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장소에서만 유능한 이들을 향한 질문
한국 교회에서 가장 강력한 주문처럼 쓰이는 말이 있다.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이 성공한다.” 예배라는 영적 행위가 삶의 모든 복잡한 매듭을 풀어주는 만능열쇠라는 논리다. 신앙의 성실함이 일상의 완성도로 이어진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겠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이 명제가 무참히 깨지는 장면을 너무나 자주 목격한다. 교회에서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헌신적인데, 정작 가정과 일터에서는 무책임하고 무례한 사람들. 그들은 정말 예배에 성공한 것일까, 아니면 종교라는 무대 위에서 성공적인 '연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신앙이 사람을 성실하게 만든다고 믿는다. 하지만 차갑게 관찰해 보면, 신앙 때문에 삶이 성실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래 성품이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 신앙생활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성실함은 영적 은사라기보다 삶에 대한 태도에 가깝다. 반면 일상은 엉망인데 교회에서만 유독 열심인 사람들은, 역설적이게도 일상에서 인정받지 못한 자아를 종교적 성취로 보상받으려 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에서는 아무도 나를 우러러보지 않지만,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봉사할 때는 '영적 리더'라는 근사한 가면을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역기능 가정에서 자란 내가 교회에 더 집착했던 것은 그 때문이었나 싶다.
이런 괴리는 '공간의 심리학'으로 설명되기도 한다. 수련회에 간 학생이 평소에는 잘 씻지도 않다가 갑자기 착실해지는 것은 그가 변해서가 아니라, 그 공간이 주는 짧고 강렬한 압박과 보상 체계에 반응한 것뿐이다. 교회라는 폐쇄적인 공간은 일주일 중 아주 짧은 시간 동안만 높은 도덕성과 경건을 요구한다. 그 짧은 시간의 '성공'을 인생 전체의 성공으로 착각하는 것은, 시험 기간에 벼락치기로 얻은 점수를 자신의 실력이라 믿는 것만큼이나 위험하다.
상식의 눈으로 보면 인생의 성공은 예배당 안의 뜨거운 눈물이 아니라, 예배당 문을 나선 뒤에 마주하는 차가운 현실을 얼마나 정직하고 품격 있게 견뎌내느냐에 달려 있다. 하나님은 일요일의 찬양 소리보다 월요일의 출근길에 우리가 이웃에게 건네는 친절과, 맡은 업무를 완수하는 정직한 노동에 더 관심이 많으실지도 모른다. 일상에서 실패한 사람이 예배에서 성공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삶이 예배가 되지 못한다면, 우리가 말하는 예배의 성공은 그저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한 영적 취미활동일 뿐이다.
반전은 성공의 방향에 있다. 예배는 인생 성공을 위한 '수단'이 아니다. 오히려 품격 있게 살아낸 일상의 열매들이 모여 드려지는 '결과'여야 한다. 신앙이 삶의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삶의 성실함이 그 사람의 신앙을 증명하는 것이다. 예배에 성공해서 인생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인생을 예배하듯 성실히 살아낸 사람만이 비로소 참된 예배에 성공할 자격을 얻는다.
이제 우리는 "예배에 성공하라"는 무책임한 구호를 내려놓아야 한다. 대신 "상식적인 인간이 되라"는 더 정직한 요구 앞에 서야 한다.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삶의 게으름을 포장하지 말자. 교회 밖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신앙은 가짜다. 진짜 거룩함은 성전의 제단 위가 아니라, 당신이 오늘 하루를 살아낸 가장 작고 평범한 그 일상의 정직함 속에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