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맥도 능력이다

순수한 실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세상

by 강훈

네가 학생회장 선거에서 떨어진 날, “난 약속한 일들도 더 좋았고 준비도 더 많이 했는데..”라며 억울해했지. 아빠도 네 공약집을 봤어. 정말 잘 만들었더라. 그런데 당선된 친구는 학교에서 정말 인기가 많은 친구였지. 네가 “이게 맞아요?“라고 물었을 때, 아빠는 뭐라 답해야 할지 몰랐어. 네가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인기투표의 분위기가 되었다고 해서 불공정하거나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어. 하지만 네가 미국에 온 지 2년밖에 되지 않았을 때, 그 일에 도전하고, 더 나아가 최종 후보에 까지 올랐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했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런 일에는 실력과 준비 말고 다른 것들도 필요하기도 해.


사실 아빠도 비슷한 일을 매일 겪어. 예전에 아빠가 만든 프로젝트 힙합팀이 있었어. 그 팀을 사람들에게 많이 소개하고 알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잘 부탁한다고 뭔가 노력을 해야 했지. 하지만 아빠는 그냥 열심히 하고 정직하게 하고 실력을 갖추면 사람들이 알아서 섭외를 할 것이라고 생각했어. 반면에 다른 어떤 사람은 만나서 함께 식사하고 뭔가 선물을 건네기도 하더라고. 결국 우리 팀은 대부분 섭외되지 않았어. 속상하긴 했지만 알게 되었지. ‘아, 이게 현실이구나.’

그쪽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믿었던 게 있어. “실력만 있으면 인정받는다.” 그래서 사교적인 모임도 잘 안 가고,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선물 돌리는 것 안 하고, 그냥 일만 열심히 했어.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지. 하지만 아빠는 그것이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놓친 셈이야. 결국 어떤 영역이든 사람들이 하는 일이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쌓는 것도 노력을 하는 것이고 실력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어. 어떤 면에서는 지혜롭지 못한 셈이지.


전에 외할아버지 칠순 잔치 때 온 손님들 중에 할아버지 군대 후임이었던 분이 있었어. 지금은 큰 회사 사장님이 되셨는데, 할아버지가 50년 전에 잘해주신 게 계기가 되어 아직도 연락하고 지낸대. 그분이 삼촌 취직도 도와주셨어. 50년 전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진 거야. 정말 대단하지. 아마 그때에는 상상도 못 했을 거야.


아빠가 싫어하는 말 중 하나가 “줄을 잘 서야 한다”는 거였어. 비겁하게 들렸거든. 실력으로 정정당당하게 겨뤄야지, 왜 줄을 서? 그런데 살아보니 ‘줄’이라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과 연결되는 것, 그것도 능력이구나 싶어. 한동안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규라인" "유라인" 이런 말들이 밈처럼 떠돌았어. 예능의 대부 이경규와 친한 사람들, 역시 국민 MC 유재석과 친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지. 그 라인에 있어야 잘된다는 의미야. 딱히 틀린 말은 아니야. 모르는 사람들과 같이 일하고 호흡을 맞추기보단 내가 잘 아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겠지.


네가 미국으로 이사 와서 처음 학교 다닐 때 친구 사귀기 힘들어했잖아. 그때 엄마가 뭐라고 했는지 기억나? “네가 먼저 다가가면 되는 거야.” 그게 인맥의 시작이야. 먼저 인사하고, 먼저 도와주고, 먼저 관심 가지는 것. 계산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하는 거야.


그런데 여기 불편한 진실이 하나 있어. 태어날 때부터 인맥을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 어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재벌집 아들도 태어나기도 하지. 그러면 자동으로 부모의 인맥까지 소유하게 된다. 연예인이나 스포츠 선수들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이긴 해. 그런 말들을 빗대어서 금수저, 흑수저 이야기를 하기도 했지. 분명하게 그런 현실이 존재해.


아빠 대학 동기 중에 지방 출신으로 서울 와서 고시원 살던 친구가 있어. 정말 똑똑했어. 그런데 취업이 제일 늦었어. 왜? 서울 애들은 선배가 여기저기 있어서 정보도 빠르고 추천도 받았거든. 그 친구는 혼자 도서관에서 공부만 했어. 실력은 최고였는데.

