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값싼 은혜
교회의 치부를 드러내는 이야기가 진행될 때마다 전매특허처럼 등장하는 표현들이 있다. "은혜로 덮자", "사랑으로 품자", "개독교라 비난받는 마당에 우리끼리 굳이 이럴 필요 있느냐." 이 말들은 언뜻 경건해 보이지만, 사실은 곪아 터진 환부를 가리기 위해 동원되는 가장 비겁한 표현이다. 은혜로 덮자는 그럴듯한 카펫 아래로 오물을 밀어 넣는 행위가 반복될 때, 개신교의 몰락은 외부 안티의 공격이 아닌 내부의 부패로부터 가속화된다.
- 비겁함을 세탁하는 ‘은혜’라는 세제
교계에 불미스러운 일이 터지면 어김없이 "너는 얼마나 깨끗하냐"는 식의 논점 이탈이 발생한다. 비판자를 바리새인같은 부류로 몰아세우고, 가해자를 '실수했을 뿐인 가련한 양'으로 둔갑시키는 이 어이없는 반전은 한국 교회의 참으로 오래된 방어 기제다. 좋은 일을 알리는 것만큼이나 나쁜 일을 도려내는 것이 공동체의 생존에 필수적임에도 불구하고, 교계는 '이미지 관리'를 '복음 수호'와 동일시하는 치명적인 착각에 빠져 있다. 비판의 목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동원되는 "사랑으로 품으라"는 권면은, 사실 사랑이 아니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비겁한 변명일 뿐이다.
- 낙인찍기와 피장파장의 함정
비판자에게 "그러는 너는 깨끗하냐?"라고 묻는 것은 전형적인 ‘피장파장의 오류’다. 비판하는 자의 도덕적 결함이 비판받는 그 자체의 진위를 덮을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 논리가 먹히는 이유는 교회 공동체가 '진실의 규명'보다 '공동체의 평온'을 우위에 두기 때문이다. 대중의 이미지 실추를 두려워하는 다수는 소수의 정직한 비판을 ‘교회를 해치는 행위’로 규정하며 고립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은혜로운 침묵'은 결국 내부의 자정 능력을 마비시키고, 교회를 세상의 법정보다 못한 도덕적 치외법권 지대로 전락시킨다.
- ‘값싼 은혜’와 영적 가스라이팅
독일의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그의 저서 <나를 따르라>에서 ‘값싼 은혜(Cheap Grace)’를 꾸짖었다. 그에 따르면 값싼 은혜는 회개 없는 용서, 고난 없는 부활, 십자가 없는 은혜다. 교회가 잘못을 저지르고도 "하나님이 용서하셨으니 됐다"거나 "은혜로 덮자"고 말하는 것은 본회퍼가 말한 전형적인 값싼 은혜의 모습이다. 이는 가해자에게는 무책임한 면죄부를, 피해자에게는 억압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영적 가스라이팅'이다. 진정한 은혜는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죄를 정직하게 드러내어 철저히 회개하고 그에 따르는 책임을 지는 '값어치 있는 은혜'여야 한다.
- 무너지는 성전 위에서 정직을 선언하다
개신교가 무너지고 있는 진짜 이유는 세상의 비난 때문이 아니라, 비난받을 짓을 하고도 정직하게 마주할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비겁함을 은혜로 포장하는 짓을 멈추지 않는 한, 교회는 세상의 빛이 아니라 세상의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최근 뉴스에 소개된 종교 신뢰도에서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곳이 개신교라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판의 칼날을 든 이에게 "너는 깨끗하냐"고 묻지 말고, "우리가 정직한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무너지는 성전 안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교회의 이미지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예의와 진실에 대한 마음가짐과 태도다. 당신은 지금 오물을 숨겨줄 수 있는 카펫의 한 귀퉁이를 붙들고 있는가, 아니면 그 카펫을 걷어내고 바닥을 청소할 빗자루를 들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