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망명지에서 돌아오는 길

평범함이 권력이 되는 사회를 위하여

by 강훈

상식이란, 사회라는 집을 지탱하는 주춧돌이다. 하지만 쿠팡 사태로 대변되는 일련의 비극들은 우리에게 그 주춧돌이 썩어있음을 통렬하게 보여주었다. 똑똑한 자들이 교묘한 말로 진실을 가리고, 법이 강자의 방패가 될 때 평범한 사람들은 '상식의 망명'을 선택한다. "세상은 원래 그래", "나 하나 바뀐다고 뭐가 달라지겠어"라는 냉소는 상식을 잃은 이들이 선택한 슬픈 방어기제다. 이제 우리는 이 망명의 길을 되짚어 돌아와야 한다.


언어의 주권 회복: '숫자'에서 '사람'의 언어로

상식 복원의 첫걸음은 엘리트들이 오염시킨 언어를 정화하는 일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노동자의 죽음을 '프로세스의 결함'이라 부르고, 부당한 대우를 '경영상의 효율'이라 세탁한다. 상식을 회복한다는 것은 이 가공된 언어를 거부하고 본래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죽음은 죽음이고, 차별은 차별이며, 유착은 유착이다. 기업이 내놓는 세련된 보도자료 뒤에 숨은 비명을 인간의 진짜 언어로 다시 번역해내야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지"라고 말하는 그 투박한 직관의 언어들이 다시 사회의 공적 담론으로 부활할 때, 엘리트들의 '기능적 무지'는 힘을 잃는다. 상식은 고도의 논리가 아니라, 아픈 것을 아프다고 말하는 정직한 감각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불편한 정의'를 선택하는 용기: 소비자 주권의 재정의

편리함이 인프라가 된 세상에서 쿠팡을 거부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상식의 복원은 이 '자발적 불편함'을 감수하는 작은 용기들이 모일 때 가능하다. 단순히 앱을 지우는 행위를 넘어, 내가 지불하는 돈이 누군가의 눈물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윤리적 주체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은 엘리트들이 가장 좋아하는 대중의 심리다. 하지만 "나 하나라도"라는 생각이 모여 거대한 흐름을 만들 때, 기업은 비로소 공포를 느낀다. 정부의 행정력이 이 상식의 흐름을 뒷받침해 준다면 금상첨화겠지만, 그 동력을 만드는 것은 결국 "불편하더라도 상식적인 길을 가겠다"는 평범한 시민들의 단단한 연대다. 편리함에 가스라이팅 당한 자아를 구출해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되찾아야 할 첫 번째 주권이다.


시스템의 검증: 상식이 승리한다는 '경험'의 축적

상식은 '믿음'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 그것은 '증명'되어야 한다. 잘못을 저지른 거대 기업이 법의 엄중한 심판을 받고, 책임 있는 엘리트들이 자리를 내놓으며, 피해를 입은 노동자와 시민들이 제대로 된 사과와 보상을 받는 '정의의 실현 장면'을 우리는 목격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정부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법이 만인에게 평등하다는 그 지극히 상식적인 명제가 현실에서 단 한 번이라도 제대로 작동하는 것을 보여줄 때, 대중의 무력감은 희망으로 바뀐다. 상식의 복원은 국가가 '공정한 심판'의 자리로 돌아와, 꼼수와 유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해 낼 때 비로소 완성된다.


2026년, 상식이라는 가장 강력한 무기

상식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다. 엘리트들이 아무리 화려한 논리로 무장해도, "사람이 죽었는데 이게 최선입니까?"라는 상식적인 질문 하나를 이길 수는 없다.

2026년, 우리는 더 이상 상식을 망명지에 내버려 두지 말아야 한다. 냉소를 거두고, 투박하지만 정직한 우리의 목소리를 다시 높여야 한다. 국가 시스템이 그 목소리에 응답하도록 끊임없이 감시하고 요구해야 한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그것은 자기 삶의 주권을 포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의 '날 선 시선'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