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의 통일, 혹은 알고리즘이 된 영화

넷플릭스의 워너 브라더스 인수

by 강훈

2025년 12월, 할리우드의 지도가 영원히 바뀌었다.

'오징어 게임'을 만든 28년 차 스트리밍 기업 넷플릭스가, '해리포터'와 '배트맨'을 탄생시킨 102년 역사의 거함 워너 브라더스를 삼켰다. 한화 약 106조 원. 천문학적인 숫자보다 더 충격적인 것은 그 상징성이다. 이것은 단순한 기업 합병이 아니다. 실리콘밸리의 기술(Tech)이 할리우드의 전통(Legacy)을 완전히 굴복시킨, '영화의 세기'가 저물고 '스트리밍의 세기'가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조종(弔鐘)과도 같다.


미디어 이론가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은 일찍이 현대 미디어의 본질을 이렇게 꿰뚫었다.

"미디어는 메시지다."

우리가 무엇을 보느냐(내용)보다, 그것을 어떤 그릇에 담아 전달하느냐(형식)가 인간의 사고방식과 사회 구조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넷플릭스의 승리는 맥루언의 예언이 현실이 되었음을 증명한다. 극장이라는 어둠 속에서 타인과 함께 웃고 울던 '집단적 경험'의 미디어는 가고, 침대에 누워 스마트폰으로 홀로 소비하는 '개인적 경험'의 미디어가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낭만의 몰락, 효율의 승리

워너 브라더스의 로고가 박힌 영화들은 단순한 콘텐츠가 아니었다. 그것은 주말 저녁의 외출이었고, 팝콘 냄새였으며, 스크린이 꺼진 후에도 이어지던 대화였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알고리즘 안에서 영화는 0과 1로 이루어진 데이터 덩어리로 환원된다. '취향 저격'이라는 명분 아래, 우리는 내가 좋아할 법한 이야기들만 편식하게 된다. 효율적이지만, 우연히 마주친 낯선 이야기에서 얻던 충격과 감동은 설 자리를 잃는다.


문화 제국주의와 다양성의 위기

더 큰 우려는 '단일화'다. 거대한 두 제국이 하나가 되었다는 건, 전 세계인의 눈과 귀를 붙잡을 권력이 한 곳으로 쏠렸다는 의미다. 넷플릭스가 제작하고 배급하는 방식이 곧 전 세계의 표준이 될 것이다(이미 표준인지도 모르겠다). 흥행 공식에 맞지 않는 실험적인 영화, 소수자의 목소리가 담긴 작고 거친 이야기들이 과연 이 거대한 알고리즘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효율성은 다양성의 가장 큰 적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영화관의 시대가 저무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 흐르는 강물처럼 시대는 변하고, 기술은 언제나 승리해왔으니까. 하지만 플랫폼이 바뀐다고 해서 이야기의 본질까지 변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영화를 사랑했던 이유는 화려한 CG나 편안한 시청 환경 때문이 아니었다.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며 내 삶을 위로받고, 스크린 속 영웅을 보며 용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라는 거대한 제국이 부디 숫자와 데이터로만 세상을 재단하지 않기를, 차가운 서버 안에서도 인간의 뜨거운 체온이 담긴 이야기들이 계속 숨 쉴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을 감동시키는 건 화소(Pixel)가 아니라 진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