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르 문디(Amor Mundi)

내가 떠난 뒤에도 남겨질 정원을 가꾸는 일

by 강훈

우리는 인생이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평생을 분투한다. 더 화려한 조명을 받고, 더 많은 박수를 받으며, 내 이름이 새겨진 영토를 한 뼘이라도 더 넓히는 것이 성공이라 믿는다. 그러나 무대 뒤로 물러날 시간이 가까워지면 깨닫게 된다. 정작 중요한 것은 내가 받은 박수 소리가 아니라, 내가 내려간 뒤에도 다른 배우들이 연기를 이어갈 이 무대가 얼마나 견고하고 아름답게 유지되느냐는 사실이다.


‘나’의 행복을 넘어 ‘우리’의 장소로

한나 아렌트는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 최악의 어둠을 통과하면서도 ‘세상에 대한 사랑’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세상이란 우리가 잠시 머물다 가는 여인숙이 아니라,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공동의 집’이었다.

세상에 대한 사랑, 아모르 문디(Amor Mundi)는 세상을 단지 나를 위한 도구나 배경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은 이 세상이 나보다 먼저 존재했고, 내가 떠난 뒤에도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라는 엄중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서 시작한다. 삶의 가치는 내가 무엇을 소유했느냐가 아니라, 이 공통의 세계를 얼마나 더 살만한 곳으로 돌보았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차려낸 식탁이 누군가의 허기를 채우고, 내가 건넨 문장이 누군가의 영혼을 지탱하며, 내가 지켜낸 가치가 다음 세대의 이정표가 되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을 향한 지독하고도 아름다운 짝사랑이다.


가꾸는 자의 주권: 소유가 아닌 책임

주권적인 인간은 세상을 이용하지 않고 가꾼다. 소유는 나를 풍요롭게 하지만, 책임은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50대의 문턱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더 이상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오래된 정원과 같아서, 잡초를 뽑고 물을 주며 내 손길이 닿은 흔적들이 내가 사라진 뒤에도 누군가에게 그늘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이것은 거창한 희생이 아니다. 오히려 나라는 존재의 유한함을 극복하는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다. 내가 가꾼 정원이 남겨진다는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죽음 앞에서도 의연할 수 있다. 나의 생은 마침표를 찍지만, 내가 사랑한 세상은 나의 행위와 말을 양분 삼아 계속해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상의 거룩함: 다시, 세상을 향해 걷기

세상에 대한 사랑은 구체적인 실천에서 완성된다. 낯선 이에게 건네는 따뜻한 눈길, 부조리한 시스템 앞에서 굽히지 않는 작은 정의, 그리고 내 손으로 정성껏 빚어낸 일상의 결과물들. 이 사소한 행위들이 모여 우리가 함께 사는 세상의 온도를 1도쯤 올릴 수 있다면, 그 삶은 이미 충분한 가치를 획득한다.

세상이 흉흉하고 기괴한 소식들로 가득 찰수록 우리는 더 뜨겁게 세상을 사랑해야 한다. 비난하고 냉소하는 것은 쉽지만, 무너진 자리를 다시 세우고 돌보는 것은 오직 주권적인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위’다. 아모르 문디(Amor Mundi)는 세상이 완벽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하기에 나의 손길이 필요함을 깨닫고 기꺼이 그 짐을 짊어지는 태도다.


맺으며: 당신이 남길 마지막 문장은 무엇인가

결국 삶이란 나라는 단어를 지워가며 ‘세상’이라는 문장을 완성해가는 과정이다. 내가 무엇이 되었느냐는 질문보다, 내가 머문 자리가 이전보다 조금이라도 더 다정해졌는지를 묻는 삶.

아모르 문디(Amor Mundi)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면, 매일 반복되는 노동도, 사람들과 나누는 평범한 대화도 모두 세상을 수선하고 가꾸는 신성한 작업이 된다. 당신이 오늘 내디딘 그 걸음이 누군가에게는 안전한 길이 되고, 당신이 오늘 끓인 찌개 한 그릇이 세상의 온기를 지탱하고 있다. 당신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사랑하며, 그 사랑의 깊이만큼 장엄한 삶의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