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스승, 활짝이의 예고 없는 등장

by 닥터추박사

육아 전쟁 속에서도 글쓰기와 독서는

나를 지탱해 주는 유일한 힘이었다.


아이들이 잠든 후 찾아오는,

어쩌면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

가장 소중한 나만의 자유 시간


하루 종일 아빠, 의사, 남편, 사위, 직원, 동료...

여러 개의 역할을 동시에 소화하며 살아가지만,

밤 9시부터 10시 반.

그 시간만큼은 '나'로 숨 쉴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었다.


사랑이는 아내가,

똑똑이는 내가 재웠다.

역할 분담은 자발적인 듯,

사실은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우리 순둥이 먹보 똑똑이는

밤 9시 마지막 분유를 빠르게 클리어하고

세상 편한 표정으로 꿀잠 모드로 돌입했다.


그렇게 아이들이 모두 잠든 그 시간은
내게 있어 가장 명료한 시간이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며
나라는 사람의 중심을 다시 세우는 시간.

육아와 병원일, 그리고 집안일로 하루가 휘몰아치는 태풍 같다면
이 시간은 그 눈 속에서 잠시 숨 돌리는 고요함이었다.



똑똑이는 6개월을 넘긴 시점부터

밤에 한 번 정도만 깨곤 했다.
아내랑 나는 번갈아 가며 수유 당번을 맡았고,
어느덧 우리는 ‘둘째 육아 적응 완료’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둘째는 훨씬 더 쉽다."

육아 고수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말.

처음에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그런데 진짜로, 첫째에 비해 너무 순했다.


사랑이는 예민하고 까탈스럽고, 감정 기복도 컸다.
하지만 똑똑이는 차분하고, 먹고 자는 리듬이 뚜렷했다.


‘애들은 다 똑같다?’
그건 세상에서 가장 잘못된 명제였다.

아이들은 각각 하나의 ‘우주’였다.
기대와 예측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고,
육아서가 말하는 ‘정답’도
그 아이에게는 ‘오답’ 일 수 있었다.


그제야 부모로서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이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몸소, 뼈저리게 깨달았다.


누구는 빨리 말하고,
누구는 늦게 걷고,
누구는 감정을 바로 표현하고,
누구는 조용히 꾹꾹 눌러 담는다.


어른이 그렇듯, 아이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배움.
육아는 인내심의 ‘시험’이 아니었다.
그건 ‘평생 가는 여정’이었다.


한 아이가 자면,

다른 아이가 깨어 울고,
한 아이가 열이 내리면,

다른 아이가 열이 오른다.
끝이 없었다.

"그래, 이 또한 지나가리라."
"오늘 힘들어도, 내일은 좀 나아지겠지."

매일 이런 주문을 스스로에게 걸었다.


간혹 너무 지치면 이렇게 되뇌었다.
"어쩌다 이렇게 됐지?"
그러곤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하지만 이렇게 살아가는 게... 꽤 멋지지 않나?"

육아는 나를 작게도 만들었지만,
그만큼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숨 고르며 달려가던 어느 날.
아내가 심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보... 나... 셋째 임신한 거 같아..."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
기뻐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진심은 오직 하나였다.

"어... 어떡하지?"

둘도 버거운 지금, 셋째라니.

장모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걸... 장모님께 어떻게 말씀드려야 하나?"


장모님은 아이 둘과 매일 씨름하고 계셨다.
똑똑이 기저귀 갈기,

사랑이 등원시키기, 장난감 정리,

낮잠 재우기, 또 기저귀 갈기...

일일 육아 루틴은 거의 군 훈련 수준이었다.


그 장모님께 셋째 임신 소식을 전하는 건
한마디로 ‘핵폭탄 투하’였다.


그리고.... 예상대로였다.


"셋째...? 어... 축하해야지... 그치...? 힘내자..."
장모님의 표정은 축하, 당황, 체념, 비장함이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번져 있었다.


사랑이에게도 슬며시 셋째 소식을 알렸다.
"사랑아, 동생이 하나 더 생겼어!"
사랑이는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한 박자 쉬고 이렇게 말했다.


