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어가는 ‘가짜 은혜’가 향수로 가려질까

by 강훈

‘비판’을 거세하는 전능한 단어들: 영성과 온유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불편한 진실을 꺼내는 자는 즉각적으로 낙인찍힌다. “영적이지 못하다”, “온유하지 않다”, “덕이 되지 않는다”는 말들은 비판의 입을 틀어막는 가장 효율적인 재갈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과 하나됨이라는 명분 아래, 모든 갈등은 ‘덮어야 할 것’이 된다. 여기서의 사랑은 이웃을 향한 헌신이 아니라 교회와 내 신앙의 안녕을 위한 비겁한 침묵이며, 하나됨은 진리가 사라진 죽은 자들의 흉내내는 하나됨이다. 그렇게 덮어버린 문제들 위로 ‘은혜’라는 이름의 향수가 쉴 새 없이 뿌려진다. 아주 솔직하게는 개인적으로도 손해가 많다. 어떤 비판을 내뱉는 이미지가 쌓이면 그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다.


- 영적 후각상실증(Anosmia)이 만든 가짜 평화

이런 현상을 ‘윤리적 감각의 마비’라고 한다. 썩은 냄새가 진동하는 곳에서 끊임없이 향수를 뿌려대면, 결국 인간의 코는 제 기능을 잃는다. 악취를 악취로 느끼지 못하는 상태, 즉 ‘영적 후각상실증’에 걸린 공동체는 더 이상 무엇이 옳고 그른지 분별하지 못한다. 고통받는 자의 신음보다 예배당의 미관을 먼저 걱정하고, 범죄한 지도자의 안위가 피해자의 눈물보다 우선시된다. 이 가공된 가짜 평화는 성경이 말하는 ‘샬롬’이 아니라, 진실을 땅 속에 매립하고 세운 ‘콘크리트 무덤’ 일뿐이다.


- ‘덮음’은 사랑이 아니라 공모다

성경이 말하는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지만, 그것은 회개와 돌이킴을 전제로 한 용서이지 범죄를 은폐하는 면죄부가 아니다. 악취의 근원을 제거하지 않은 채 덮어두는 행위는 사랑이 아니라 부패에 대한 공모다. 썩은 환부를 도려내지 않고 붕대만 감는 의사를 우리는 돌팔이라 부른다. 마찬가지로, 문제가 터질 때마다 “좋게 좋게 넘어가자”고 말하는 이들은 공동체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암세포다. 이들이 뿌려대는 향수가 짙어질수록, 그 아래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의 비명은 더욱 선명해진다.


- 침묵을 깨고 악취를 직시하는 용기

신앙의 주권은 ‘착한 그리스도인’이라는 프레임을 깨고 나오는 데서 시작된다. 온유함은 불의 앞에 입을 다무는 비겁함이 아니라, 진리를 위해 날 선 언어를 가다듬는 절제된 분노여야 한다. 냄새를 맡지 못하는 코를 다시 깨우기 위해서는, 먼저 코끝을 찌르는 악취를 인정하는 고통스러운 정직함이 필요하다.

진짜 영성은 향수 냄새 풍기는 자리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우아하게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썩은 냄새 진동하는 폐허 속으로 들어가 그 오염된 덮개를 걷어내는 용기다.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오물을 마주하고 함께 아파할 때, 비로소 공동체는 죽은 평화를 깨고 살아있는 생명을 시작할 수 있다. 썩은 곳을 향해 손가락질하는 당신의 손은 불경한 것이 아니라, 그곳에 새살을 돋게 할 유일한 소망의 도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