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는 간절한 소망을 하늘에 고하는 일이지만, ‘응답’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이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곁에서 쓰이는 응답이라는 단어는 참으로 기이하다. 내가 원하는 대로 일이 풀리면 ‘응답’이라 부르고, 그렇지 않으면 ‘침묵’이나 ‘방해’라는 꼬리표를 붙인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내 욕망이 적힌 영수증에 하나님의 도장이 찍혔는지를 확인하는 과정이 되어버린 셈이다.
종교인들은 인생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에 이름표(Labeling) 붙이기를 좋아한다. 기도한 대로 일이 잘 풀리면 즉각 “하나님의 응답”이라는 스티커를 붙이고 간증을 쏟아낸다. 하지만 결과가 나쁘면 태도가 달라진다. “더 깊은 뜻이 있다”며 포장하거나, 심지어 “악한 세력의 방해”라며 책임을 돌린다.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의 신앙 체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답에 맞춰 하나님의 행동을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사회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Leon Festinger)는 인간이 자신의 믿음과 실제 현실이 어긋날 때 느끼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논리를 왜곡하는 현상을 ‘인지 부조화(Cognitive Dissonance)’ 이론으로 설명했다. 그의 저서 <예언이 끝났을 때(When Prophecy Fails)>를 보면, 믿었던 예언이 틀렸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오히려 “우리의 기도가 세상을 구했다”는 식으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믿음을 더 강화한다. 기도 응답도 마찬가지다. “긍정적인 것만 응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부정적인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는 오류다. 그래서 ‘사단의 방해’라는 라벨을 붙여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 한다. 이것은 신뢰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을 지키기 위한 지독한 자기기만일 수 있다.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遠藤周作)는 소설 <침묵>에서 하나님의 응답이 없는 고통스러운 상황을 깊이 있게 다루었다. 박해받는 신자들이 처참하게 죽어갈 때 하나님은 침묵한다. 주인공 로드리게스 신부는 “왜 아무런 응답이 없느냐”며 울부짖는다.
교회는 흔히 “침묵도 응답이다”라고 가르치지만, 고통당하는 이에게 이 말은 너무나 잔인한 수수께끼다. 슈사쿠가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한 핵심은 침묵이 ‘거절’이나 ‘기다림’이라는 메시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높은 곳에서 인간의 고통을 관망하며 침묵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고통당하며 침묵하고 있다. 즉, 응답은 ‘상황의 해결’이 아니라 ‘고통받는 자 곁에 함께 계심’ 그 자체다. 응답을 ‘예/아니오’의 결과물로만 보는 시각을 버릴 때, 비로소 침묵 속에 흐르는 하나님의 눈물을 마주할 수 있다.
기도 응답에 대해 우리가 가져야 할 진짜 자세는 무엇인가. 그것은 ‘내가 원하는 답’을 내려놓는 겸손함에서 시작된다.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어떤 결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중심을 세우는 일이다.
믿음은 결과를 하나님의 탓이나 사탄의 탓으로 돌리지 않는 데 있다. 일이 잘 풀려도 교만하지 않고, 일이 꼬여도 비굴하게 남 탓을 하지 않는 태도다. “침묵도 응답이다”라는 말을 관용구처럼 쓰기보다, 그 침묵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 것이 훨씬 더 아름다운 신앙이다. 결국 가장 위대한 응답은 상황의 변화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나’라는 ‘사람의 변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