"셋째 이름은 활짝이!

우리 가족을 활짝 웃게 만들 거야!"

그 말에 우리 부부는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름은 그렇게 한 방에 정해졌다.

정말 사랑이다운 작명 센스.

(참고로 똑똑이의 태명도 사랑이가 지었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 인생에 책임져야 할 여자가 네 명이라니.”
아내, 사랑이, 똑똑이, 그리고 이제 활짝이까지.


"이렇게 여복이 많은 사람이 또 있을까?"
아내는 그 말에 피식 웃더니,

“오빠, 네 복은 내가 다 책임져 줄게.”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각방에 재우고 겨우 부부만의 침실에서

쉬었던 게 화근이었을까.

셋째가 생긴 건 계획 외 선물이었다.

계획은 없었지만,

기적은 늘 계획 없이 찾아온다는 걸

우리는 또 한 번 깨달았다.


똑똑이게는 미안한 마음이 컸다.

사랑이는 어렸을 때 많은 곳을 데리고 다녔지만,

똑똑이는 상대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래서 임신 중에도 여러 곳을 다니며

더 많은 추억을 만들기로 했다.

임신한 아내는 무거운 몸으로도

아이들을 데리고 주말마다 나들이를 갔다.


"완벽한 하루는 없었지만, 좋은 하루는 있었다."


육아는 언제나 완벽하지 않으며,

예상치 못한 변수로 가득했다.

하지만 작은 행복과 웃음이 있는 하루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하루였다.


셋째 소식이 가져다준 감사와 설렘.

그러나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산전 초음파에서 활짝이의 심장에 이상 소견이 발견되었다.
"심장에 결손이 의심됩니다."

의사인 내가 들어도 심장이 철렁하는 말.


강남 차병원에서 두 차례 정밀 검사.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는 말에 숨을 돌렸지만,

끝이 아니었다.


하지만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마지막 산전 검사에서 다시 ‘심장 이상’ 소견.
결국 세브란스 병원으로 전원 조치.

신생아 중환자실을 미리 예약하고 유도 분만 일정을 잡았다.


날벼락같은 소식.

'건강'이란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사랑이와 똑똑이가 너무 건강했기에

그 소중함을 잊고 있었다.

건강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운명의 날, 분만 당일.

아내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괜찮을 거야. 우린 이미 두 번이나 해냈잖아."

아내는 조용히 말했다.

"이번엔... 좀 많이 무서워."


나는 더 강해야 했다.

그날만큼은,

내가 세 딸의 아빠로서,

아내의 남편으로서
우리 가족의 중심이 되어야 했다.


웃을 수 없어도, 웃는 얼굴을 해야 했고
떨리는 손으로도 아내의 등을 쓰다듬어야 했다.


“활짝아, 제발 건강하게 와주렴.
우린 널 환영할 준비가 되어 있어.”

기도했다. 그날만큼은 정말 간절하게.


셋째 임신은 단순한 여정이 아니었다.

그건 부모로서, 인간으로서,

우리가 겪는 또 하나의 성장통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육아라는 마라톤,

아내와 손을 맞잡고 열심히 달리다 보니

어느새 한 명, 그 옆에 한 명 더, 그리고 한 명 더....


아이 셋을 키운다는 건

나로서는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한

어쩌면 내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 아이들의 건강한 웃음과 성장을 지켜주는 것.

아이들의 행복한 하루를 위해 끝없이 달리는 것.

세 아이를 향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부모라는 길 위에서 계속 걸어가는 것.


셋째가 생긴 건 우리에게 큰 변화였지만,

그 아이가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은

다시금 ‘사랑’의 본질을 일깨워 주었다.


부모라는 길.
끝이 보이지 않는 그 여정은
매일 아이들과 함께 걷는
조금은 험하고, 아주 많이 아름다운 길이었다.


그리고 그 길은...
오늘도, 계속된다.



ChatGPT Image 2025년 4월 23일 오후 01_20_39.png 셋째 임신 기념으로 찍은 만삭사진(ChatGPT에 의한 지브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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