단해. 멀리 있는 사람은 우리를 배신할 기회조차 없으니까. 내 비밀을 아는 사람, 내 약점을 아는 사람, 내가 마음을 연 사람. 그들만이 나를 진짜로 아프게 할 수 있어.
아빠가 그 친구한테 배신당하고 나서 한동안 아무도 못 믿겠더라. 회사 동료가 커피 사주는 것도 의심스럽고, 오래된 친구가 안부 묻는 것도 다 계산 같고. 그렇게 살다 보니 더 외로워지더라. 배신당하지 않았지만 행복하지도 않았어.
네가 “이제 아무도 못 믿겠어요”라고 했을 때, 아빠가 “그래도 믿어야 해”라고 말했지만, 사실 아빠도 답을 모르겠어. 어디까지 믿고, 어디서부터 조심해야 할까?
이런 뉴스를 우리는 종종 보곤 하지. 30년 된 친구가 보험금 때문에… 아들이 돈 때문에 부모를... 그런 극단적인 일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비슷한 일들이 흔히 일어나. 동업하다 깨지고, 돈 빌려주고 못 받고, 비밀 지켜달랬는데 소문나고.
그런데 말이야, 배신당했다고 모든 사람을 의심하며 살 수는 없어. 그건 배신한 한 사람 때문에 내 인생 전체를 망치는 거야. 그 사람이 그럴 가치가 있을까?
엄마가 대학 때 룸메이트한테 도둑맞은 이야기 들어봤니? 가장 믿었던 친구였대. 그래도 엄마는 여전히 사람을 믿어. 나한테도 그랬잖아. “한 명 때문에 99명을 의심하지 마라”라고.
네 친구가 왜 그랬을까? 질투? 관심받고 싶어서? 아니면 그냥 생각이 없어서? 이유가 뭐든, 그건 그 친구의 문제야. 네가 잘못한 게 아니야. 믿었다는 게 잘못은 아니잖아.
아빠를 배신한 그 친구 때문에 관계가 깨진 사람을 나중에 연락해서 만났어. 이간질로 오해가 생겼으니 내가 연락해야 만날 수 있었어. 처음엔 만나려고 하지도 않더라. 근데 상황을 설명하니 미안하다고 하더라. 자기도 그 말이 진짜라고 생각했데. 그동안의 관계를 생각하면 나한테 직접 확인했으면 되었을 텐데 아쉽다고 말했어. 그래도 어쩌겠니 그냥 이해하려고 노력 중이야. 사람은 약하니까. 궁지에 몰리면 나쁜 선택을 하기도 하니까.
날 오해했던 사람과 다시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까? 아니야. 한 번 깨진 신뢰는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금 간 그릇처럼. 쓸 수는 있지만 예전 같지는 않지.
네가 학교 가기 싫어하는 거 알아. 그 친구를 보기 싫어도 매일 봐야 하니까. 그런데 피할 수 없다면 방법을 찾아야 해. 인사는 하되 비밀은 말하지 않기. 함께 있되 마음은 주지 않기. 적당한 거리 두기.
이런 말이 있어. “배신은 신뢰의 세금이다.”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배신당할 위험을 감수하는 거래. 그래도 믿지 않고는 살 수 없으니까, 그 세금을 낼 각오를 해야 한대.
며칠 전 네가 새로운 친구를 사귀었다고 조심스럽게 말하더라. “이번엔 너무 믿지 말아야 하나?“라고 묻던 네 눈빛이 아직도 생생해. 아빠는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 “믿되, 천천히. 조금씩.”
비밀은 정말 중요한 사람 한두 명에게만. 돈은 잃어도 되는 만큼만. 마음은 상처받을 각오가 됐을 때만. 이게 아빠가 찾은 균형이야. 완벽하진 않지만.
잘 아는 속담에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말이 있어. 그렇다고 도끼를 아예 안 쓸 수는 없잖아. 조심해서 쓰는 수밖에.
배신이 무섭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 이후에 누군가를 다시 믿는 것이 더 무서운 것 같아. 하지만 우리는 그럼에도 누군가를 또 믿게 될 거야. 그게 인간이거든. 상처받아도 또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 것.
어쩌면 배신한 친구와 복도에서 마주칠 때 그 친구가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도 있고, 어쩌면 그 친구가 미안한 표정을 너에게 하거나 실제로 사과를 할지도 몰라. 하지만 용서는 네 마음이 준비됐을 때 하면 돼. 급할 것 없어. 다만 증오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지는 마. 그 에너지로 너를 진짜 아껴주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배신은 아프지만 우리를 강하게 만들기도 해. 누구를 믿을지 더 신중해지고, 진짜 소중한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고. 그런 의미에서 네가 겪은 아픔도 언젠가는 지혜가 될 거야.
내일도 학교 가야 하고, 그 친구도 봐야 해. 힘들겠지만, 네가 그 친구 때문에 작아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배신은 한 사람이 한 거지만, 너를 믿고 아끼는 사람은 여전히 많으니까.
아빠도 여전히 친구를 만나. 조심스럽긴 하지만. 왜냐하면 배신한 한 명보다 곁에 남은 아홉 명이 더 소중하거든.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경계하되 냉소적이지 않기. 쉽지 않지만, 그게 건강하게 사는 방법인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