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이라는 무례에 대하여
"가식 떨지 마." "솔직한 게 쿨한 거야."
SNS 프로필부터 자소서, 힐링 에세이까지 온 세상이 "너 자신이 되라(Just be yourself)"라고 부르짖는다. 사회적 가면을 벗어던지고 내면의 본능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마치 '자존감 높은 삶'의 정석인 양 추앙받는다. 하지만 나는 이 시대의 금언에 대해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거 다 헛소리다.
제발, 부탁이니 가면을 써라. 당신의 그 '진짜 모습'은 생각보다 별로니까.
날것의 자아는 폭력이다
우리는 착각한다. 가면을 벗은 '맨얼굴'의 자아가 순수하고 아름다울 것이라고. 천만에. 문명이라는 옷을 벗겨놓은 인간의 본성은 이기적이고, 충동적이며, 때로는 잔인하다.
모두가 "나는 나대로 살겠다"며 기분 내키는 대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세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벌어지는 지옥이 될 것이다.
당신이 상사의 면전에서 욕을 하지 않고, 싫어하는 친구에게도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것은 당신이 비겁해서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본능을 억제할 줄 아는 ‘문명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의'라고 부르는 것들의 본질은 사실 '정교하게 다듬어진 위선'이다. 그리고 이 위선이야말로 타인과 부대끼며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공적 인간의 몰락
사회학자 리처드 세넷(Richard Sennett)은 그의 저서 <공적 인간의 몰락>에서 현대 사회의 병폐를 정확히 짚어냈다.
"현대인은 공적인 역할(Role)과 사적인 자아(Self)를 구분하지 못한다. 공적인 자리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것을 '진정성'이라 착각한다. 이것은 친밀함의 폭정(Tyranny of Intimacy)이다."
세넷의 말처럼, 요즘 사람들은 TPO(시간, 장소, 상황)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감정을 배설한다. 서비스직 직원에게 화풀이하고는 "나는 뒤끝 없는 솔직한 성격"이라 포장하고, 공적인 회의 석상에서 기분이 나쁘다고 입을 닫아버린다.
이것은 쿨한 게 아니다. 그저 '사회화가 덜 된 어린아이'일 뿐이다. 타인은 당신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당신의 우울, 분노, 날것의 기분을 받아줘야 할 의무가 세상에는 없다.
성숙함이란 '연기'를 잘하는 것이다
'페르소나(Persona)'는 원래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들이 쓰던 가면을 뜻한다. 어원은 '그것을 통해 소리를 내다(Per-sonare)'이다. 즉, 우리는 가면을 썼을 때 비로소 더 크고 멀리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다.
진짜 어른은 가면을 벗는 사람이 아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가면을 갈아 끼울 줄 아는 사람이다.
속은 문드러져도 자식 앞에서는 태연한 척 웃어주는 부모의 가면, 피곤해 죽겠지만 거래처 앞에서는 활기찬 척하는 프로의 가면. 그 '가식'과 '연기' 속에 타인을 향한 배려와 책임감이 들어 있다.
솔직함은 게으름이다
그러니 "나는 가식적인 건 딱 질색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그 말은 "나는 타인을 위해 내 기분을 조절하는 노력 따위는 하지 않겠다"는 무례한 선언일 확률이 높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달라고? 아니, 제발 노력해서 더 나은 사람이 된 뒤에 와라.
성숙한 인간관계는 날것의 자아끼리 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쓴 '예의 바른 가면'끼리 부드럽게 스치는 것이다. 그것이 차가운 도시를 견디게 하는 거리 두기의 미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