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떠돌이 이방인의 집 찾기 -
여기 정착한 지 어느덧 5년이 흘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이곳에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 같다.
아침에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면, 가끔 낯설다.
작은 얼룩 하나, 창문으로 새어드는 빛의 각도까지도 어딘가 내 것이 아니다.
카페 앞에 서면 어깨가 여전히 굳는다.
점원의 인사에 머뭇거리는 사이, 공기가 잠시 멎는다.
커피가 나오는 동안 흘러가는 짧은 침묵도, 아직은 낯설기만 하다.
단골손님들 사이에서 번지는 웃음소리 속,
그 안에 섞이지 못한 내가 조용히 걸음을 돌릴 때도 있다.
어떤 날은 거울 앞에 한참을 서 있다.
이 공기를 마시고, 이 물을 마시며 살아가는 내가
정말 5년 전 그 사람과 같은 존재일까.
한국어로 꿈을 꾸다 영어로 잠꼬대를 하고,
김치찌개를 그리워하면서도 이곳 빵 냄새에 익숙해진 내가
과연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어제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다 말았다.
시차를 계산하는 사이, 전하고 싶던 말이 마음에서 흩어졌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용히 나를 주워 담는다.
부서진 마음의 조각들을 하나씩 붙이고,
다시 흩어지면 또 주워 담는다.
그렇게 조금씩, 새로운 내가 되어간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이곳에 왔다.
문이 열리고 익숙한 발소리가 바닥을 울렸다.
가방을 내려놓고, 신발을 가지런히 놓고,
냉장고 문을 여는 작은 소리까지 낯설지 않았다.
“생각보다 잘 지내는 것 같은데?”
“진짜? 나는 아직도 이방인 같은데…”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식탁에 마주 앉았다.
그는 커피잔을 입에 대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햇살이 그의 어깨에 내려앉았고,
그 순간 이 공간이 조금 달라졌다는 걸 느꼈다.
“여기 아침 햇살이 참 좋네.”
그 말 한마디가, 나도 모르게 비워 두었던 마음의 틈을 조용히 메웠다.
아, 이게 집이구나.
그 말이 속으로 천천히 스며들었다.
나는 한국에 주소지가 있다.
친정에는 내 방이 있고, 시댁에도 아직 나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서류상으로는 집이 여러 개지만,
그 어디에서도 나는 완전한 나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낯선 땅에서, 남편과 함께 보낸 며칠은 달랐다.
함께 장을 보고, 같은 TV를 보며 웃고,
밤에 나란히 누워 하루를 마무리하는 일상 속에서
이 공간은 ‘우리의 공간’이 되었다.
집은 벽과 지붕이 아니라,
숨결이 머물고 침묵이 안도가 되는 곳.
말하지 않아도 괜찮은 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곳.
그곳에서 나는, 조금 덜 외롭고 조금 더 나였다.
남편이 떠난 뒤, 방 안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가 앉았던 의자, 읽다 접은 책들,
식탁 위에 남겨진 커피잔.
그 자리에 온기가 머물렀다.
혼자 남은 지금도, 이 공간은 예전과 다르게 느껴진다.
조금 더 느슨하게 숨 쉴 수 있는 곳,
조금 더 나다워지는 곳.
이제 나는 반쯤은 집에 도착한 것 같다.
앞으로 이곳에 뿌리를 내릴지,
또다시 어디론가 떠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하나는 분명하다.
집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
내가 나로서 편히 숨 쉴 수 있는 그곳이라면...
어디든 집이 된다.
어젯밤, 거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국의 달빛이 커튼 너머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그 아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집은 어쩌면, 내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요한 밤이 그 생각을 조용히 안아주었다.