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를 깨뜨리는 저울

공의, 불완전한 시스템에서 '한 사람'을 지키는 법

by 강훈

우리 시대는 '공정'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그중에서 시험 성적, 통장 잔고, 투자 수익률처럼 수치로 환산 가능한 지표들은 기준의 척도가 된다. 승자에게는 오만한 자부심을, 패자에게는 씁쓸한 굴욕을 선사하는 이 실력주의의 냉혹한 게임판 위에서, 성경이 말하는 '공의(의)'는 지독하게 비효율적인 소리처럼 들린다. 하지만 신앙이 주는 진짜 유익은 바로 이 냉정한 현대사회의 계산기를 깨뜨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한 인간의 권리'를 복원해내는 단단한 주권에 있다.


'공정'이라는 이름의 가짜 정의

세상이 말하는 공정은 대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논리를 따른다. 일한 만큼 받고, 능력만큼 대접받는 것이 정의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 논리는 출발선이 다른 이들의 절망을 외면한다. 강자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정의는 종종 기득권을 지키는 정교한 방어기제가 된다.

신앙적 관점의 공의는 이 수평적인 저울을 거부한다. 공의는 단순히 죄를 찾아내 벌하는 응징이 아니라, 무너진 관계를 바로잡고 소외된 자의 자리를 되찾아주는 '올바른 관계의 회복'이다. 힘의 논리가 아닌 생명의 논리로 세상을 다시 바라보는 것, 그것이 공의가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해방이다.


'무지의 베일' 뒤에서 발견하는 연대

철학자 존 롤스(John Rawls)는 정의의 원칙을 세우기 위해 '무지의 베일(Veil of Ignorance)'이라는 가상적 장치를 제안했다. 내가 이 사회에서 어떤 지위나 재능, 혹은 건강 상태를 가지고 태어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정의의 원칙을 정한다면, 누구나 가장 불리한 위치에 처한 사람을 보호하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롤스는 이를 통해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차등의 원칙'을 이끌어냈다.

신앙은 우리에게 매 순간 이 무지의 베일을 쓰게 만든다.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우리는 모두 벌거벗은 듯 아무것도 없는 존재이며, 어떤 성취로도 자신을 증명할 수 없는 평등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리는 행운이 오직 내 실력이 아님을 고백하는 순간, 타인의 불행은 '무능의 결과'가 아닌 '공동의 책임'이 된다. 공의는 나르시시즘에 빠진 자아를 흔들어 깨워, 곁에 있는 '한 인간'의 아픔을 내 것으로 감각하게 만드는 고결한 이성이다.


주권적 한 사람이 보여주는 예의

진짜 공의를 아는 사람은 권위 앞에 당당하고 약자 앞에 겸허하다. 시스템이 주입하는 혐오의 언어에 동조하지 않으며,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를 희생시키는 불의한 합의에 "아니오"라고 말할 줄 안다. 공의는 우리를 시스템의 부품이 아닌, 자기 양심의 주권을 가진 주인으로 세운다.

남들이 다 옳다고 하는 길이라도 그것이 한 인간의 존엄을 훼손한다면 멈춰 서는 용기. 그 용기는 세상을 심판하려는 오만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는 절박함에서 나온다. 공의는 세상을 더 살벌하게 만드는 칼날이 아니라, 차가운 세상으로부터 우리 모두를 보호하는 따뜻한 방패가 되어야 한다.


무너진 곳을 보수하는 기쁨

결국 공의의 유익은 세상을 향한 증오가 아닌 사랑의 확장으로 귀결된다. 내 창고를 채우는 소유의 정의를 넘어, 타인의 눈물을 닦아주는 존재의 정의를 실천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게 된다. 소외된 자의 손을 잡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는 일은 고된 노동이 아니라,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차원의 품격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저울로 세상을 달고 있는가. 당신의 정의는 타인을 정죄하기 위한 도구인가, 아니면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손길인가. 효율과 성과의 계산기를 잠시 내려놓고, 당신 곁에 서 있는 한 사람의 얼굴을 정직하게 응시해 보라. 거기서 발견하는 연민과 책임감, 그 뜨거운 심장의 울림이 당신을 진짜 공의의 길로 인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