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 반대라면 악마라도 내 편인가?

일그러진 ‘선택적 영성’

by 강훈

최근 기독교계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 <신의 악단>이 보여주는 북한 지하교회의 모습은 진정한 신앙의 기록이지만, 그 영화를 소비하는 한국 기독교의 현실은 때로 코미디보다 더 황당한 역설을 보여준다. 북한을 '사탄이 다스리는 땅'이라 부르며 저주하다가도, 자신들이 싫어하는 동성애를 북한의 김정은도 싫어한다는 이유만으로 독재자를 '훌륭한 지도자'로 추켜세우는 풍경은 지독하게 비상식적이다. 이것은 단순히 몇몇 무식한 사람들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사고 체계 자체가 본질에서 얼마나 멀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서글픈 증거다.


- 모순된 증오가 낳은 기괴한 우상

북한을 향한 한국 교회의 시선은 늘 두 갈래로 찢어져 있다. 한쪽에서는 고통받는 지하교인들을 위해 울며 북한을 복음화해야 한다고 외치지만, 다른 쪽에서는 북한과의 화해를 말하는 이들을 ‘종북주의’, '사탄의 앞잡이'라며 정죄한다. 그런데 최근에는 더 기괴한 풍경이 펼쳐진다.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인권을 탄압하는 독재자를 칭송하는 목소리가 강단에서 흘러나온다. 사탄의 지배를 받는다던 북한이 갑자기 '성경적 가치'를 수호하는 보루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혐오라는 공통분모 아래서 복음의 원수마저 동지가 되는 이 코미디 같은 현실은, 오늘날 기독교가 믿는 것이 하나님인지 아니면 자신들의 ‘신념’인지 묻게 만든다.


- 편 가르기에 중독된 ‘친구와 적’의 논리

독일의 법학자이자 정치철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정치를 ‘친구와 적’을 나누는 행위로 정의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한국 교회는 이 정치적 논리에 완전히 함몰되어 있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이 예수의 가르침인가’가 아니라 ‘누가 우리 편이고 누가 적군인가’이다. 내가 싫어하는 대상을 함께 미워해 준다면, 그가 설령 독재자든 사탄의 앞잡이든 상관없이 ‘훌륭한 분’이 된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 안에서는 복음의 핵심인 ‘원수 사랑’이나 ‘보편적 인권’은 설 자리를 잃는다. 오직 우리 편의 승리를 위해 성경을 도구로 사용하는 ‘영적 진영 논리’만 남을 뿐이다.


- ‘사람’은 사라지고 ‘라벨’만 남은 광기

북한을 돕는 정부를 ‘종북주사파’라 몰아세우면서도, 북한의 독재자를 칭송하는 이 기막힌 이율배반은 한국 기독교가 ‘실체’를 잃어버렸음을 증명한다. 이들에게 북한은 복음이 필요한 ‘사람’들이 사는 땅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인하기 위한 ‘개념적 전장’일 뿐이다. 그저 이것은 전형적인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현상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반동성애)을 위해 현실의 모순(독재)을 무시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다. 썩은 냄새를 맡지 못할 정도로 코가 마비된 상태에서, 자신들이 보고 싶은 색깔의 안경만 쓰고 세상을 재단하는 광기다.


- 무너진 상식 위에 다시 세워야 할 신앙의 주권

이것이 일부의 문제라고 치부하기엔, 그 ‘일부’가 뿜어내는 소음이 너무나 조직적이고 강력하다. 대중이 기독교를 몰지각한 집단으로 바라보는 이유는, 교회가 상식적인 인권과 정의보다 자신들의 혐오와 기득권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진정한 신앙은 어떤 이념이나 진영의 도구가 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 독재자가 동성애를 반대한다고 해서 그를 칭송하는 것은 복음의 자존심을 스스로 시궁창에 처박는 일이다. 우리는 북한의 독재 체제도 거부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 땅의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시선도 잃지 말아야 한다. 또한, 동성애 반대라는 명분으로 독재와 손잡는 그 비겁한 ‘영적 거래’를 단호히 거부해야 한다. 도대체 신앙에 좌우가 어디 있는가? 심지어 있다 하더라도 예수님은 심각한 좌편향 아니었나?

기독교의 정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혐오를 위해 사탄과 손잡는 이들에게는 더 이상 신앙의 향기가 나지 않는다. 이미 썩은 상태인데 ‘신앙‘, ’영적‘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진짜 신앙적이고 영적인 것이 될까? 점점 더 생각하기를 포기한 사람들만 교회에 남는 불행한 현실이 실재가 되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