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I'm OK!!---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넌 돈 안 되는 것만 좋아한다."
장사꾼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나는 돈 계산에는 영 재주가 없었다.
대신 그리스로마 신화 속 신들의 이야기, 국어 교과서에 실린 낭만파 시인들의 작품,
드래곤볼과 슬램덩크 같은 일본 만화에 푹 빠져 있었다.
조금 자라서는 드뷔시의 몽환적인 선율과 왕가위 감독의 영화들,
하루키의 소설 속 20세기말 감성에 흠뻑 취해 살았다.
머릿속은 언제나 현실보다 더 흥미로운 세계로 가득했다.
사실 나는 태생이 활력 없는 아이였다.
할머니는 늘 혀를 차셨다. "무슨 애가 허리가 없냐, 왜 맨날 누워만 있어?"
한창 뛰어놀 나이에 나는 늘 조용히 누워 있었다.
책을 읽거나 멍하니 천장을 보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는 본래부터 그렇게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사람인 것 같다.
MBTI를 해보면 늘 INFP가 나오는데,
사람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INFP는 타고난 백수 체질"이라고 한다.
아, 이래서 내가 이 모양인가 싶어 웃음이 나왔다.
대학에 들어가서도 마찬가지였다.
적성에 맞지도 않는 이공계 전공을 택한 나는,
여전히 고등학생처럼 지정 좌석에 앉아 옆자리 친구와 함께 교수님의 퀴즈와 시험을 반복했다.
고등학교 담임 선생님은 성적에 맞춰 교대를 추천했지만, 나는 끝내 지원하지 않았다.
"내 인생도 아직 제대로 모르겠는데, 어떻게 남의 인생을 책임져?"
그 두려움이 나를 막았고, 결국 성적을 포기하면서 다른 길을 택했다.
그 길 끝에 뭐가 있을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이 체질은 변하지 않았다.
한 번 일을 시작하면 체질에 안 맞게 열을 올렸다가,
그 뒤에는 꼭 열병처럼 번아웃이 찾아왔다.
마치 핸드폰 배터리가 0%가 될 때까지 쓰고 나서 완전 방전되는 것처럼.
그렇게 몇 달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빈둥거리며 살아야 에너지가 다시 돌아왔다.
남편은 그런 나를 보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던진다.
"넌 알아서 참 잘 쉰다."
맞다. 나는 쉬는 것도 재주였다.
남들이 아파트 투자에 온 신경을 쏟고 부동산 앱을 들여다볼 때,
나는 서점에서 소설책과 시집을 고르고 있었다.
주문해 둔 책이 도착하는 날이면 누군가의 에르메스 신상 가방보다 더 설레는 순간이었다.
택배 박스를 뜯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적당히 잘 쉬고, 잘 놀고,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가끔 허전한 통장 잔고와 흐릿한 앞날을 마주할 때면 문득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인생을 잘못 살아온 걸까.
그래도 나는 내 삶에 나름 충실했다.
아침마다 화분에 물을 주고, 친구가 힘들어할 때 밤늦게 전화를 받았다.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리는 것도 잊지 않으려 했고,
주어진 일들도 성실히 해내려 애썼다.
예전에는 이런 내 기질 때문에 뒤처지는 것 같아서 나를 바꾸려고 무던히 애썼다.
더 빨리 움직이고, 더 적극적이 되고, 더 현실적으로 생각하려고 했다.
그런데 잘 안 되었다. 오히려 나를 더 싫어하게 됐다.
삶의 중간쯤 지나고 나니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그냥 타고난 대로, 내가 잘하는 것 하고 살자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 삶에서 그나마 가장 좋아하기도 하고, 잘한다고 칭찬받던
글쓰기와 책 읽기에 조금 더 집중해보려고 한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말했다. "기쁨은 존재와 함께 오는 빛이다."
나는 이제야 그 말뜻을 조금씩 알 것 같다.
뭔가를 소유하려고 애쓰지 않고 그냥 존재하며 살아가는 것,
거기서 나오는 조용한 기쁨 말이다.
앞날이 어떻게 될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신한다.
나는 내 방향과 내 속도대로, 삶을 천천히 음미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그리고 지금은 순항중이다.
만 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