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분은 역할인가 트로피인가
한국 교회의 직제는 기이한 역설 위에 서 있다. 목사, 장로, 집사라는 이름은 성경 속에서 하나같이 ‘종’ 혹은 ‘심부름꾼’을 뜻하지만, 정작 우리 곁의 예배당 안에서 이 단어들은 군대의 계급장이나 기업의 직함처럼 작동한다.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겠다고 고백하며 받은 직분이, 어느덧 공동체 내에서 대접받고 군림하는 ‘거룩한 상석’이 되어버린 풍경. 이것은 우리 신앙이 마주한 가장 아픈 상식의 결핍이다.
이 현상의 핵심에는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이 말한 ‘역할 거리(Role Distance)’의 소멸이 자리 잡고 있다. 건강한 인간은 자신이 맡은 사회적 역할과 고유한 자아 사이에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해야 한다. 다시 말해, 내가 ‘목사’나 ‘장로’의 일을 수행하고는 있지만, 그 직함 자체가 곧 ‘나’는 아니라는 감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교회라는 폐쇄적인 울타리 안에서 이 거리는 너무나 쉽게 무너진다. 한 개인이 자신의 직분과 자아를 완전히 동일시하는 순간, ‘인간 아무개’는 사라지고 ‘목사, 장로, 집사’라는 박제된 가면만이 남게 된다.
역할과 자아가 밀착된 이들에게서는 더 이상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다. 그들은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도 마치 강단 위에서 설교하듯 말하고, 사적인 관계에서도 장로의 위엄을 잃지 않으려 애쓴다. 이것은 신앙의 성숙이 아니라, 직분이라는 각본에 갇혀버린 ‘가면의 비극’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면 직분이 깊어질수록 타인의 아픔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민한 인간이 되어야 마땅하지만, 계급화된 직분은 오히려 타인을 가르치고 훈계하려는 권위주의의 갑옷을 입혀버린다.
비극은 공동체가 이 가면을 거룩함으로 오해할 때 심화된다. 직분자가 ‘역할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약함과 인간미를 드러내면 ‘영적 권위가 없다’고 비난하고, 오히려 권위주의라는 가면을 두껍게 쓸수록 ‘신령하다’고 치켜세우는 풍토가 그들을 더욱 고립시킨다. 결국 직분자는 대중 앞에서 성스러운 연기를 멈출 수 없는 피로감에 시달리고, 평신도들은 그 가면의 서늘함에 상처 입으며 공동체는 서서히 생명력을 잃어간다.
반전은 ‘가면을 벗는 용기’에 있다. 진짜 권위는 직함이라는 이름표가 아니라, 그 직함을 떼어냈을 때 드러나는 한 인간의 진실함에서 나온다. 자신이 목사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곁에 있는 사람의 고통이 보이고, 장로라는 권위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이웃과 상식적인 대화가 가능해진다. 직분은 신앙의 완성점이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더 겸손하게 ‘인간의 자리’로 내려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경계석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직분이라는 계급장을 스스로 해체해야 한다. 당신의 이름 뒤에 붙은 직함이 당신이라는 사람의 생동감을 가로막고 있다면, 그것은 소명이 아니라 영혼을 갉아먹는 족쇄일 뿐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어떤 직분을 가졌는지 묻지 않으신다. 다만 그 직함의 무게 뒤에 숨지 않고, 얼마나 정직하게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타인을 사랑했는지만을 물으실 것이다. 직분의 가면을 벗고도 당신이 여전히 따뜻한 이웃으로 남을 수 있을 때, 당신은 비로소 하나님이 맡기신 그 자리의 진짜 주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