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용서와 화해

마음의 짐을 내려놓는 법

by 강훈

예전에 아빠가 절친과 크게 싸우고 한 달간 말을 안 했었어. 그때 아빠는 매일 밤 일기에 그 친구 욕을 엄청 썼어. 정말 좀 유치하긴 했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화를 달랠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런데 얼마 후에 그 친구 생일이 기억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어. 미워하면서도 여전히 신경 쓰고 있는 거야. 사람 마음이 그렇더라.


용서가 뭔지 아니?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거야. 미움을 품고 사는 건 뜨거운 석탄을 손에 쥐고 있는 것과 같아. 상대에게 던지려고 들고 있지만, 타는 건 내 손이야.

어느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야. 아빠도 할아버지를 용서하는 것에 대해서 아주 많이 힘들어하잖아. 어떤 용서는 정말 어렵고 하기 싫기도 해.

용서는 잊는 게 아니야. 그 일이 없었던 것처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일을 품고도 앞으로 갈 수 있게 되는 거야. 상처는 흉터가 되고, 흉터는 이야기가 되고, 이야기는 지혜가 돼.


엄마와 크게 싸운 날이 있었어. 서로 상처 주는 말을 했지. 며칠을 냉전 했어. 그런데 어느 날 아침, 엄마가 아빠 좋아하는 간식을 사 왔더라. 아빠도 엄마 좋아하는 꽃게 요리를 만들었고. 말로 “미안해”는 못했지만, 그게 우리의 화해였어.

화해가 꼭 극적일 필요는 없어. 때로는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녹아내리는 것도 화해야. 봄이 오면 얼음이 녹듯이, 마음도 계절이 있어.


네가 “왜 내가 먼저 사과해야 해?“라고 물었을 때, 아빠는 이렇게 생각해. 먼저 사과하는 사람이 더 강한 사람이야. 자존심보다 관계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가 있으니까.

용서의 가장 어려운 대상이 누군지 아니? 자기 자신이야. 우리는 남의 실수는 용서하면서도 자신의 실수는 평생 붙들고 있어. “그때 왜 그랬을까”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끝없이 자책하지.


아빠의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이 있어. “용서는 선물이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자유로워진다.” 그때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겠어.

미움을 붙잡고 있는 것도 에너지가 들어. 매일 그 사람을 미워하려고 애쓰는 것. 그 에너지로 뭘 할 수 있을까. 용서는 그 에너지를 돌려받는 거야.


화해한다고 예전처럼 돌아가는 건 아니야. 깨진 그릇을 붙여도 금이 남듯이. 하지만 그 금이 있는 그릇도 여전히 쓸 수 있어. 어쩌면 더 조심스럽게, 더 소중하게 다루게 되지.

용서는 한 번에 되는 게 아니야. 매일 조금씩 놓아주는 거야. 오늘은 분노를 조금, 내일은 서운함을 조금. 그러다 어느 날 그 사람을 생각해도 아무렇지 않은 날이 와.

아빠가 엄청 싸웠던 그 친구, 지금은 다시 친하게 지내고 있어.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잘 기억 안 나더라고. 시간이 다 해결해 주는 건 아니지만, 시간이 도와주는 건 맞아.


용서는 약함이 아니라 강함이야. 미움을 계속 가져가는 게 쉬워. 놓아주는 게 더 힘들지. 그래서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진짜 강한 사람이야.

화해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야. 때로는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것, 같이 밥 먹는 것, 웃어주는 것. 이런 작은 행동들이 쌓여서 화해가 돼.

완벽한 용서는 없어도 돼. 70% 용서, 80% 용서도 충분해. 중요한 건 0%에서 벗어나는 거야. 조금이라도 놓아주기 시작하면, 그게 시작이야.


딸아, 살다 보면 용서해야 할 일들이 많을 거야. 배신, 실망, 상처. 그때마다 기억해. 용서는 그들을 위한 게 아니라 네 마음의 평화를 위한 거라는 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너 자신을 용서하는 거야. 네가 한 선택들, 실수들, 후회들. 그것들도 다 너의 일부야. 그것들을 안고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때, 진짜 어른이 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