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장난’만도 못한 원로의 설교

by 강훈

- 광장의 노래를 소음으로 듣는 폐쇄성

2026년 3월, 완전체로 돌아온 BTS가 광화문을 가득 메웠을 때, 91세의 원로 목사 김장환은 이를 두고 “애들 장난도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가사도 모르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을 위해 6,500명의 경찰이 동원되는 것이 비효율적이라 비판하며, 그런 공연은 “새만금 같은 넓은 곳”에서나 할 일이라며 혀를 찼다. 설교라는 형식으로 내뱉은 훈수 속에는 광장의 주인공이 된 청년들에 대한 존중은커녕, 그들이 왜 그곳에 모여 노래하는지에 대한 최소한의 호기심도 없었다.


- ‘모름’을 권위로 내세우는 오만의 언어

김 목사의 발언 중 가장 서글픈 지점은 “가사가 뭔지 모르겠다”는 대목이다. 기본적으로 ‘모른다’는 고백은 배움의 시작이어야 하지만, 권력화된 종교인에게 그것은 ‘알 가치조차 없다’는 배제의 선언이 된다. 전 세계에서 수억 명의 영혼이 그 노래 속에서 위로를 얻고 삶의 의지를 다지는데, 시대의 스승을 자처하는 목자는 그 언어를 공부하려는 최소한의 성의도 없이 그것을 ‘장난’으로 격하시켰다. 언어의 고립은 단어가 어려워서 생기는 게 아니라, 이처럼 상대의 세계를 배우려 하지 않는 게으름과 오만에서 완성된다.


- 쓰레기 남긴 ‘성회’와 온기를 남긴 ‘공연’

가장 지독한 역설은 그가 “새만금으로 가라”며 밀어내려 한 그 광장의 ‘뒷모습’에 있다. 그동안 기독교가 ‘거룩한 기도회’나 ‘구국 집회’라는 이름으로 광화문을 점령했을 때, 그들이 떠난 자리엔 무엇이 남았는가. 산더미 같은 쓰레기, 소음 공해, 행인을 향한 무례한 언사들로 광장은 늘 몸살을 앓았다. 반면 ‘애들 장난’이라 비하당한 수많은 인파가 머문 자리는 사고 하나 없이 평온했고, 오히려 공연 전보다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진짜 거룩은 입술의 구호가 아니라 타인과 공공의 자리를 아끼는 성숙한 뒷모습에 있다. 6,500명의 경찰이 보호한 것은 단순히 ‘6명의 가수’(그는 인원 조차 몰랐다. 사실 7명이다)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그 ‘아름다운 질서’였다는 사실을 저 노병은 끝내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 폐허가 된 권위 위에서 부르는 진실한 노래

신앙의 주권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노인의 객기가 아니라, 내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노래 속에서도 그들이 갈망하는 구원의 흔적을 발견해 내는 ‘겸손한 귀 기울임’에서 시작된다. 누군가의 삶을 지탱하는 노래를 ‘소음’으로밖에 듣지 못하는 이들이야말로, 정작 들어야 할 하늘의 음성에 귀가 먹은 자들이다.

기독교의 언어가 사람들을 품어내지 못하고 땅끝으로 밀어내려 한 것은 이미 기정사실 같은 실패다. 하지만 기억하자. 진짜 복음은 성벽 높은 곳에서 호통치는 일부 사람들의 것이 아니라, 광장 낮은 곳에서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의 자리를 깨끗이 치우는 사람들의 배려 속에 이미 흐르고 있다. 기독교가 위기를 넘어 무너지고 있는 것은 내뱉는 말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런 말과 행동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여기는 ‘염치없음’에서 더 크게 보이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