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 원칙 2 - 재해석

다르게 볼 수 있는가

by 강훈

같은 그림, 다른 의미

1915년, 윌리엄 엘리 힐(William Ely Hill)이라는 화가가 흥미로운 그림을 그렸다.

한 여인의 옆모습.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어떤 사람은 그 그림을 보고 젊은 여인이라고 말한다. 턱을 살짝 들고 고개를 돌린, 우아한 젊은 여인.

그런데 어떤 사람은 같은 그림을 보고 늙은 여인이라고 말한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주름진 얼굴의 노파.

둘 다 맞다. 젊은 여인의 턱선이 늙은 여인의 코가 되고, 젊은 여인의 목걸이가 늙은 여인의 입이 된다. 같은 선들인데,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보인다.

한번 젊은 여인으로 보이면, 계속 젊은 여인으로 보인다. 하지만 누군가 다르게 보는 법을 알려주면, 갑자기 늙은 여인이 보인다. 그림은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의 삶도 그렇다. 같은 상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된다.


액자를 바꾸면 그림이 다르게 보인다

심리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은 프레임, 즉 액자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같은 그림도 어떤 액자에 넣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황금색 고급 액자에 넣으면 귀하게 보이고, 싸구려 액자에 넣으면 초라하게 보인다. 그림 자체는 변하지 않았는데.

우리의 해석도 액자와 같다. 같은 사건을 어떤 액자에 넣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르게 보인다.

만약 회사에서 실수를 했다. 위기라는 액자에 넣으면, 그것은 재앙이 된다. 끝이라고 느껴진다. 하지만 학습이라는 액자에 넣으면, 그것은 기회가 된다. 성장의 발판이 된다.

사건은 하나. 하지만 액자에 따라, 당신의 감정도 다르고, 행동도 다르고, 결과도 다르다. 액자를 바꾸는 것. 이것이 재해석이다.


설명 방식이 미래를 만든다

심리학자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은 오랫동안 사람들을 연구했다. 낙관적인 사람과 비관적인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능력의 차이인가. 환경의 차이인가.

아니었다. 차이는 같은 사건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였다.

비관적인 사람은 나쁜 일이 생기면 영구적이고 전반적이고 내적으로 설명한다. 나는 항상 이렇다. 나는 모든 걸 망친다. 이것은 내 탓이다.

낙관적인 사람은 같은 일이 생겨도 일시적이고 구체적이고 학습 가능하게 설명한다. 이번엔 안 됐다. 이 부분이 잘못됐다. 여기서 배울 게 있다.

같은 실패. 하지만 설명 방식에 따라, 한 사람은 무너지고 한 사람은 일어선다. 항상과 이번의 차이. 그 작은 단어 하나가 큰 차이를 만든다.


시간의 관점

한 가지 실험을 해보자.

당신에게 최근 힘들었던 일이 있다고 하자. 그것을 떠올려보라. 그리고 질문을 던져보자. 10년 후의 나는 이 일을 어떻게 볼까.

10년 후에도 이것은 여전히 인생 최대의 위기일까. 아니면 그냥 지나온 경험 중 하나일까. 혹시 그때 그 일이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고 말하게 될까.

시간의 관점으로 보는 순간, 지금의 일이 조금 작아 보인다. 여전히 힘들지만, 그래도 이것도 지나가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미 경험으로 안다. 몇 년 전에는 세상이 무너질 것 같았던 일이, 지금 돌아보면 그저 하나의 경험일 뿐이라는 것을. 시간은 모든 것을 다르게 보이게 만든다.


사랑하는 사람의 관점

또 다른 관점이 있다.

만약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나는 뭐라고 말해줄까. 친구가 실수했다. 당신은 친구에게 형편없다고, 항상 그렇다고 말할까. 아니면 괜찮다고, 누구나 실수한다고, 다음엔 더 잘할 수 있다고 말할까.

이상한 일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는 친절한데, 자신에게는 가혹하다. 다른 사람의 실수는 이해하면서, 자신의 실수는 용서하지 못한다.

