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리라는 이름의 가스라이팅

요새를 허물거나, 방관하거나

by 강훈

쿠팡에 관한 글을 계속 쓰게 되는 요즘이다. 매일 뉴스에서 새로운 쿠팡 소식이 전해온다. 아쉽지만 좋은 소식들은 아니다. 2026년의 첫 태양이 떴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로켓’이라는 이름의 신화에 포획되어 있다. 새벽마다 문 앞에 놓이는 정갈한 박스들, 그 편리함의 이면에 노동자의 죽음과 블랙리스트라는 서늘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안다. 하지만 사법부가 눈을 감고 정치권이 결탁의 악수를 나누는 사이, 이 사악한 성채는 오히려 더 공고해졌다. 여기서 우리가 마주해야 할 가장 아픈 진실은 기업의 부도덕함보다, 그 부도덕함의 톱니바퀴가 되어 돌아가는 우리들의 ‘침묵’과 ‘학습된 무력감’의 정체다.


벼랑 끝의 노동: 생존이라는 지독한 인질극

쿠팡의 물류센터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이들이 모여드는 ‘거대한 진공청소기’와 같다. 오늘 밤의 방세가 급하고, 아이의 학원비가 절실하며, 다른 노동 시장에서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판정받은 이들에게 쿠팡은 사악한 포식자이기 이전에 유일한 생존의 비상구다. 그들이 블랙리스트의 공포 앞에서도 허리를 굽히는 것은 도덕적 무감각 때문이 아니라, 이 요새에서 쫓겨나면 마주할 ‘더 지독한 무(無)’에 대한 실존적 공포 때문이다. 노동을 조각으로 해체해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부품으로 만든 시스템 안에서, 개인의 존엄은 생존이라는 인질극 앞에 너무도 쉽게 무력화된다.


인프라가 된 편리함: 윤리를 삼켜버린 가두리 양식장

이용자들의 태도 역시 무관심이라는 한 단어로 설명하기엔 복잡한 결이 숨어 있다. 쿠팡은 이제 단순한 쇼핑몰을 넘어 우리의 생활양식 전체를 장악한 ‘인프라’가 되었다. 이 플랫폼을 탈퇴한다는 것은 단순히 앱 하나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이미 최적화된 나의 생활 리듬 전체를 거부해야 하는 고비용의 투쟁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피 묻은 박스에 부채감을 느끼면서도, 당장의 편리함이 주는 도파민과 생활의 효율성 앞에 윤리적 결단을 유예한다. 편리함이 공기처럼 필수적인 인프라가 되었을 때, 윤리는 그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이들만의 럭셔리가 된다.


정부의 실행력: 무력감의 늪을 건너는 다리가 될 것인가

이제 시선은 출범 1년 차가 된 정부로 향한다. 이전 정부의 미온적 대처가 시민들에게 ‘정의의 무력함’을 학습시켰다면, 새 정부가 표방하는 강한 행정력과 실행력은 이 지독한 가스라이팅을 끝낼 유일한 외부 압력일지 모른다. 법이 기업의 오만을 꺾고, 사법부가 자본과의 유착 대신 노동의 가치를 수호하는 ‘다름’을 보여준다면, 대중의 무력감은 비로소 희망으로 치환될 동력을 얻을 것이다.

만약 정부마저 효율과 자본의 논리에 굴복해 이전과 별반 다르지 않은 미지근한 대응으로 일관한다면, 우리 사회의 무력감은 이제 영구적인 ‘냉소’로 고착화될 것이다. 반대로 국가가 ‘기업의 국적’이 아닌 ‘시민의 안전’을 우선하는 실행력을 증명해 낸다면, 소비자들 또한 “나 하나 바뀐다고 세상이 바뀔까?”라는 의구심을 버리고 기꺼이 불편한 정의를 선택할 용기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요새의 성벽을 허무는 첫 걸음

결국 쿠팡 사태의 종결자는 기업도, 국가도 아닌 우리 자신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 개인의 선택을 이끌어내는 것은 ‘정의가 승리한다’는 최소한의 시스템적 신뢰다. 새해, 정부가 보여줄 실행력은 단순한 행정 절차가 아니라, 무너진 공동체의 윤리를 재건하는 상징적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편리가 인권을 압도하고, 생존이 존엄을 비웃는 시대는 이제 끝나야 한다. 국가가 제 역할을 다하고 시스템이 온기를 되찾을 때, 비로소 우리는 그 사악한 요새의 성벽을 허물고 ‘사람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6년, 우리는 과연 학습된 무력감에서 로그아웃하여 새로운 희망의 연대를 시작할 수 있을까. 그 답은 이제 막 시작된 권력의 의지와, 그 의지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날 선 시선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