하지만 그 친구가 지금은 어떤지 아니? 제일 성공했어. 왜? 처음엔 인맥이 없었지만, 성실함으로 하나씩 만들어갔거든. 같이 일한 사람들이 다 그 친구를 좋아했어. “저 사람이랑 또 일하고 싶다”라고. 그게 진짜 인맥이야.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 것이 무조건 인맥인 건 아니야. 진짜 인맥은 내가 준비되었을 때에 비로소 한 명씩 생기는 것이 진짜 인맥이야. 상대방이 나를 제대로 알아주고, 나도 그 상대방을 제대로 알아주는 것이지.


엄마가 동창회 가는 거 아빠가 가끔 뭐라 하잖아. “맨날 놀러 가는거야?”라고. 그런데 엄마가 동창 통해서 네가 논문이나 에세이 쓰는 것을 도움받았잖아. 동창들을 통해서 이런 정보를 얻고, 도움을 받고, 또 도움을 주기도 하고. 그게 다 인맥의 힘이야.


네가 한 번은 “가식적인 인간관계 싫어요”라고 했지. 아빠도 싫어. 싫음에도 나름 열심히 그런 것들도 하는 아빠의 모습을 너는 본 적이 있잖아. 그런데 모든 인맥이 가식은 아니야. 진심으로 서로 도우려는 관계도 있어. 문제는 그런 가식적인 관계도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거야. 노력이 필요해.


아빠가 전에 보험설계사 일을 할 때에 제일 민망했던 때가 언제냐면, 어떤 세미나에 참석해서 명함을 돌리는 일이었어. 그곳에 아는 사람들도 있었지. 그렇게 명함을 돌리는 데 왠지 창피하고 어색하더라고. 하지만 그때 명함을 받은 분이 연락을 해주셔서 계약을 했던 일도 있었어. 그 세미나에 참석해서 명함을 돌릴 수 있도록 주선해 준 그 사람을 신뢰해서 나에게 연락을 하고 계약도 했던 거야.


“실력만 있으면 돼”라는 말, 참 아름다운 말이야. 그런데 현실은 “실력도 있고 인맥도 있으면 더 좋다”야. 아니, 솔직히 말하면 “인맥이 있으면 실력이 70%만 있어도 된다”가 더 정확할지도.

네가 좋아하는 BTS도 실력만으로 성공했을까? 물론 실력이 기본이지. 하지만 좋은 스태프들을 만난 것, 그것도 일종의 인맥이야.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 그래서 BTS가 인터뷰할 때 자신이 1등을 하고 상을 받는 모든 것들이 스태프들의 헌신 때문이라고 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고 아부하고 아첨하라는 게 아니야. 아빠가 말하고 싶은 건, 사람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하라는 거야. 오늘 네가 도와준 친구가 10년 후 네게 손을 내밀 수도 있어. 오늘 네가 무시한 사람이 내일 네 면접관이 될 수도 있고.


예전에 네가 반 친구 생일파티에 안 가겠다고 했을 때, 엄마가 “그래도 가라”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 알겠니? 별로 친하지 않아도, 가서 축하해 주고 함께 시간 보내는 것. 그게 관계의 시작이야.

아빠도 요즘 깨달아가고 있어. 혼자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구나. 함께 잘해야 하는구나. 그래서 어색해도 회식 가고, 재미없어도 경조사 챙기고, 귀찮아도 안부 묻고.

며칠 전 네가 “진짜 친구는 조건 없이 좋아하는 거 아니야?“라고 물었지. 맞아. 진짜 친구는 그래. 하지만 사회에서 만나는 대부분의 관계는 서로 주고받는 거야. 그게 계산적인 게 아니라 현실적인 거야.


네가 나중에 어떤 일을 하든,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을 거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고, 누군가와 협력해야 해. 그때 “아, 그 사람 알아요” “제가 연락해 볼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게 큰 자산이 될 거야.

인맥은 돈으로 살 수 없어. 시간과 진심을 투자해야 해. 가끔은 손해 보는 것 같아도, 먼저 베풀어야 해. 그게 쌓이고 쌓여서 네 자산이 되는 거야.

혹시 학교에서 점심 혼자 먹을 때가 있지? 가끔은 괜찮아. 하지만 내일은 누군가에게 “같이 먹을래?“라고 물어보는 건 어때? 그게 시작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