당신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한다고 상상해 보라. 여전히 그 말을 할 수 있는가. 만약 할 수 없다면, 그 말은 당신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 자신에게도 친구처럼 말할 수 있다.


호기심의 렌즈

과학자들은 실험이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는다. 실패도 데이터다. 이 방법은 안 되는구나. 그럼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자.

만약 당신의 인생을 하나의 실험이라고 본다면. 오늘 이 방법으로 해봤더니 안 됐다. 흥미롭다. 다음엔 다르게 해 봐야겠다.

판단이 아니라 호기심. 실패가 아니라 데이터. 끝이 아니라 과정. 이 렌즈를 통해 보면, 모든 것이 배움이 된다. 잘 풀린 것도 배움이고, 안 풀린 것도 배움이다. 호기심은 판단을 몰아낸다.


수현의 이야기

수현은 승진에서 떨어졌다. 첫 반응은 좌절이었다. 나는 부족하다. 인정받지 못했다. 며칠 동안 그 생각에 갇혀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친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것을 다르게 볼 수는 없을까.

처음엔 화가 났다. 다르게 볼 게 뭐가 있냐고. 나는 떨어졌다고.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조용히 생각해 봤다. 정말 다르게 볼 수 없을까.

종이를 꺼내서 적기 시작했다. 강제로라도. 만약 10년 후라면. 만약 친구에게 조언한다면. 만약 이것이 실험이라면.

천천히, 다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번엔 안 됐지만 다음 기회가 있다. 더 준비할 시간을 얻었다. 부족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승진이 정말 내가 원하는 건지 다시 생각해 볼 기회일 수도 있다.

모든 관점이 다 진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능성을 보는 순간, 숨통이 트였다. 이것도 끝이 아니구나.

세 달 후, 수현은 부족한 부분을 보완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다. 그리고 다음 기회에 승진했다. 나중에 말했다. 그때 낙담하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라고.


장애물이 길이 된다

고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는 전쟁과 역병과 배신 속에서도 글을 썼다. 그중 한 구절이 있다. "장애물은 길이 된다."

문제 자체가 해결책을 포함한다는 뜻이다. 어려움 자체가 성장의 기회라는 뜻이다. 같은 돌이 어떤 사람에게는 걸림돌이 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디딤돌이 된다. 돌이 문제가 아니다.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가 문제다.

당신 앞에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나를 막는 벽인가. 아니면 나를 강하게 만드는 훈련인가. 같은 돌, 다른 의미.


재해석은 부정이 아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재해석은 현실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힘든 일이 일어났는데 괜찮다고 무조건 말하는 게 아니다. 고통을 느끼는데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자신을 몰아붙이는 게 아니다.

재해석은 현실을 인정하되, 다른 가능성도 보는 것이다.

이건 정말 힘든 일이다. 그리고 여기서 뭘 배울 수 있을까. 둘 다 진실이다. 나는 실수했다. 그리고 실수는 성장의 일부다. 둘 다 사실이다. 지금은 힘들다. 그리고 이것도 지나갈 것이다. 둘 다 맞다.

현실의 고통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가능성을 여는 것. 이것이 진정한 재해석이다.


작은 시작

오늘부터 할 수 있는 작은 연습이 있다.

하루에 한 번, 부정적 생각이 올라올 때, 잠시 멈추고 물어보라. 이것을 다르게 볼 수는 없을까.

처음엔 답이 안 나올 수 있다. 괜찮다.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질문 자체가 뇌에게 신호를 보낸다. 다른 가능성을 찾아보라고.

며칠, 몇 주 계속하다 보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자동으로 여러 관점이 보인다. 한 가지 해석에 갇히지 않는다. 유연한 생각의 근육이 생긴다.

알아차렸다. 그리고 재해석했다.

이제 다음 단계로 갈 준비가 되었다. 다음 챕터에서, 우리는 생각의 방향을 결정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를 배울 것이다.

질문 교체. 당신이 던지는 질문이 당신의 생각을 만든다.

계속 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