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비는 지구를 구하지 않는다
스타벅스에서 3만 원짜리 한정판 텀블러를 산다. 마트에서는 비닐봉지 대신 'I Love Earth'가 적힌 에코백을 들고 장을 본다. 그리고 뿌듯한 표정으로 SNS에 올린다.
#ZeroWaste #SaveTheEarth.
당신은 오늘 지구를 지켰다고 생각하는가? 착각하지 마라. 당신은 지구를 지킨 게 아니다. 당신은 그저 '도덕적 우월감'을 쇼핑했을 뿐이다.
친환경이라는 이름의 면죄부
우리는 '소비'로 망가진 환경을 또 다른 '소비'로 해결하려는 기이한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집에 이미 텀블러가 5개나 있는데, '지구의 날' 기념 텀블러를 또 산다면 그것은 환경 파괴다. 면으로 된 에코백 하나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물과 탄소는 비닐봉지 수천 개와 맞먹는다. 당신의 장롱 속에 처박힌 여러 개의 에코백은, 사실상 '좀 더 질긴 비닐봉지'일 뿐이다.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Slavoj Žižek)은 이런 현대인의 소비 행태를 '문화적 자본주의(Cultural Capitalism)'의 교묘한 술수라고 비판하며, 이를 중세 시대 교회가 팔았던 '면죄부'에 비유했다.
"우리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다. 우리는 '나는 착한 사람이야'라는 윤리적 경험을 산다. 공정무역 커피를 마심으로써, 우리는 자본주의가 저지른 착취에 대한 죄책감으로부터 구원받으려 한다."
지젝의 말대로다. 기업들은 "이 신발을 사면 아프리카에 기부됩니다", "이 차를 타면 탄소가 줄어듭니다"라고 속삭인다. 우리는 그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나의 의무는 다했다'고 믿어버린다. 그 안도감은 우리의 양심을 마취시킨다. 진짜 문제는 '더 착한 소비'가 아니라, '소비 그 자체'인데도 말이다.
전기차의 더러운 비밀
가장 거대한 위선은 '전기차'다. 매연이 안 나오니 깨끗하다고? 그 전기차 배터리에 들어가는 코발트와 리튬을 캐기 위해 콩고의 어린아이들은 지금도 맨손으로 땅을 파고 있다.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는 여전히 화석연료를 태운다.
배기관에서 나오던 매연을 발전소 굴뚝과 광산으로 옮겨 놓았을 뿐, 오염의 총량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전기차 오너들은 파란 번호판을 달고 마치 자신이 환경 운동가라도 된 양 으스댄다. 이것은 '생태학적 허영심(Eco-Narcissism)'일 뿐이다.
가난이 구원이다?
불편한 진실을 말해볼까? 지구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텀블러를 모으는 당신이 아니다. 돈이 없어서 새 옷을 못 사 입고, 차가 없어서 걸어 다니고, 물건을 아끼고 또 아껴 쓰는 저 가난한 노인이다.
어쩌면 최고의 친환경은 '구질구질함'이다. 폼 나고 세련된 친환경 라이프? 그런 건 없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환상일 뿐이다.
쇼핑을 멈추는 것만이 답이다
그러니 제발 그 텀블러 좀 내려놓아라. 지구를 정말로 위한다면, '친환경 제품'을 검색하는 그 손가락을 멈춰야 한다.
무언가를 '함으로써(Do)' 지구를 구하려 하지 마라. 환경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어쩌면 '하지 않는 것(Do Nothing)'이다. 사지 않고, 쓰지 않고, 버리지 않는 것.
하지만 당신은 그러지 못할 것이다. 소비하지 않는 삶은 불편하고, 무엇보다 '폼'이 나지 않으니까. 당신이 지키고 싶은 건 푸른 지구가 아니라, '세련된 개념인'으로 보이고 싶은 당신의 이미지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