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와 존재의 갈등
신앙의 깊이를 가늠하는 가장 정직한 척도는 기도 시간의 길이나 성경 지식의 양이 아니다. 어쩌면 그것은 '돈'을 대하는 태도다. 돈은 현대 사회에서 생존의 수단이자 권력의 상징이며, 인간의 가장 밑바닥 욕망이 투영되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종교는 흔히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며 경계하지만, 동시에 "축복의 증거"라며 예찬하기도 한다. 이 모순된 태도 사이에서 신자들은 돈을 탐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고, 돈을 쓰면서도 거룩함을 갈구하는 기묘한 분열을 겪는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은 인간의 삶을 '소유적 실존(To Have)'과 '존재적 실존(To Be)'으로 구분했다. 소유적 실존은 더 많이 가짐으로써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하지만, 존재적 실존은 내가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집중한다. 한국 교계의 비극은 신앙을 '존재의 변화'가 아닌 '소유의 확장'으로 오해한 데서 시작되었다. "믿으면 복 받는다"는 문장에서 '복'이 존재의 풍요가 아닌 통장의 잔고로 치환될 때, 신앙은 자본주의의 하수인으로 전락한다.
철학적으로 볼 때, 돈은 모든 가치를 수치로 환산하여 '질(Quality)'을 '양(Quantity)'으로 바꾸어버린다. 마르크스(Karl Marx)가 간파했듯, 돈은 인격과 관계조차 상품으로 만드는 '물신(Fetish)'의 힘을 가진다. 교회 안에서도 헌금의 액수가 발언권의 크기가 되고, 목회자의 성공이 건물의 크기로 측정되는 현상은 신앙 공동체가 이미 물신숭배에 잠식되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거룩함을 말하면서도 숫자에 집착하는 태도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을 빌려 돈의 힘을 믿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성경이 경계하는 '맘몬(Mammon)'은 단순히 화폐 그 자체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돈을 인격화하여 하나님의 자리에 올려두고,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신앙적 체계'를 뜻한다. 예수님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단언한 이유는, 돈이 가진 지배력이 하나님의 통치와 정면으로 충돌하기 때문이다. 돈은 우리에게 '안전'을 약속하지만, 그 대가로 우리의 '영혼'을 담보로 요구한다.
진정한 영성은 가난을 미화하는 것이 아니라, 돈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소유가 곧 나 자신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날 때, 인간은 비로소 타인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할 수 있게 된다. 돈을 '축복의 징표'로 자랑하는 오만과 '저주의 산물'로 혐오하는 위선을 모두 버려야 한다. 대신 돈을 삶을 가꾸는 도구이자, 타인과 생명을 나누는 유통의 수단으로 바라보는 상식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가 돈 앞에서 얼마나 비굴해지는지, 혹은 얼마나 잔인해지는지를 정직하게 마주하는 것이 신앙의 시작이다. 거창한 교리보다 오늘 내가 쓴 영수증의 목록이 나의 신앙을 더 정확하게 말해준다. 돈이라는 성적표 앞에서 정직할 수 없다면, 우리가 말하는 하늘의 가치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신앙은 소유의 사다리를 오르는 기술이 아니라, 그 사다리에서 내려와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는 '존재의 실력'을 기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