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크리트가 된 십자가, 그 무거운 생존

소유에서 공유로, 건물에서 사람으로

by 강훈

- 편의점처럼 늘어선 십자가와 개척의 딜레마

골목마다 붉은 네온사인 십자가가 넘쳐난다. 누군가는 사명으로 시작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떠밀려 나온 생존의 막다른 골목이기도 하다. 마치 편의점이나 치킨집을 열듯, 선택지가 없어 시작한 ‘어쩔 수 없는 개척’의 현장에서 신학적 열정은 이내 현실적인 생존 투쟁으로 다가온다. 거대한 건물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대형 교회와, 당장 다음 달 월 렌트비를 걱정하며 텅 빈 예배당을 지키는 작은 교회의 풍경은 한국 교회가 마주한 가장 서글픈 양극화의 단면이다.


- 효율의 과부하와 침묵의 낭비

대형 교회는 공간 활용도가 높다. 수많은 모임과 프로그램으로 일주일 내내 건물이 들썩이지만, 정작 가장 넓고 화려한 본당은 주일을 제외하면 거대한 정적에 잠긴다. 반면 작은 교회는 활용하고 싶어도 사람이 없어 공간이 잠든다. 월세에 허덕이며 비어있는 공간을 바라보는 목회자의 마음은 비효율에 대한 반성보다는, 삶의 터전이 무너져가는 공포에 더 가깝다. 공간의 효율성을 말하기에 앞서, 우리는 이미 공간 자체가 ‘권력’이자 ‘부담’이 되어버린 구조적 모순을 먼저 돌아봐야 한다.


-‘거룩한 부동산’이 된 신앙의 거처

공간은 더 이상 영적인 안식처가 아니라, 유지해야 할 ‘부동산’이 되었다. 교우들의 헌금이 사람들을 향해 흐르지 못하고 건물의 이자와 관리비, 종사자들의 생계를 유지하는 데 우선적으로 투입된다. 물론 그런 것들 또한 필요하다. 다만 좀 더 진지하게 교회의 본래의 기능과 목적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공간을 소유해야만 교회가 성립된다는 고정관념이 목회자를 임대료의 노예로 만들고, 신자들을 건물 유지비 조달자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개별 교회의 문제가 아니라, ‘건물=교회’라는 등식에 매몰된 우리 모두의 신학적 빈곤이 낳은 비극이다.


- 소유에서 공유로, 건물에서 사람으로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꿔야 한다. 어떻게 건물을 채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공간의 짐을 덜어내고 사람에게 집중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이미 넘쳐나는 공간들을 서로 나누고 빌려 쓰는 ‘공유 교회’나, 건물을 소유하지 않고 마을의 유휴 공간을 활용하는 ‘흩어지는 교회’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대안이다. 한편으로는 작은 교회가 한교회로 합치는 것도 생각해 볼 가치가 있다. 실제로 그렇게 합쳐서 더 좋은 시너지로 발전하는 교회의 사례를 본 적이 있다.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을 해 낸 분들에게 경의를 보낸다. 진짜 교회는 콘크리트 벽 안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다. 화려한 건물 유지를 위해 쌓아 둔 종교적 허영심을 버리고, 작더라도 이웃의 삶 속으로 가볍게 스며드는 사랑의 돌봄과 연대에서 진짜 교회는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