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외침은 당사자에게 닿지 않는가
- 비판의 화살은 그 대상에 명중하지 않는다
비판의 글은 매혹적이다. 날 선 문장이 사회의 모순을 찔러낼 때, 독자들은 대리 만족을 느끼며 '좋아요'라는 화폐로 화답한다. 하지만 정작 그 비판이 닿아야 할 당사자들은 그 화살을 유연하게 피한다. 그들은 글을 보지 않거나, 보더라도 "나는 예외"라는 견고한 방어막 뒤로 숨어버린다. 외침은 공허하게 흩어지고, 글쓴이는 "네가 뭘 안다고 그러느냐"는 냉소 섞인 반격에 직면하기도 한다.
비판의 글에 쏟아지는 뜨거운 반응은 종종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이 변하고 있다는, 혹은 최소한 누군가는 반성하고 있을 거라는 착각 말이다. 그러나 비판의 당사자가 그 글을 읽고 "아, 이것은 나의 이야기구나"라며 고개를 숙이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이 현상은 단순히 비판 대상의 도덕적 결함 때문만은 아니다. 인간의 뇌와 심리가 설계된 방식 자체가 타인의 비판을 수용하기보다 배척하도록 최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 인지부조화와 제3자 효과: "나는 예외다"라는 믿음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가 정립한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은 이 현상을 설명하는 핵심 열쇠다. 인간은 자신의 신념이나 행동이 비판받을 때 발생하는 심리적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다. 이때 대다수는 자신의 행동을 고치기보다, 비판의 논리를 왜곡하거나 자신과는 상관없는 이야기로 치부함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찾는다. "그 비판은 타락한 '저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지, 선량한 의도를 가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식이다.
여기에 '제3자 효과(Third-Person Effect)'가 가세한다. 미디어나 글의 영향력이 자신보다 타인에게 더 크게 미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다. 비판적인 글을 보며 당사자는 "요즘 이런 사람들이 문제야"라며 혀를 차지만, 정작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은 보지 못한다. 비판은 언제나 '제3자'를 향한 화살이 되어 허공을 가를 뿐이다.
- 메신저 공격: "네가 뭘 아느냐"는 방어 기제
비판의 지점이 도저히 부정할 수 없을 만큼 선명할 때, 인간은 마지막 방어 수단으로 '메신저'를 공격한다. 이를 논리학에서는 '인신공격의 오류(Ad Hominem)'라 부르지만, 심리학적으로는 자아를 보호하기 위한 강력한 '투사(Projection)'의 일종이다.
"너는 현장을 모르지 않느냐", "너도 깨끗하지 않으면서 누구를 가르치려 드느냐"는 식의 반격은 비판의 본질을 흐리고 논점을 이탈시키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비판의 내용(Message)이 아니라 비판하는 사람(Messenger)의 자격을 문제 삼음으로써, 당사자는 비판받는 죄인에서 '부당한 공격을 받는 피해자'로 자신의 위치를 재설정한다. 이 순간 비판의 지점은 무시되고, 오직 감정적인 진흙탕 싸움만 남게 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
비판의 당사자가 변하지 않고, 대중의 박수만이 공허하게 울려 퍼지는 현실은 글을 쓰는 이에게 깊은 무력감을 준다. 하지만 비판의 본질적인 기능은 당사자를 교화하는 데 있지 않다. 그것은 침묵하는 다수에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환기하는 이정표를 세우는 일이며, 불합리함이 일상이 되지 않도록 기록하는 '증언의 행위'다.
당사자가 무시한다고 해서 비판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외면하고 공격할수록, 그 비판이 급소를 정확히 찔렀음을 방증할 뿐이다. 비판은 당사자를 바꾸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비판에 동의하는 이들이 '혼자가 아님'을 알게 하고, 공동체의 최소한의 도덕적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 계속되어야 한다. 당신의 문장이 당사자의 가슴에 꽂히지 못하고 튕겨 나간다 해도 실망할 필요는 없다. 그 튕겨 나간 화살들이 쌓여 결국은 견고한 기만의 성벽에 균열을 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