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만 높인 요새, 그 안에서 고립된 하나님

신뢰가 바닥난 시대, 우리는 무엇을 회복해야 하는가

by 강훈

- ‘우리끼리만’ 즐거운 천국

교회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쳤다는 소식은 더 이상 뉴스거리도 아니다. 사람들은 이제 교회를 보며 ‘평화’나 ‘위로’를 떠올리지 않는다. 대신 광장에서 쏟아지는 거친 정치 구호, 이웃의 아픔에는 무관심하면서 자기 집단의 이익에는 누구보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이기적인 얼굴을 떠올린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의 울타리 안에 ‘나와 다른 이웃’이 앉을자리는 없다. 십자가는 어느새 상대를 공격하기 위한 날카로운 창이 되어버렸다.


- 불안함이 만든 거대한 벽

교회는 왜 이토록 사나워졌을까. 그 밑바닥에는 ‘불안함’이 깔려 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자신들이 누려왔던 힘과 영향력이 줄어드니 겁이 나는 것이다. 겁에 질린 인간은 대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더 높게 성벽을 쌓아 숨거나, 외부의 적을 만들어 공격하는 것이다. 지금의 개신교가 보여주는 배타적인 모습은 사실 무너져가는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어 하는 처절한 몸부림이다. ‘우리끼리’ 뭉쳐서 세력을 과시하고 상대를 정죄하며 얻는 가짜 확신이, 정작 소중한 영성을 갉아먹고 있다.


- 거울을 잃어버린 신앙의 비극

신앙의 본질은 끊임없이 자신을 비추어 보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나는 정말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정직한가?”라고 스스로 묻는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교회는 거울 대신 ‘확성기’만 들고 있다. 자신의 허물은 은혜라는 이름으로 덮어버리고, 남의 실수는 정의의 이름으로 난도질한다. 세상이 교회에 바라는 것은 거창한 교리가 아니다. 이웃의 눈물에 공감할 줄 아는 ‘인간적인 예의’와 ‘상식적인 정직함’이다. 기본조차 갖추지 못한 채 영적인 권위만 내세우는 것은, 알맹이 없는 껍데기일 뿐이다.


- 무너진 폐허 위에서 다시 시작하는 법

회복은 교회의 숫자를 늘리거나 겉모습을 화려하게 꾸미는 일에서 오지 않는다. 오히려 지금 교회가 가진 권력과 욕심을 스스로 내려놓는 용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세상을 가르치려 드는 오만을 버리고, 이웃의 고단한 삶 곁으로 조용히 다가가 자리를 펴는 것, 그것이 유일한 길이다. 십자가를 위협적인 깃발처럼 휘두르지 말고, 이웃의 짐을 함께 지어주는 지팡이로 삼아야 한다. 당신의 신앙은 지금 높은 성벽 안에서 평안한가, 아니면 담장을 허물고 광야로 나가 누군가의 아픈 손을 잡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