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by 닥터추박사

"육아"라는 말에는 묘한 따뜻함이 있다.

따뜻한 이불, 포근한 품, 밤새 등을 토닥이던 손길.

그런 이미지는 대부분 ‘엄마’에서 온다.


그렇다면 육아에서 ‘아빠’는 어느 위치에 있을까?
늘 밖에 있으며

어딘가 멀찍이 서 있던,

조용하고 진중하지만 때론 낯설었던 그 존재.


나는 그런 아버지들과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싶었다.

내게는 낯설고, 지도도 이정표도 없는 미지의 여정.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처음부터 '다른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건 아니었다.


아이가 내 품에 처음 안겼을 때,

나는 다짐할 틈도 없이 그저 휩쓸렸다.

웃음과 울음이 교차하는 그 복잡하고도 사랑스러운 태풍 속으로.



첫 아이, 사랑이가 태어난 날.


그날 나는 '아빠'라는 이름을 처음 받았다.

기저귀? 갈 줄 몰랐다.
목욕? 미끄러질까 두려워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분유? 도대체 물 몇 ml에 몇 스푼이야?

육아는 정답이 없는 세계였다.


가이드도, 매뉴얼도 없이
‘지금부터 네가 아빠 해봐’라는 한 마디에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갑자기 아빠라는 주연이 되어버린 느낌.


하지만 신기했다.
그 어떤 긴 프레젠테이션보다,
그 어떤 논문보다,
그 어떤 수술보다
기저귀 한 번 제대로 가는 게 더 어렵고도.. 기뻤다.


지금 내겐 사랑스러운 세 명의 스승들이 있다.

사랑이, 똑똑이, 활짝이.
이 세 아이는 내게 매일 살아가는 법을 가르친다.


처음에는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줄 알았다.
하지만 갈수록 깨달았다.

실은 내가 자라고 있었다.


“아빠, 나랑 놀아줘!”
그 한 마디에 달려가 장난감 블록을 쌓고,
술래잡기를 하고, 웃고 또 웃는다.


억지로 놀면? 들킨다.
마음이 딴 데 있으면? 그걸 정확히 눈치챈다.
아이들은 진심의 레이더를 달고 있다.


육아에는 진심이 필요하다.

아이와 함께 웃고,

같은 눈높이로 다가가고,

놀아줄 때도 온 마음을 다해야 비로소 아이들과 연결될 수 있다.


내가 어릴 적 우리 아버지는 조용하고 묵직한 분이었다.
늘 일하거나 신문을 보거나, TV 앞에 계시던 분.
엄마는 항상 분주했지만,

아버지는 조용히 ‘가장’의 자리를 지켰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이제는 안다.

외로운 자리, 무거운 자리, 표현이 서툴러도 사랑이 넘치던 그 자리.


하지만 나는 그 방식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었다.
‘기둥’이 아닌, ‘놀이터’가 되고 싶었다.
아이들이 마음껏 기대고, 뛰어놀 수 있는 그런 아빠.


육아는 누군가를 키우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가 다시 태어나고, 성장하는 일이다.


새벽 두 시에 잠든 아기를 안고,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 삶이 내가 원하던 삶이었나?’

그리고 곧 미소가 지어진다.
‘생각했던 것보다 10배는 더 웃기고,

100배는 더 힘들고,
1000배는 더 소중하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사랑이가 내 품에 처음 안겼던 그날, 진짜 삶이 시작되었다.

그 삶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물론, 그 웃음 뒤엔 수면 부족과 전쟁 같은 하루가 늘 기다리고 있었지만."

이제, 내 스승들 이야기를 들어볼 준비가 되었는가?


진료실에서,

닥터 추박사 드림.



f9d5ccfa-37ba-4872-87c5-dc084a83a46d.png 활짝이 100일 사진(Chat GPT을 이용한 지브리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