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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볼말 Apr 02. 2024

경제학자가 커머스 마케팅을 했다면

#1. 오각형을 채우려 하지 말고, 잘하는 것을 더 뾰족하게

모든 분야가 그렇겠지만 마케팅도 결국 시장 판때기를 잘 읽는 놈이 잘하게 되어 있다. 무턱대고 팔려고 할게 아니라 전체 산업의 흐름과 내가 팔아야 할 물건이 시장에서 어떤 의미인지 전략적으로 판단해야 잘 팔 수 있다. 200년 전 경제학자의 전략적 사고를 요즘의 플랫폼 마케팅에 접목시켜 보면 어떨지 생각해 봤다.


'비교우위론'으로 잘 알려진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르도가 지금 마케팅을 했다면 그는 어떻게 했을까? ‘비교우위론'은 쉽게 이야기하면 내가 친구 보다 모든 걸 잘하더라도 친구와 사이좋게 협동을 하면 둘 다 행복해진다는 내용이다.


간단히 개념만 이해하고 가자(더 자세한 설명은 네이버에서…) 한 달 동안 나는 혼자 야구방망이를 5개, 야구글러브를 4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리고 내 친구는 야구방망이를 4개, 글러브를 3개 만들 수 있다.


내가 친구보다 능력이 좋은 것은 맞지만 그럼에도 분업을 해서 한 달 동안 나는 야구방망이만 12개를 만들고, 친구는 야구글로브만 10개를 만들 수 있다면 각각 야구방망이를 6개, 야구글러브를 5개씩을 가질 수 있게 되니 나도 친구도 윈-윈이 된다는 이론이다. 즉, 이것도 저것도 다 잘하려고 하기보다는 전략적으로 내가 잘하는 것에 집중하고 리소스를 투입했을 때 더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CHUTTERSNAP, 출처 Unsplash

비교우위론의 등장은 자유무역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시각을 변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렇게 세계는 각자가 잘하는 것에 더 집중했고 그 외 다른 것은 다른 국가에서 생산된 것을 수입했다. 70~80년대에 대한민국은 이런 자유무역의 흐름 안에서 기회를 잡았다. 가진 게 쥐뿔도 없지만 그렇게 수출 강국 대한민국이 돼버린 거다(조금 부족한 야구글러브 만드는 친구)


이런 현상의 부작용도 있었는데 글로벌 분업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 세계화를 더 가속화했고 글로벌 브랜드들과의 무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소비재에서 출발해서 자동차,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 비즈니스까지 전 세계에서 '이건 내가 제일 잘한다'는 기업들이 결국 한국 판때기에 하나씩 깃발을 꽂게 된 것이다.


모두가 잘 아는 좋은 예는 아이폰이다. 아이폰에 들어가는 디스플레이와 몇몇 부품들은 대한민국에서 만들어진다. (아마도 수출효자 품목들이겠지) 그러나 결국 아이폰이 국내 상륙하면서 LG/Sky/팬택 같은 국내 브랜드들은 모두 추억이 되어버렸다. 비교우위론의 역설인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한민국에서 글로벌 1인자들이 힘을 못쓰던 영역이 있었는데 유통 즉, 리테일과 커머스분야다. 유통은 로컬 단위의 비즈니스다. 생산은 각 국가에서 분업화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수입되지만 유통은 물류와 배송이 함께 있어야 해서 결국 지역 단위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런 갈라파고스 같은 상황 때문에 다른 플랫폼 비즈니스와 다르게 커머스만큼은 글로벌 주자들이 힘을 쓰지 못했다.


G마켓, 인터파크, 옥션 같은 1세대 커머스들은 대부분 오픈마켓이었고 고객 입장에선 사실 아이디/비번을 어디에 먼저 등록해 놓았는지가 중요한 플랫폼 결정 요소였을 정도로 어디에서 물건을 사든 경험의 차이는 크지 않았다.(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입니다만) 1차원적인 쿠폰 싸움으로 흐르던 이 치킨 게임의 끝에선 결국 우리 브랜드를 먼저 떠올릴 수 있게 하는지가 중요한 관건이 되었고, 그렇게 국내 이커머스의 브랜드마케팅은 (1) 빅모델을 쓰거나 하드캐리(*병맛+후크송) 같이 고객의 최초상기를 올릴 수 있는 (2) 자극적인 크리에이티브에 집중하는 시기를 보내왔다. 요즘은 여행플랫폼 '여기 어때' CM송이 그런 *노림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11번가 : 트와이스, 차은우, 이선호

G마켓 : G드래곤, 설현+김희철(하드캐리)

쓱닷컴 : 공유+공효진


그러나 지금 시장에서 가장 큰 화두는 알리, 테무 같은 글로벌(이라 쓰고 중국이라 읽는다) C커머스 플랫폼들의 진입이다. 이들은 커머스댐에 있던 '직구'라는 작은 물줄기의 수문을 완전히 개방해 버렸다.


테무의 마케팅 메시지는 '억만장자처럼 쇼핑하기'다. 앞서 리카르도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것도 저것도 잘한다고 하지 않는다. 자기네들이 기존 한국의 커머스 플랫폼과 비교해 가장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 가장 뾰족한 엣지인 '초저가' 집중한다. 오각형을 뚱뚱하게 채우려 하지 않고 가격이라는 꼭지를 극단적으로 강조하며 이것을 돌려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전략적이며 똑똑하다.


잠시 커머스 시장을 복기해 보면 결국 하나의 플랫폼, 하나의 브랜드에 하나의 직관적인 태그를 남긴 곳들이 살아남았고 선택받았다.


인터파크는 티켓으로

마켓컬리는 새벽배송으로

예스24는 도서로

네이버는 적립으로

쿠팡은 배송으로


USP라는 전통적인 마케팅 개념이 있지만 지금 시장에서 작동하는 마케팅과 브랜딩은 조금 다르다. USP가 아담스미스의 절대우위(남이 제공할 수 없는 제안)에 가깝다면 리카르도의 관점으로 보는 마케팅은 우리가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는 것에 선택과 집중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잘하는 것을 더 잘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에 집중해야 한다" 글로벌 업체가 들어와서 다이다이 붙어도 깨지지 않을 뾰족한 경쟁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 비즈니스가 전체 판때기에서 어떤 비교우위가 있는지, 그리고 그곳에 모든 리소스를 집중하고 있는지, 고객에게 얼마나 직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는지가 점점 중요해지고 그것이 지금 시대에 작동하는 마케팅이다. 제2, 제3의 테무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다른 영역에서 계속 나타날 것이다. 100년 전 리카르도가 주장한 비교우위론을 이해한 마케터라면 무엇을 이야기해야 할까?


@Lucian Alexe, 출처 Unsplash


마지막으로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분야의 이야기를 하며 마무리한다. 그동안 배달앱의 가장 큰 적은 아이러니하게도 배달비였다. 중국집 배달이 당연했던 시대를 살았기 때문일까? 다른 비용과 달리 유독 배달비에 대한 고객들의 거부감이 높았다. 하지만 쿠팡이츠는 쿠팡의 가장 큰 비교우위인 '와우멤버십'에 집중해서 '와우회원 무료배달'이라는 심플한 메시지를 시장에 던졌다. 이벤트도, 프로모션도 아닌 선언이다. 가장 큰 고객의 페인포인트를 정조준하여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직관적인 방식으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할 때 시장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진다. 쿠팡이츠의 #무제한 무료배달이라는 태그라인이 정체된 배달앱 시장의 메기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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