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저주

기록되지 않은 미래를 살 권리

by 강훈

나에게 기억은 오랫동안 축복이라기보다 형벌에 가까웠다. 여덟 살, 아버지의 폭력과 외도로 집을 떠나야 했던 어머니의 빈자리는 내 삶의 거대한 공동(空洞)이 되었다. 그 빈 곳을 채우기 위해 거쳐 간 열 명의 새엄마는 어린 나에게 삶이 얼마나 불안정하고 깨지기 쉬운 것인지를 각인시킨 지독한 기록들이었다. 누군가에게 어린 시절이 돌아가고 싶은 안식처라면, 나에게 그것은 숨을 쉴 때마다 심장을 찔러대는 날카로운 파편들이었다.

이토록 가혹한 기억의 과잉 상태는 한 인간을 영원히 ‘과거의 포로’로 묶어두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나는 오늘 그 기억들에 매여 살지 않는다. 나를 살아내게 한 것은 과거를 붙들고 씨름하는 인내심이 아니라, 과거가 현재의 주인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그 권력을 박탈하는 ‘지혜로운 망각’이었다.


역사의 무게를 내려놓는 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인간이 과거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느라 지금 이 순간의 대지를 경쾌하게 밟지 못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했다. 그는 지나간 모든 아픔을 기억의 장부에 기록하며 스스로를 불행의 감옥에 가두는 행위가 삶의 창조적인 에너지를 고갈시킨다고 보았다.

열 명의 새엄마라는 유례없는 삶의 궤적을 겪으며, 나는 한때 "나는 그런 일을 겪었으므로 온전한 삶을 살 수 없다"는 인과론적 절망에 빠지기도 했다. 하지만 니체의 사유를 만난 뒤 깨달았다. 과거에 대한 집착은 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박제된 피해자의 자리에 고착시킬 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현재를 살기 위해서는 어제의 나로부터 독립하여,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실존적 주권이 필요했다.


능동적 망각: 상처를 소화하는 힘

니체는 망각을 수동적인 결함이 아닌, ‘능동적인 힘’이자 ‘정신적인 소화력’이라고 정의했다. 음식을 먹고 영양분만 섭취한 뒤 나머지는 배설해야 건강을 유지하듯, 우리 정신 역시 경험한 모든 사건을 영원히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된다. 소화되지 않은 기억은 독소가 되어 현재의 감각을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나에게 ‘능동적 망각’은 그 지독한 기록들을 마음의 서랍 깊숙이 넣어두되, 그 서랍이 오늘의 내 선택을 방해하거나 명령하지 못하도록 문을 잠그는 결단이었다. 그것은 과거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영향력'을 무효화시키는 작업이다. 어머니의 부재와 거듭된 결손의 기억들은 내 삶의 데이터로 남아있을 뿐, 더 이상 내 인생의 방향키를 쥔 주인이 아니다. 나는 망각을 통해 과거라는 감옥의 간수로부터 내 삶의 열쇠를 되찾아올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다시 시작하는 용기

기억의 저주를 푸는 열쇠는 "왜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라는 지루한 해석에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일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 어떤 문장을 써 내려갈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주권을 이동시키는 데 있다. 과거의 피해자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오늘을 빚어내는 창조자로 설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나는 매일 아침 망각을 선택하며 다시 시작한다.

지독한 기억을 통과해 온 자가 누리는 평온은 기억이 소멸되어 얻은 안락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중력을 이겨내고 ‘현재’라는 유일한 영토를 탈환해 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근육이다. 과거는 참조할 수 있는 데이터일 뿐, 나의 본질을 규정하는 대본이 될 수 없다. 어제의 기록이 없는 사람처럼 오늘을 대면하는 그 경쾌함 속에서, 비로소 나는 삶의 진정한 주권을 행사한다.


현재라는 선물

과거의 상처를 훈장처럼 달고 사는 한, 우리는 결코 자유로운 주권자가 될 수 없다. 나를 옭아매는 낡은 서사들로부터 잠시 눈을 돌려, 오늘 나에게 주어진 텅 빈 도화지를 응시해 본다. 어제의 내가 누구였든, 어떤 고통의 숲을 지나왔든 상관없이 지금 이 순간 내가 내딛는 한 걸음이 나를 정의한다.

능동적인 망각은 무책임한 회피가 아니라, 현재라는 선물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우리가 지불해야 할 가장 지혜로운 비용이다. 기억의 장부를 덮고 텅 빈 마음으로 지금 눈앞의 풍경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과거라는 감옥으로부터 우아하게 탈주할 수 있다. 나의 인생은 누군가에 의해 쓰인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내가 직접 써 내려가는 살아있는 문장들의 연속이어야 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